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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오복성] 주윤발, 성룡
권민성 2007-05-30

한때 <영웅본색>이나 <열혈남아>를 보지 않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되고 추석 때 성룡의 영화를 봐야 안심이 되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은 주윤발 오빠 때문에 ‘내 사랑 밀키스’를 흉내내고 유덕화 형님 때문에 투유 초콜릿을 집었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메이드 인 홍콩’의 주역들은 어떻게 되었나? 장국영은 하늘나라로 갔고 홍콩도 본토에 반환되었으며 젊디 젊은 배우들은 40~50대 중년이 되었다.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하지만 어떤 배우들은 20년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며 홍콩영화계를 떠받치고 있다. 홍콩 누아르라는 이름으로 한데 뭉뚱그려왔던 홍콩 액션영화의 제2의 전성기에서 제1의 전성기 멤버들이 꾸준히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몹시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특히 주윤발, 성룡, 주성치, 양조위, 유덕화 이 5대 배우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수없이 많은 팬들을 거느린 이들의 과거 활약상을 살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저 졸업앨범을 뒤지는 기분으로 그들의 과거를 만나보자. 거기서 홍콩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주윤발 周潤發 Yuen-Fat Chow

대륙을 뛰어넘은 남자의 로망

“신을 믿나? 내가 바로 신이야!” _<영웅본색> 중에서

유덕화, 장국영과 함께 홍콩 누아르 영화의 붐을 이끈 사람이 바로 윤발이 형님이시다. 성냥개비와 쌍권총으로 대변되는 <영웅본색> 스타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윤발이 형이 단지 ‘멋있는 사람’이었다면 그가 이렇게까지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을까? <도신: 정전자>(1989)에서 약간 맛이 간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살짝 입꼬리만 올리면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여유로움은 주윤발만의 전매특허다.

홍콩 라마섬에서 태어난 그는 17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가 1973년 TV방송국 탤런트 양성소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기 생활에 돌입한다. 이듬해 양성소를 갓 졸업한 그는 TV드라마 <상해탄>의 주연을 맡아, 일개 신인배우에서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후 그는 싸구려 쿵후영화가 판치던 주류 홍콩영화 대신 정공법으로 연기할 수 있는 진지한 영화에 도전한다. 바로 홍콩 뉴웨이브 감독 허안화의 <호월적고사>(1981). 여기서 베트남 출신 살인청부업자 역을 연기한 그는 탁월한 연기 실력을 인정받고, 홍콩의 근대 역사를 다룬 <등대여명>(1983)으로 인기와 호평을 동시에 누렸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1986년의 빅뱅에 비하면 걸음마에 불과했다. 화려한 연기자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한편의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영웅본색>(1986)이다. 주윤발 혹은 오우삼의 영화 <영웅본색>은 홍콩뿐만 아니라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타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를 강타했다. 덩달아 그는 아시아 소년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영웅본색>의 인기에 힘입어 그는 쌍권총 영화에서 <가을날의 동화>(1987) 같은 멜로물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연간 12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평본위>(1995)를 끝으로 그는 홍콩영화계를 떠나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다. 90년대 들어 홍콩영화의 열기가 식으면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주윤발의 암흑기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리플레이스먼트 킬러>(1998), <커럽터>(1999) 등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식상한 쌍권총 이미지를 팔아먹을 뿐이었다. 조디 포스터와 공연해 화제를 모았던 <애나 앤드 킹>(1999)에서 타이의 왕을 맡았지만 할리우드식 식민사관과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 출신 배우도 뚫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를 수렁에서 건져준 것이 바로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이다. 강호의 무림 고수를 연기한 그는 절제된 연기와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양자경, 장쯔이 등과 함께 부활했다. 권총 대신 칼을 들고 양복 대신 변발을 했지만 그의 몸놀림은 20년 전과 다름없이 매력적이었다. 그리하여 2000년 <피플>의 ‘50명의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굴곡은 있었다. ‘무명의 티벳승이 전세계를 강타한다’고 뻔뻔하게 주장했던 <방탄승>(2003)이라는 멍청한 버디 액션물이 그것(제작자가 하필이면 오우삼이다). 하지만 멋들어진 그의 쌍권총질을 영원히 못 보게 될지 모른다는 싸늘한 기대를 뒤로 하고, 그가 다시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의 해적 사오펭으로 돌아왔다. 조니 뎁을 압도하는 그의 카리스마와 에너지에 홍콩영화 키드들은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신을 믿나? 내가 바로 신이야!”라고 심하게 거들먹거렸던 주윤발의 명대사는 오늘날 거의 그대로 재현되는 듯하다. 그는 남자들의 로망 자체다.

성룡 成龍 Jackie Chan

그칠 줄 모르는 액션 투혼

“소신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죠.” _<80일간의 세계일주> 중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공연히 말한다. “나는 영화에 목숨을 걸었다”고. 하지만 정작 영화에 목숨을 건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바로 성룡의 영화를 보고 난 직후다. 그는 액션영화가 단지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몸부림이라는 것을 최초로 가르쳐준 배우다. 특히 그의 온몸 투혼 피투성이 NG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난다.

성룡은 1954년생이다(주윤발보다 한살 위). 그는 7살 때 황금 트리오 홍금보, 원표 등과 함께 중국경극연구소에서 10년간 춤, 노래, 기계체조, 무예, 권법 등 다양한 기예를 익힌다. 그는 졸업한 뒤 경극배우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스턴트맨으로 영화인생에 뛰어든다. 1970년 <대소황천패>에 출연했지만 무술의 신 이소룡의 인기에 가려 성룡은 조연급 배우로 전전한다. 그러나 1974년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성룡의 인생에 전환기가 온다. 일찍이 원화평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1976년부터 4년간 12편의 출연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첫 히트작이 된 <취권>(1978)을 통해 이소룡과는 다른 코믹 쿵후를 선보이며 1970년대 무협영화를 평정하기 시작한다.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대혈전>, <캐논볼>(1981) 등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으나, 만족할 만한 것은 못되었다.

홍콩으로 되돌아온 그는 심기혈전해 감독, 주연을 맡은 <프로젝트 A>(1983)로 오늘날 성룡의 대표 브랜드가 된 ‘죽음을 불사한 코믹 액션’을 선보인다. 특히 그는 주변 사물을 이용한 스턴트 액션으로 유명하다. <프로젝트 A>에서 수갑을 찬 채 5층 시계탑에서 뛰어내렸고 <폴리스 스토리>(1985)에서는 전류가 통하는 전선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온다.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 번 넘겼다. 1986년 그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용형호제>를 촬영하던 중 성벽에서 날아 나뭇가지를 잡는 스턴트를 하다가 바위에 떨어졌다. 그의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두개골이 함몰돼 뇌를 찌르고 귀로 출혈되는 대형사고를 맞은 그는 8시간의 수술을 받고 1년간 요양생활을 하기도 했다. 퇴원 뒤 그는 영화의 나머지 분량을 완성했고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그야말로 성룡의 전성기였다. 90년대 초반 주성치의 코미디영화를 비롯해 <동방불패> <황비홍> 등에 밀려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과감한 해외 로케이션으로 다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특히 <홍번구>(1995), <러시아워>(1998) 등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그는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턱시도>(2002), <상하이 나이츠>(2003), <메달리온>(2003) 등을 비롯해 최근작 <BB 프로젝트>(2006)에 이르기까지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유연한 액션과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이연걸과 함께 꿈의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롭 민코프 감독의 액션 어드벤처 영화 <포비든 킹덤>에 출연한다. 할리우드판 <서유기>가 될 이 영화에서 성룡은 사오정을, 이연걸은 손오공 역을 맡았다. 이젠 액션보다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거나, 5년 뒤 은퇴를 선언했다거나 하는 식의 얘기를 들으며 가슴 철렁했을 성룡의 팬들이여!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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