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피부색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오스카 수상 여부를 점칠 때나 수상자에 관해 분석할 때나 피부색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영화 속 아시아인들이 주로 인색한 가게 주인이나 공부벌레 학생으로만 그려지는 것처럼 흑인들은 많은 경우 뒷골목에서 어슬렁거리며 행인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단순강도(백인은 지능형 범죄를 주로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런 할리우드적인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그만큼 인정받은 배우들이 있다.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포레스트 휘태커…. 당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 세 배우들에 관한 소사(小史)를 7가지씩 여기 소개한다. 이 세 사람 중 포레스트 휘태커와 윌 스미스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휘태커는 수상했으며, 덴젤 워싱턴은 이미 2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는 점은 이들의 연기를 수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할리우드의 아시아 파워 빅3를 꼽을 날이 오길.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배우, 덴젤 워싱턴
1. 사실, 덴젤 워싱턴에게 ‘블랙 파워’ 운운하는 수식어는 그의 역량을 제한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는 해마다 12월 미국인의 연령, 성별, 지역별 인구비를 반영해 실시하는 해리스폴에서 ‘가장 미국적인 배우’ 톰 행크스를 제치고 2006년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배우로 꼽혔다. 그는 1989년 <영광의 깃발>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2001년 <트레이닝 데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4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2. 덴젤 워싱턴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흑인 배우들에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하룻밤 이벤트”라는 말로 지나친 의미 부여를 막았다.
3. 덴젤 워싱턴은 <허리케인 카터>(1999) 출연 당시 프로 권투선수를 섭외해 6개월의 혹독한 훈련을 거쳤고, 몸무게도 40파운드나 줄였다. 이 영화로 그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4. 그가 꼽는 인생 최고의 영화는? “다음에 찍을 영화.”
5. 덴젤 워싱턴은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미 남부를 여행하던 당시, 버지니아의 주유소에 들렀다가 화장실을 못 쓰고 쫓겨난 일이 있었다. 레스토랑에 갈 수 없어서 차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스타가 된 지금도 뉴욕 밤거리에서 택시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흑인의 인권 문제를 다룬 <솔저 스토리>(1984), <영광의 깃발>(1989), <말콤X>(1992) 같은 영화들에 꾸준히 출연한다.
6. 그의 지적인 이미지와 섹시함은 피부색을 떠나 많은 여성팬에게 어필한다. 하지만 흑인 여성들에게 그는 정말 특별한 의미다. 백인 여배우와 키스라도 할라치면 흑인 여성팬들이 “배신이야” 하고 거세게 항의한다.
7. 덴젤 워싱턴이 연출한 첫 영화는 <앤트원 피셔>(2002)였다. 20여년간 연출할 기회를 기다렸다는 그의 말, “촬영하면서 날마다 ‘오마주의 날’을 정했다. 오늘은 스파이크 리, 오늘은 스티븐 스필버그… 이런 식으로. 나는 함께 일했던 감독들의 재능을 몽땅 도둑질한 것이다!”(웃음)
<라스트 킹>으로 19개 상을 받은 사나이, 포레스트 휘태커
1. 약간 졸린 듯 눈이 부신 듯 가늘게 눈을 뜬 모습의 그는 사실 선천적 약시다. 휘태커의 말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도 약시였다고.
2. <라스트 킹>(2006)으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휘태커이건만, 희한하게도 그의 수상소감은 널리 보도되지 않았다. 심지어 객석에 있는 사람들조차 크게 귀기울여 듣지 않은 눈치. 이유는 그의 수상소감이 텍사스에서 시작된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믿는 신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감사하는 내용이어서 시간을 많이 끈 데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3. <라스트 킹>에서 이디 아민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스와힐리어를 배웠고, 악센트를 익혔으며, 책과 테이프, 다큐멘터리를 섭렵했다. 또 그는 우간다로 가 이디 아민의 형제들과 그의 수하들을 만났고, 심지어 우간다 왕까지 만났다.
4. TV시리즈 <로스트>에서 소이어 역을 맡을 뻔했으나 폭스에서 그가 감독할 영화 <대통령의 딸>(2004)의 제작을 결정하면서 <로스트>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TV영화 두편과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한 <사랑을 기다리며>(1995)를 포함한 세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5.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듣고 휘태커가 출연한 작품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라면 <버드>(1988)를 볼 것을 권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휘태커는 찰리 파커로 출연했고, 이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6. 그래서 그가 꼽는 최고의 출연작 세편은, <버드> <고스트 독>(1999) <라스트 킹>이다.
7. 놀랍게도, 그가 가장 흥미로웠다고 말한 연기자는 미키 루크다. “<쟈니 핸섬>(1989)에서 함께 연기했는데, 루크가 내게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루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정말 강렬했는지 내 상상력이 과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너도 알겠지만 난 자넬 실망시킬 거야. 하지만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루크는 ‘고맙네’라는 대사를 했다. 정말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액션의 연인, 코미디의 맏형, 윌 스미스
1. 윌 스미스가 출연을 거부했던 영화 중에는 <매트릭스>의 레오 역이 있는데, 그는 레오 역을 거절한 게 가장 후회되고,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찍은 것 역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윌 스미스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브래드 피트 역으로도 거론된 적이 있으며, <맨 인 블랙>에서 그가 맡은 역에 원래 크리스 오도넬이나 데이비드 쉼머 같은 백인 배우들이 거론되었었다.
2. 윌 스미스는 영화 데뷔작인 <흔들리는 영웅>(1992)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당시 출연료로 5만달러를 받았다. 주연으로 출연한 최초의 히트작인 <나쁜 녀석들>(1995)에서는 200만달러를 받았으며, 이후 <맨 인 블랙>(1997)에서 500만달러, <아이, 로봇>(2004)에서는 2800만달러를 받았다.
3. 2006년 <프리미어>가 꼽은 2006년 할리우드 파워 50에서 14위에 올랐는데, 이는 배우로서는 톰 크루즈 다음으로 높은 순위다. 2005년 같은 차트에서는 18위에 올랐다.
4.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에서 데이트 코치로 출연한 윌 스미스가 말하는 첫 데이트의 교훈, “유머가 돈이나 근육보다 낫다는 걸 깨달았다. 돈과 근육은 빨리 어필하지만, 유머처럼 오래가지는 않더라”. 참고로, 그는 <알리>(2001)에서 실존 인물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로 출연했는데 당시 근육을 키운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나는 인간 비아그라다. 윌라그라라고나 할까. 섹스머신이 되었다. 아내가 아주 좋아한다.” <알리>에는 그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도 출연했다.
5. 그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명언을 마음에 늘 새긴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실패가 네 마음을 지배하게 하지 말고, 성공이 네 지성을 좌지우지하게 하지 마라’.”
6. 그런 그의 꿈은 단순히 아카데미상이나 높은 개런티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웃지만 나는 진지하다. 앞으로 15년 뒤 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7. 래퍼인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17살짜리 조카가 랩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는 조카가 가족 대표로 노래할 거다. (웃음) 난 이제 그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