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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의 사연 들려주는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 [2]
장미 2006-09-29

<사이드웨이>의 마일스

“와인도 홀짝이고, 님도 만났죠”

<사이드웨이>

제 이름은 마일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나저나 세호라는 분은 왜 저렇게 어두울까요.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죠, 뭐.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재직 중인데요. 음, 항상 작가로 등단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있었습니다. 왜 갑자기 말이 뜸해지냐구요? 지금까지 제가 써온 글만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실패투성이인 제 인생이 그러하듯 간절한 바람에도 제 글은 책으로 출간되지 못했죠. 그 와중에 아내가 저를 떠났고 대신 제 일상 속으로 우울증 약과 와인이 걸어 들어왔습니다. 와인, 그중에서 와인이야말로 제 인생 최고의 친구나 다름없는 멋진 존재죠. 코끝에 살짝 머무는 와인의 향기에 취할 때면 저는 세상 모든 근심을 잊고 황홀경에 빠져든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 친구 잭이 결혼을 한다더군요. 우리는 잭의 총각파티를 겸해 샌타바버라 지대의 와인농장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 찰랑이는 와인의 매력이란.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곳에서 마야를 만난 겁니다. 레스토랑 웨이트리스인 그녀는 제 얘기를 재밌게 들어주고 제 책을 재밌게 읽어주는 사려 깊은 여인이랍니다. 몇번의 만남 끝에 그녀에 대한 애정이 분수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만나달라는 말을 감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아, 저처럼 소심한 인간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요. 이럴 땐 와인을 정말 병째로 들고 한번에 삼켜버리고 싶습니다. 흐흑. 그래서 결국엔 어떻게 됐냐구요? 사실 제 얘기의 끝은 해피엔딩입니다. 여전히 적극적인 애정표현엔 약하지만, 가끔은 와인에 취해 감정이 격해지긴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마야 곁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습니다.

another loser_잭

주가 폭락 중인 한물간 배우. 병적인 바람둥이로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다른 여자들을 침대로 끌어들임. 물론, 그러다 스테파니에게 걸려 얼굴이 작살이 나기도 하지만. 마일스와는 대학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옴.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일스에게 섹스가 부족하다는 둥 과격한 처방을 내리기도 함. 무사히 결혼에 골인하지만 바람이라는 불치병을 고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

<반칙왕>의 임대호

“사랑을 타이거마스크, 아니 민영씨에게 바칩니다”

<반칙왕>

아, 여보세요. 헛헛. 저는 임대호라고 합니다. 근데 지금 진짜 전화 연결이 된 건가요? 모두 잘 들리십니까? 아아아. 어쨌든 이렇게 전화가 연결되다니 기쁘기 한량없군요. 기구함에 대해서라면 저야말로 할 말 많은 사람이죠. 사실 저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만년 평행원이었습니다. 요즘 워낙 취직이 안 되고 마흔살 문턱을 넘기도 전에 회사에서 모가지 잘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은행이 그야말로 최고의 직장으로 각광받지만, 매일 돈냄새 맡으며 은행에서 일하는 게 그리 행복한 일만은 아닙니다. 특히 제가 몸담고 있던 은행의 부지점장처럼 성격 더럽고 치사한 놈을 상사로 모셔야 한다면 더욱 그렇겠죠. 매일 헤드록을 걸며 어찌나 절 괴롭히던지. 툭하면 지각했다고 잔소리에, 실적 나쁘다는 구박에, 이젠 못 참겠다 싶었죠.

그래서 찾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장 관장이 운영하는 레슬링 도장입니다. 처음에는 오로지 반칙왕 울트라 타이거마스크에 피가 끓어올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곧 깨닫게 됐죠. 승리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단 걸요. 하하. 이게 다 저, 타이거마스크 때문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최곤 선생님, 저는 당신이 다시 찾은 희망이란 것이 어떤 모양새인지 알고 있습니다.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무릎 꿇지 말라. 유비호와의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그와 맞붙을 용기를 내게 된 건 일말의 희망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아, 아니 어쩌면 몇 송이 들꽃에도 미소짓는 민영씨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이곳에 전화를 건 것은 그녀에게 당당히 고백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미미민, 민영씨, 사, 사사랑합니다. 타이거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꼭 이 얘길 전하고 싶었습니다….

another loser_태백산 & 오대산

태백산: 임대호에게 레슬링의 기본을 전수해준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 사라져버린 오대산 때문에 원시인 복장을 한 채 링 위에 오르지만 실상 그닥 도움이 되지는 못했음. 약간 나온 배와 살짝 모인 입술이 매력 포인트.

오대산: 임대호에게 똥침을 당하고 포크로 이마까지 뚫렸던 불쌍한 레슬러. 막판에는 경기를 앞두고 머리에 망치를 맞아 맞아 기절한 듯 잠들기도 함.

<트레인스포팅>의 마크 렌튼

“마약 나빠요~ 돈 좋아요!”

<트레인스포팅>

마크 렌튼입니다. 임대호씨가 레슬링에 빠져들었듯 저 역시 무언가에 미친 듯이 열중했죠. 바로 마약입니다. 최곤 씨는 대마초를 하다 연행됐다지만 온갖 마약을 섭렵했던 저와 비교할 때 그 경우는 새 발의 피일 뿐입니다. 당시 저는 마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른 찌질이 친구들과 함께 에든버러의 뒷골목을 주무대 삼아 방황했었죠. 앞뒤 잴 것 없이 거리를 질주하는가 하면 구토물과 먼지 등으로 지저분한 골방에서 오래도록 마약의 기운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변기 속으로 기어 들어갈 정도였으니 제가 어떤 짓을 하고 다녔을지 상상이 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막나가던 중 마침내 큰 건을 해내고 맙니다. 마약 거래를 통해 얻은 돈을 친구들 몰래 혼자 훔쳐 달아난 거죠. 순간, 저는 제 앞길에 서광이 내리쬐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하하. 얼마나 달콤한 순간이던지. 그 뒤 완전히 마약을 끊었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웠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그 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느냐구요? 누구 놀리십니까? 여기에 전화하기 위해 쓴 800원이 제 전 재산입니다. 혹시 서울역 근처를 지나다 꼬질꼬질한 금발 노인네를 보시면 적선을 부탁드립니다. 누군지 모르시겠거든 마크 할아범이 어딨는지 찾으시면 됩니다.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제발 부… 뚜뚜뚜.

another loser_마크의 찌질이 친구들

벡비: 한마디로 동네 깡패. 손에 쥐고 다니는 날카로운 나이프처럼 언제 언제서나 폭력을 휘두를 준비가 돼 있음. 특기는 사람 패기, 취미도 사람 패기. 술잔을 집어던져 호프집 아가씨를 피범벅으로 만드는 건 예삿일. 지금쯤 교도소에 있을 듯.

스퍼드: 찌질이 중의 찌질이. 술에 떡이 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배설하는 습관이 있음. 그래서 여자친구 집에서 개망신당하기도 했음.

식보이: 숀 코너리라는 이름을 입에 달고 사는 핸섬 가이. 마크, 스퍼드와 마찬가지로 중증 마약중독자임.

강 PD, 거봐, 내가 전화 통화가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했지? 사람 말 안 믿더니 이게 뭐야. 아, 시청자 여러분, 우울한 사연으로 꿀꿀한 기분이 들게했다면 죄송합니다. 프로그램이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전국 각지의 정신병자들까지 죽어라 전화를 걸어대는군요. 그저 루저들의 속앓이 들은 셈치고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십쇼. 원래 불쌍한 사람들일수록 주절주절 자신의 과거에 대해 풀어놓고 싶어하는 법이랍니다. 벌써 프로그램 시작한지 30분이 넘어가는데 여기서 노래나 한곡 듣죠? 비도 오는데 wp 빅히트곡 <비와 당신>, 어떻습니까? 네, 좋으시다구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럼 비와 당신 듣겠습니다. 그럼 잠시 뒤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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