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로스앤젤리스 캘리포니아대학에 재학중인 엘르 우즈(리즈 위더스푼)는 멋진 금발의 소유자로 학내 여학생 클럽 ‘델타 누’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 자신의 남자친구인 워너(매튜 데이비스)와 결혼하는 것이다. 어느날 밤, 그녀는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를 기대하며 약속장소로 나가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기치 못한 절교선언이다.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해서 법률가로 성공한 뒤 30대에 상원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지닌 워너는 의원의 아내는 “마릴린 몬로가 아니라 재클린”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거부한 것. 이후 전전긍긍하던 엘르는 워너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는 방법은 하버드에 입학해서 그에게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Review 빵빵한 가슴에 빛나는 금발을 가진 여성들은 으레 머리는 텅 비어 있기 십상이라고? 혹은 애인으로 삼을 만한 여자가 따로 있고 결혼해서 함께 살 만한 여자가 따로 있는 법이라고?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 엘르 우즈의 분통이 터지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런 편견들이다. 엘르는 이런 편견이 사실무근임을 입증하기 위해 체질에 안 맞는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는 수고도 마다 않는다. 결코 그녀가 ‘무식’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금방 깨닫게 되는데 참으로 엘르는 아는 것이 많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골빈 금발이니 바가지 씌워도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옷가게 주인은 패션잡지 정보를 줄줄이 꿰는 그녀의 실력에 그만 나가떨어지고, 미용실 안에 있던 모든 손님들은 어떤 남자라도 넘어간다는 제스처에 대한 그녀의 시범을 열심히 따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게다가 계모에게 살인죄를 덮어씌우려던 딸의 위증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도, 파마하고 24시간 이내에는 물을 가까이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엘르가 있었기 때문이다.어라? 이건 에이미 해커링의 <클루리스> 여주인공 얘기 아냐? 셰익스피어는 누군지 알 바 아니라도 프랑코 제피렐리의 <햄릿>에서 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나왔다는 건 바로 알아맞히던 그 현대판 ‘엠마’. 걔도 참 이것저것 아는 건 많았었지. 또한 속물들로 가득하지만 겉보기엔 근엄한 사회 혹은 집단을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괴짜들에 대한 찬가는 할리우드가 즐겨 다루는 얘깃거리 가운데 하나다.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 엘르의 캐릭터는 분명 에이미 해커링의 <클루리스>에서의 알리샤 실버스톤과 프랭크 카프라 영화의 게리 쿠퍼 내지는 제임스 스튜어트를 조합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니나 다를까 한 미국 평론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발이 너무해>는 “클루리스 하버드에 가다”라는 제목이 딱 어울렸을 그런 영화다. 단, 에이미 해커링 영화에서와 같은 위트를 기대하지는 말 것.
오히려 여주인공 엘르의 캐릭터와 좀더 근친관계에 있는 것은 <해피 길모어> <워터보이>의 애덤 샌들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덤 샌들러가 연기한 해피 길모어나 워터보이에 못지않게 리즈 위더스푼의 엘르는 황당하고 무모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덕분에 알렉산더 페인의 재기발랄한 풍자극 <일렉션>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가 여기에서는 그저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어쨌거나 그들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가능할 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을 쟁취하고야 만다. 결국 <금발이 너무해>는 교훈 한 가지는 전해주는 셈이다. 뭐든 잘하는 것 하나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는 것. 거기에 교양과 지성이 덧붙여지면 더 폼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금발이 너무해>의 문제는 무엇보다 편견을 공박함과 동시에 조장한다는 데 있다. <금발이 너무해>에서 백인 상류계급에 편입되지 못한 인간들은 기껏해야 주인에게 버림받아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개 취급- 엘르와 같은 여신의 은총이 내리기 전엔 도저히 구원받을 가망이 없는- 을 당하기 십상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대개 패션감각이라곤 전혀 없는, 몸치장에는 손방인 인물들이다.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은 터질 듯한 뱃살에 머리는 듬성듬성한 데다가 러닝셔츠 바람이고, 아버지를 죽인 딸은 끔찍한 파마머리- 그것도 검은색 머리!- 에 시시한 캐주얼 차림이다. 위증을 하는 수영장 청소부는 거무튀튀한 피부의 게이다. 엘르 왈,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법이다. 엘르로 하여금 용의자로 몰렸던 미용강사가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만드는 것도 단지 그 때문이다. 외모에 대한 편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가 결국은 희한한 방식으로 그 편견을 좀더 공고히 한다.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어 한때 <툼레이더> <A.I.> 등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빌리지 보이스>의 제시카 윈터는 결국 “수다쟁이 백치”에 지나지 않는 여주인공의 성공담에서 대통령 부시의 정치적 여정에 대한 반영을 보았다. 그는 최근 핑크빛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라라 크로프트가 되기 위해 준비중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개봉작> 금발이 너무해
▶ 뒤로 가는 할리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