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형제처럼 지내는 네명의 킬러가 있다. 일감을 받아오는 맏형 상연(신현준), 사격의 달인인 둘째 재영(정재영), 다혈질인 셋째 정우(신하균), 상연의 친동생이며 컴퓨터 전문가인 막내 하연(원빈) 등 네 사람은 지금까지 의뢰받은 일을 실수한 적 없는 킬러들. 하지만 경찰이 호송하던 인물을 살해하면서 그들은 조 검사(정진영)에게 뒤를 밟힌다. 폭력조직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증인을 잃은 조 검사는 살인자가 전문킬러임을 직감하고 그들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문제는 조 검사의 등장만이 아니다. 정우는 살해할 대상이 임산부라 감히 총을 꺼내지 못하고 킬러들의 은신처엔 영어선생님을 죽여달라는 여고생이 찾아온다. 난감한 상황이 잇따르면서 킬러들은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존재론적 고민에 봉착한다.
■ Review
<킬러들의 수다>는 ‘기막힌 킬러들’의 이야기다. 장진의 첫 영화 <기막힌 사내들>을 떠올린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킬러들의 난처한 표정에 동화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들은 어쩌다 곤경에 빠지게 되었는가? 원빈이 맡은 네명 킬러 중 막내 하연은 극중 화자로서 말한다. “우리는 킬러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지 난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우릴 찾는 걸 보면 지금 사람들에게 우리가 간절히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장진은 눈 딱 감고 ‘지금은 킬러가 필요한 세상’이라고 ‘구라’를 친다. ‘킬러를 경찰관이나 소방관처럼 그냥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가정한 다음 세상을 들여다보라. 당신의 시각이 삐딱해진 만큼 늘 변함없던 현실이 달라보이지 않나?’라고.<기막힌 사내들>에 나오는 서울 지리를 몰라 헤매는 택시기사나 <간첩 리철진>의 택시강도를 만난 간첩처럼 자신의 존재조건에 큰 구멍이 난 인물들이 일으키는 소동은 삶을 경건하고 지루한 궤도에서 밀어낸다. 전작처럼 <킬러들의 수다>의 인물들은 의당 그 직업이 갖춰야 할 일정량의 사악함이 없다. 임산부에게 총을 겨누지 못하는 건 그렇다 쳐도 TV 앵커우먼의 외모에 넋이 나간 얼굴에서 드러나는 순박함이나 ‘I never miss you’를 ‘나는 절대 미스 유가 아니다’로 해석하는 황당한 상상력은 이들 킬러가 정말 살인 전문가들일까 의심케 한다. 이리 착해 빠진 인간들이 청부살인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일이 꼬이지 않을 리 없다.
여자를 살해하러 갔던 정우는 옆집에 사는 청년인 척하다 그녀가 인사차 건네는 떡만 얻어 돌아오고, 정우의 처지를 이해한 상연은 살인을 의뢰한 사람을 찾아가 실컷 패주고 만다. 킬러만큼이나 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인물로 킬러들을 쫓는 조 검사가 등장한다. 그는 “우리 아기 죽이지 말라고 부탁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임산부에게 “경찰은 그런 거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잡는 사람이지 나쁜 짓 하지 말라고 부탁은 안 합니다”라고 답하지만 결국은 그녀의 말에 따라 선행을 부탁하는 상황에 이른다. 하나같이 어리숙하고 선한 장진의 인물들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이치의 나쁜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치이다. 장진은 그렇게 엉뚱한 시각으로 지금 이곳을 들여다보며 등장인물과 현실이 부딪치며 내는 불협화음으로 유머의 행진곡을 들려준다. 흔히 장진사단이라 불리는 임원희나 정규수 같은 배우의 비중이 낮아지고 신현준, 원빈 등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타협이긴 하지만 결과가 나쁘지 않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신현준의 모습에선 친밀감이 자연스레 배어나고 스크린에 첫선을 보이는 원빈의 빛나는 외모도 부담스런 종류가 아니다. 여기에 장진의 배우들인 신하균, 정재영이 가세한 네 남자의 궁합은 완벽해보인다.
특히 원빈이 사랑에 관한 일장설교를 하는 장면에선 폭소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웃음의 타이밍과 상황의 역설이 어우러진 장진 유머의 진수가 들어 있는 명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러나 웃음의 깊이를 따진다면 <킬러들의 수다>가 제공하는 울림은 <간첩 리철진>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서스펜스를 강조한 오페라하우스 살인시퀀스와 쫓고 쫓기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절정부는 장진의 코미디 감각보다 장르영화적 테크닉에만 의존해 있어 어딘지 엉거주춤하다. 표현수단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 장진 특유의 거침없는 연출이 아쉬운 지점이다.<킬러들의 수다>는 네 남자의 좌충우돌이 빚어내는 TV 시트콤이었다면 매우 훌륭했을 작품이다. 한편의 영화에 담겨야 할 압축적이고 궁극적인 표현에서 미진하지만 개별 상황이 만들어내는 촌극은 배를 부여잡게 만든다. 장진식 코미디의 장점이자 한계가 여기일까? 속단할 필요는 없다. 우리 앞에 펼쳐놓은 한보따리 웃음이 감동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장진의 유쾌한 수다는 계속될 것이다.남동철 [email protected]▶ <개봉작> 킬러들의 수다
▶ "킬러는 소재일 뿐, 부드러운 화두를 던진 것" - 정진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