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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분노가 심야의 도로를 질주한다, <쏜다> 부산 촬영현장
사진 서지형(스틸기사)김도훈 2006-11-21

숫제 세트나 마찬가지다. 새벽이 깊은 부산 송정터널 앞 사거리가 마치 수십억원을 들여 만들어놓은 세트처럼 느껴진다. 8차선의 도로를 막아선 스탭들, 빠르게 서로를 쫓는 BMW와 메르세데스, 십여대의 엑스트라 자동차들.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을 통제하는 이곳은 도심난장극 <쏜다>의 촬영장이다. “모토가 뭐냐고? 한국영화의 외딴 도로 카체이스 장면을 벗어나는 영화지.” 박정우 감독은 낮밤이 바뀐 현장에서도 키득거리는 특유의 웃음으로 현장을 지휘 중이다. 오늘 촬영할 장면은 감우성이 분하는 소시민 박정수가 비리 국회의원의 아들과 목숨을 건 경주를 벌이는 부분. 곳곳에서 현장 통제요원들의 목젖 떨리는 외침이 들려온다. “저 버스 좀 잡아줘!” “그냥 지나가주세요!”

새벽 5시가 가까워오자 오늘의 하이라이트 쇼가 펼쳐진다. 감우성의 메르세데스를 쫓던 BMW가 오토바이 가게를 들이받는 장면이다. 교차로에 세워둔 1억원짜리 오토바이숍에는 수백만원짜리 오토바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10초 남짓 촬영할 장면인데 1억원이 들었다”는 감독의 말에서 아까운 기색은 드러나지 않는다. “주문하면 10cm까지 자동차를 붙여준다”는 국내 쇼바이크의 지존인 스턴트맨 문정수씨가 BMW에 시동을 건다. “조용히!” 맹렬한 굉음을 내며 돌진하는 자동차. 사방팔방으로 날리는 유리조각. 수십 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려오는 충돌음. 세트는 박살났지만 스턴트맨은 안전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탭들의 박수가 들리지 않는다. 뭔가 잘못된 건가. 박정우 감독의 너털웃음이 터졌다. “우리 현장이 원래 이래. 이 정도로는 박수 안 쳐.”

<쏜다>는 그야말로 끝까지 쏘는 영화다. 주인공 박만수(감우성)는 윤리 선생인 아버지의 지나친 가정교육으로 인해 바른생활 인간이 되어버린 남자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바른생활 인간은 그저 구박덩어리일 뿐. 결국 정리해고와 이혼장을 동시에 받아버린 이 남자, 노상방뇨로 끌려간 경찰서에서 양철곤(김수로)을 만나 총기탈취에 탈주까지 감행하고야 만다. 이제 두 사람은 갑갑한 도시를 난장지르며 시원하게 인생 한번 쏴보자 결심한다. 코미디영화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쏜다>는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야심찬 카체이스영화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고 충고하는 감우성과 김수로의 일탈극은 2007년 2월 구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두 번째 메가폰 쥔 박정우 감독

“<쏜다>는 <난다> <간다>로 이어질 도심난장 3부작이다”

박정우는 전복과 일탈의 재기발랄 만담가다.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특사> 등의 시나리오를 통해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원하는 남자들의 세계를 그려냈던 그가 직접 메가폰을 들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기술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다. “작가를 오래 하면 기술자가 된다. 관객이 원하는 반응을 뽑아내기 위한 테크닉에만 집중하게 된다.” 데뷔작 <바람의 전설>은 흥행에서 바람을 맞았지만 춤을 통해 전복을 꿈꾸는 남자의 성공담이란 딱 박정우표 이야기였다. “주제는 감독에게 맡기고 재미와 흥미를 담는 데 충실하자는 게 시나리오작가 시절 목표였다. 하지만 메가폰을 쥔 지금은 내가 항상 해보고 싶었던 것에 남들이 한번도 안 해본 것을 더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박정우 감독의 야심작 <쏜다>는 <난다>와 <간다>로 이어질 3부작 도심난장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 난장도 반복되면 비슷비슷해지지 않겠느냐고? “작가 때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박정우 스타일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어서다. 잘되든 못 되든 내 스타일로 간다.” 죽어도 쏘고 살아도 쏜다. 박정우 감독이 그려내는 일탈자들의 세계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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