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날’로 정했다. 처음 고객 등록을 한 뒤, 단 한번 빌려가 놓고 한달 이상 반납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의적으로 ‘악의 무리’라 지칭하는 것이다. 대개가 ‘반납이 늦어지다보니 미안’해서, 또는 ‘이미 늦어진 거 버티다보면 안 줘도 되겠지’라는 등의 그들 나름의 해석을 한다. 이런 생각에는 비디오나 만화책은 ‘안 돌려줘도 되는 하찮은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어떤 경우든 정중한 방식으로 반납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데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엔 나로선 ‘응징과 처단’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대여점 근처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여자환자가 만화책 30권을 빌려간 뒤 반납을 안 한 채 퇴원을 했다.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름과 입원실 번호, 휴대폰 번호이다. 내가 하루에 한번씩 한달 내내 전화를 했음에도 그녀는 “갖다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며칠 전부터는 발신자 확인을 한 뒤 내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는 것이다.
내 사전에 ‘속수무책’이란 없다. 그녀가 입원했던 병원의 간호사 중 한명이 우리 고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그러나 아뿔싸, 그 간호사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간호사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연상하며 추려낸 이름 중 100여명을 추정한 결과, 그 간호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었고, 양해를 구하여 그녀의 집 주소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파출소로 가서 주소와 약도를 확인한 뒤,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 네 주소 안다. 오늘 너네 집에 찾아 간다.’ 이 순간부터가 나의 무료한 일상이 첩보극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물론 그날 밤,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얗게 질리는 그 표정이란…. 곧 표정을 가다듬고 하는 그녀의 말 “가져가면 되잖아요?” 나는 할말을 잃었다. 이렇듯 상식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너, 인생 그런 식으로 살지 마.”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