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와 대만을 보면서 내뱉는 깊은 안도의 한숨, 노무현 대통령(정권)이 무능했기에 망정이지 유능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유능해서 부패까지 했으면 우리도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까. 탁신 치나왓 타이 총리와 천수이볜 대만 총통의 약한 고리는 부패였다. 탁신은 놀부처럼 한손에는 권력 또 한손에는 금권을 쥐고 끝까지 놓지 않으려다 제대로 당했다. 타이 제일의 갑부는 어찌나 한푼도 아까워하는지 가족이 보유한 통신회사 주식을 싱가포르 자본에 19억달러에 넘기고도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천수이볜도 부패문제로 일촉측발의 위기에 처했다. 부인에 이어 측근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뇌물 스캔들이 터져나온다. 노무현이 부패했다면, 그들이 얼마나 개거품을 물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들은 그들을 파퓰리스트라고 부른다. 노무현도, 탁신도, 천수이볜도 조국의 보수한테 파퓰리스트로 불린다. 하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념없는 변화, 말로 떠드는 개혁은 파퓰리즘과 반끗 차이다. 그들의 창대한 시작은 여러모로 비슷했다. 아시아 삼인방의 당선은 억눌린 지역의 한풀이였다. 대만의 남북갈등은 남한의 동서갈등을 백번쯤 뺨친다. 천수이볜은 총을 맞는 퍼포먼스(?)까지 벌인 끝에 51 대49로 당선됐다. 천수이볜의 민진당은 남부의 대만인 정서를 대변한다.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20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지지층이다. 물론 국민당은 장제스 정권이 망하면서 대륙에서 도망온 집단에서 출발했다. 20세기 말, 그들도 우리처럼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정말로 ‘자유중국’과 ‘자유대한’은 독재뿐 아니라 민주화까지 이토록 닮았다. 그들은 노무현을 못 잡아 먹어 안달이지만, 노무현은 천수이볜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래도 노무현은 깨끗하다. 억눌린 자들의 열망을 가문의 부패로 ‘말아먹은’ 천수이볜이 나는 ‘놈현이’보다 백배는 밉다.
노무현이 탁신과 비슷하다고 하면, 둘 다 화낼지 모르겠지만, 닮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탁신도 나름대로 개혁가였고, 빈민의 희망이었다. 타이는 ‘방콕’과 ‘방콕 이외의 지역’으로 나뉜다. 방콕에서 살았던 후배가 언젠가 말했다. “형, 방콕은 타이가 아니야.” 방콕을 한마디로 압축한 촌철살인이었다. 방콕과 지방의 격차는 서울과 지방 차이의 열배쯤 뺨친다. 탁신은 방콕 이외의 지역, 특히 못사는 북부에 기반한다. 탁신의 타이 락 타이당과 노무현의 당(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구원투수로 등장해 개혁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전파해왔다는 면에서 닮았다. 탁신은 쫓겨날 만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탁신의 축출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은 하나가 아니다. ‘진보’만도 아니다. 제3세계의 토호세력도 때때로 신자유주의에 반감을 느낀다. 타이의 쿠데타를 국왕의 자족경제와 탁신의 신자유주의 전망의 충돌로 보는 분석도 있다. 자수성가형 신진세력이요 신자유주의 전파자인 탁신의 정책에 국왕, 세습관료, 군부로 구성된 기득권 삼각동맹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웃지 못할 아시아의 난센스요, 희비극이다. 천수이볜이 하야하면 권력을 되찾을 국민당도 대만의 딴나라당이다(정말로 대만 독립에 시큰둥하다). 이렇게 작금의 아시아에 구세력의 반동이 승하다. 피땀으로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 죽 쒀서 X 주게 생겼다. 아시아가 위험하다.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그분들 충고를 들어라.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타이의 쿠데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정권에 충고했다. 그리고 “쿠데타의 주 이유는 부패한 권력이었다”는 혜안으로 정곡을 찔렀다. 겉으로 유기준을 나무라도, 속으로 동감하는 보수가 한둘이랴. 대만과 타이의 섬뜩한 사태를 생각하니 대통령의 얼굴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그래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놓고 부패하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다고, 위안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니다. 그들의 말대로, 미국의 은혜다.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우리 함께 노래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