인터넷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와레즈’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기 가면 ‘공짜로’ 프로그램이니 음악 파일 같은 것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와레즈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공들여 만든 상품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옳지 않다. 하지만 ‘카피 레프트’니 ‘정보 공유’ 얘기가 나오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1세대 해커들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공동작업이었다.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을 완전히 공개하고, 누구든 가져가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개선하는 ‘집단 수정’ 작업이 반복되었다. 그들은 ‘락’을 거는 걸 부정한다. 프로그램의 집단적 개선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와레즈를 이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하드를 공유하는 것도 싫다. 하지만 어떤 프로그램들의 경우 지나치게 가격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놓고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는 단계에서 값비싼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아 혼자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시장을 장악하고 독점가격으로 프로그램을 팔아먹는 기업에 대해서라면 와레즈는 일종의 저항수단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몇 국내 와레즈와 사용자들을 보면 해커 정신이니 정보 공유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순수하게 취미로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와레즈로 개인 수익을 올려보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배너 광고를 올리는 정도야 점잖은 편에 속하고, 이용자는 물론 운영자도 미성년인 와레즈 사이트에서 성인 사이트의 팝업 광고로 돈벌이에 열을 올린다. 적든 많든 와레즈로 돈을 번다면 그들은 신념을 가진 양심범이 아니라 손쉬운 돈벌이를 찾는 ‘업자’일 뿐이다. 업자끼리 서로서로 경쟁 사이트를 고발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올려주지 않으면 ‘찌르겠다’고 협박하는 간 큰 사용자도 있다.
요즘 이른바 ‘<화이트 데이> 사건’으로 시끄럽다. <화이트 데이>는 ‘손노리’에서 출시한 호러게임이다. 비교적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전통있는 회사고, 게임의 완성도도 괜찮았다. 그런데 출시되자마자 와레즈에 올라온 건 물론이고, 게임의 알파 테스터에 손노리 사이트에서 충성도를 과시하던 사람들까지 와레즈를 들락거렸다. 전부터 불법복제에 민감하던 ‘손노리’쪽은 몇몇 이용자를 고발했다. 이에 대해 몇몇 게이머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왜 힘없는 개인 사용자만 문제삼냐, 돈 없는 어린 학생들이 그럴 수도 있는데 인정이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개인 사용자보다는 거대 릴리즈 그룹을 건드리는 게 더 ‘정의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발끈하며 게시판을 욕으로 도배하는 건 솔직히 뻔뻔하다. 게다가 불법복제품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불매운동을 벌인다니, 이쯤 되면 유머 게시판에 올라갈 일이다. 게임은 밀가루나 에이즈 백신과는 다른 사치품이다. 돈이 없다면 안 하면 된다. 세상엔 돈 안 드는 재미있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한달에 영화 한두편 보는 학생들이 몇달에 게임 하나 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돈이 없을 것 같지도 않다.
와레즈는 법과 시장의 틈 사이 작은 공간이다. 이 공간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지만 그저 자기 편할 대로 남의 권리를 짓밟기 위한 폭력적인 장에 머물 수도 있다. 그걸 결정하는 건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