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역사>는 과거의 폭력성을 감추고 살던 남자가 선의의 폭력을 계기로 다시 그 ‘나쁜’ 폭력의 늪에 빠져드는 이야기, 혹은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수행하는 이야기다. <폭력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들추어내서가 아니라 창조적인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현실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선량한 가장으로 사는 남자의 삶은 사실, 새 출발도, 회개도 아니라 그저 아메리칸 ‘드림’, 즉 환상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영화는 톰의 분열된 역사에서 미국의 역사를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정작 폭력의 근원이 마을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들의 집단 무지와 환상이 범죄자와 영웅을 동일인으로 만든다. 크로넨버그는 탄탄한 각본과 버릴 것 하나 없는 숏의 배열을 기반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끝까지 밀고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폭력의 스릴에 매혹되지 않고 그 폭력의 자취를 사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영화는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모여 앉은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멈추며 묻는다. 끔찍한 진실은 밝혀졌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 현실에 대한 강력한 발언 <폭력의 역사>
글 남다은(영화평론가)
2007-07-25
선량한 시민의 역사 속에 은폐된 피의 진실. 미국의 현실을 꿰뚫어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