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 신나치들은 말 그대로 색다른 편법을 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그들은 더이상 빡빡머리에 공군화, 달라붙는 청바지와 군 점퍼가 아니라 힙합패션인 헐렁한 바지, 다양한 색깔의 윗도리, 운동화 등을 입고 다니며 체 게바라 티셔츠나 팔레스타인 스카프까지 장식해 좌파나 기타 청소년 집단들과 구별하기 어렵게 위장한다고 한다. 신나치들의 이러한 일종의 의태는 평상시나 시위 때 좌파나 경찰이라는 ‘적’을 혼동시키기 위해 게릴라 수법을 선택한 까닭이다. 생태계에서는 크게 봐 두 가지의 의태(擬態)가 있다. 하나는 잠재적인 적을 속여서 단념하게 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게 하기 위한 수법이다. 다른 하나는 잠재적인 먹이를 유인하기 위한 속임수이다. 상징으로서의 패션 문화코드를 이용한 독일 신나치들은 아마도 후자의 경우일 터인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닌자의 연막탄 효과에 가깝다. 옷이 똑같아도 사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만큼 정치적이지는 않겠지만, 요즘 한국의 일부 패션코드도 최루가스처럼 눈에 맵다.
필자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면서 도처에 걸려 있는 간판들에 쓰여져 있는 글자를 열심히 읽어봤다. 독일에서 출발하기 전에 한글은 배웠지만, 한국어는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글씨를 알아볼 수 있기는 하나,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 그러나 당시엔 필자가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상형문자’가 실제 적용된 상태에서 발음이라도 음독할 수 있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껴 만족했다. 그리고 한글은 정말 아름답고 멋있는 글이라서 단지 미학적인 시각에서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물론 공항에서 시내로 가면서 모른 채 읽었던 간판들은 ‘함-흥-냉-면’, ‘단-란-주-점’, ‘할-인-판-매’ 등과 같은 별로 매력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내용들이었을 터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긴 하다. 어쨌든 거의 두달 동안 한국에서 여행하고 귀국하기 전에 동대문 시장에 가서 기념품으로 중고 야구셔츠 두벌을 샀다. 하나는 빨간색에 가슴에 ‘해-태’라고 쓰여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회색인 앞면에 ‘모 고등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옷을 입고 다닌다면 웃기는 짬뽕이 되겠지만, 독일에서는 (적어도 필자의 당시에 생각으로) ‘멋’있었다. 야구규칙도 모르고 야구에 대한 관심도 없는 필자는 왜 하필 야구복을 구입했을까라고 희한해할 수 있겠지만, 실은 이 옷 말고는 한글이 쓰여져 있는 옷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12년 전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는 광고용이나 전통적인 것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한글이 적혀 있는 옷보다는 라틴어 글씨(대부분 영어나 프랑스어)가 붙어 있는 옷이 훨씬 더 많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외래어가 더 ‘멋’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옷뿐만 아니라, 가정용품, 가게 간판, 신문기사까지 외래어와 ‘공글리시’가 도처에서 발견된다. 최근에는 월드컵 개최국가라 그런지 독일어도 여기에 가세한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필자의 주관적인 관찰에 의하면 글씨는 철자법이 틀리거나 아무 맥락이 없는 의미를 띠거나 내용이 달라 어색한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도 유명 연예인들까지 한문, 산스크리트어 등 아시아권 글씨로 문신한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철자법이나 글자 배열이나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흔하고, 이 사실을 알리면서 해당 연예인을 놀리는 인터넷 페이지도 개설되곤 하다. 한국에서는 문신까지 하지는 않지만, 묻지마 외래어 장식이 남녀노소 구별없이 번지고 있다는 사실은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영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겠지만, 할머니가 ‘Mickey Mouse’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는 윗도리, 소녀는 ‘Sexy Girl’이 붙여진 셔츠, 여대생은 ‘Juicy’라는 글씨가 바로 가슴에 새겨져 있는 경우라면, 좀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이러한 상대적으로 천진한 사례들보다는 ‘ENGLAND’, ‘VOLKSWAGEN’, ‘DEUTSCH’ 등의 더 단순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어로 된 심한 욕설이나 상스러운 글이 새겨져 있는 옷도 드물지 않다. 옷 주인이 모르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패션성명’(?)들을 읽게 되는 사람은 좋은 경우에는 민망한 마음만 들지만 더러는 불쾌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외래어로 표시되어 있는 이 수많은 옷에 있는 똑같은 말을 한국어로 찍어서 입는 것을 상상해보면 어색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100% 순수한 XX새끼 캐나다인”이라면 ‘패션성명’보다는 일종의 공식 관객모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미친 듯이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에서 ‘나 몰라라’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옷이 날개다’라고는 하지만 크고 작은 상표가 달라붙은 옷을 입고 마치 ‘걸어다니는 공짜 광고기둥’ 노릇을 하는 것도 우리 시대의 웃긴 일면이다.
옷에 글씨를 인쇄하는 것은 패션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글자를 단지 ‘물건의 형상을 시늉하는’ 곡선과 직선으로서의 상형(象形)으로 보는 거다. 하지만 언어의 권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글자는 언제나 정해진 기호(記號)이며 상징(象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옷과 문구를 창조적인 문화, 게릴라적인 정치로서의 재활용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의태에 그치면 패션이 나도 모르는 깃의 날개가 되어버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