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25일 오후 2시 장소 용산CGV
이영화 1942년 경성에 위치한 신식병원을 무대로 하는 <기담>의 주인공은 얼굴도 보지 못한 정혼자와 결혼을 앞둔 의학도 정남(진구), 부모가 모두 사망한 끔찍한 교통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소녀(고주연)를 보살피는 젊은 의사 수인(이동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정남을 비롯한 의학도를 가르치게 된 인영(김보경), 동원(김태우) 부부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강물에 몸을 던진 여고생의 시체가 병원에 들어오고, 시체안치실 당번인 정남은 “가장 좋은 시절을 영원히 봉인해놓은” 그녀를 부러워한다. 수인은 밤마다 계속되는 소녀의 악몽을, 최면요법을 사용하여 치료한다. 이들 각각은 단일한 시공간에서 전개되는 세가지 비극의 주인공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느슨한 플롯으로 엮인다. 동원은 아내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실은 인영이 일본에서 사고로 죽은 몸이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사랑했던 그녀의 영혼임을 알게 된다. 한편으로는 연쇄살인의 불길한 기운이 병원 주위를 감돌고, 서로 다른 빛깔의 사랑이 빚어낸 기이한 사건이 전모를 드러낸다.
100자평 이 영화의 제목은 일종의 선언이다. 무리한 공포를 기대하지 말라는, 무섭지 않은 것을 무섭다고 우기지 않겠다는. 세개의 이야기, 세명의 주인공, 세 가지의 비극을 (옴니버스가 아닌) 단일한 시공간 속 하나의 플롯으로 풀어낸 영화의 구조 역시 그 제목과 묘하게 어울린다. 죽은 영혼과의 결혼식 이후, 하룻밤 꿈처럼 흘러가는 일생을 사계절의 순환 속에 표현한 시퀀스. 극한의 아름다움에 깃든 처연함이라는 정서는 일면 상투적이지만, 30분 남짓의 짧은 이야기 안에서는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장중한 관현악 연주가 과도하게 등장하는 등 슬픈 공포를 강조하는 한국식 공포영화의 허점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마다 이유를 설명해내는 꼼꼼함은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미덕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유난히 반전에 신경쓴 부분인데, 맥없는 반전의 반복 탓인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매끈하게 매듭짓기에는 다소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2년이 넘는 제작기간 동안 형제 감독이 사촌형제 감독으로 바뀌고, 독특한 시나리오의 구조 역시 숱한 변화를 겪은 끝에 완성된 이 영화는, 온갖 ‘넘치는 의욕으로 성급하게 완성한’ 올해의 한국 공포영화 중 과유불급의 교훈을 잘 알고 있는 단 하나의 공포영화로 남을 듯하다.. 씨네21 오정연
놀랍다. 이 영화가 데뷰작이라니! 재현의 암흑시대라 불릴만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이처럼 신비하고 매혹적인 영화를 만든 이들이 두명의 신인 감독이라니! 영화는 고바야시 마시키 감독의 <괴담>(1964)이 연상될 정도로, 완벽한 셋트와 빼어난 비주얼 그리고 마음을 옥죄는 음악을 통해, 결코 '공포'라는 단어만으로 포착될 수 없는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숨막힐 듯한 긴장과 머리가 쭈뼛서는 공포,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놓여나는 편안한 이완과 체념을 모두 담고있다. 그렇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귀신(영혼)없는 쓸쓸함이다. 황진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