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애니메이션 황금시대다. 지난 10년간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전세계적으로 벌어들인 돈이 60억달러(약 5조7천억원)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올해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65%를 차지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일명 ‘아니메’)의 극장판이 전면 개방이 되는 해인데다, <슈렉> 시리즈, <인크레더블> <니모를 찾아서> 등이 흥행에 성공한 미국에서도 스타 배우들이 더빙한 애니메이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재도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몬스터 하우스> <카> <파이 스토리> <포켓몬 레인저와 바다의 왕자 마나피> <가필드2> 등이 개봉을 했거나 앞두고 있어 한동안 애니메이션 붐은 계속될 전망이다. 양국의 치열한 애니메이션 제작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향후 주도권을 지게 될 쪽은 어느 쪽일까?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비교하고, 골리앗들 사이에 낀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도 함께 짚어본다.
1. 꿈과 희망 - 디즈니의 동화 vs 지브리의 신화
디즈니와 지브리는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상징 같은 존재다. 둘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디즈니가 아직 아이의 세계라면, 지브리는 어른의 세계를 지향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모험성, 코믹성 등을 가미한 명작동화 영상물이라고 한다면,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일본 만화계의 1인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창조해낸 신화+동화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도날드 덕> <미키마우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뮬란> 등 디즈니는 동화와 원작소설에 충실한 반면, 뻔한 결말과 권선징악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러디 대마왕 드림웍스와 기발함으로 무장한 픽사에 권좌를 양보하고 있다. 심지어 <위니더푸> <정글북> <백설 공주> 등에서 자기복제를 한 흔적까지 발견돼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공격까지 받고 있다.
한편, <미래소년 코난> <모노노케 히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에는 똑 부러지는 여자애가 주인공인 모계사회가 등장하곤 한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전쟁과 도시화에 대한 반성과 혐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신비와 향수가 약하고 부드러운 여성 캐릭터로 전이된 것이다. 물론 다카하다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처럼 옛 일본 제국에 대한 향수를 역설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 더 많다.
2. 인간에 대한 풍자 - 의인법 vs 은유법
미국산 애니메이션이 의인화를 잘하는 반면, 아니메는 은근한 비유를 즐긴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카> <가필드2> 등은 각각 인형, 물고기, 자동차, 고양이 등 동물이나 사물을 의인화하는 기법으로 인간사회를 형상화한다. 가족애, 휴머니즘, 자본주의의 문제점 등을 다루는데 대체로 메시지는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가벼우며, 노골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다. <개미> <슈렉> <샤크> 등 드림웍스의 패러디물들은 기존의 동화와 미국 사회를 비틀며 인간을 조롱한다. 이에 반해 아니메는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다른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코드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붉은 돼지>의 돼지는 단순히 인간에 비유된 동물이 아니라,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반발로 인간이기를 거부했다는 은유성을 띠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헷지>를 일본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비교해보자. 둘 다 평화로운 숲을 어지럽히는 인간들을 습격하는 동물들의 활약을 그렸지만, 전자는 현대인의 과잉소비를 풍자하면서도 <미션 임파서블>을 연상시키는 상업성을 눈에 띄게 내세우는 반면, 후자는 성장지상주의에 처한 인간의 현실을 인간과 흡사한 너구리 캐릭터들에 빗대면서 일본의 역사와 신화를 건드리는 소박함을 지녔다. 또 늘 비교의 대상이 되는 <정글의 황제>와 <라이온 킹>도 빼놓을 수 없다. <라이온 킹>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지만, 이야기 전개, 그림체, 스케일까지 포함해 <정글의 황제>의 서양판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미일 애니메이션 특징 비교
미국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 대기업 주도형으로 최다 인원, 최대 시간 투자. 공동작업이 많아서 작가보다 제작사 중심. 작품 내용보다 캐릭터 저작권이 더 중요한 상품적 가치 가져 캐릭터 위주의 제작 캐릭터/ 동물이나 차 등 사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어린이용이면서도 성인층까지 흡수하려는 전략 장르/ 아동, SF 판타지, 히어로물, 인간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 등 코미디가 대세 스케일/ 단편 위주 주제 의식/ 우정·모험·꿈·희망 등 교육용, 상업용 목적 위주로 가족주의와 영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 작가 즉, 작품적 가치를 내건 지브리판, 하드 유저용 작가주의 작품, TV 애니메이션과 연계된 저가용 극장판 등으로 구분 캐릭터/ 3살부터 80살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만족시키는 다양 다종한 캐릭터 존재 장르/ 어린이 타깃으로 한 영웅 서사에서부터 친근감 있고 일상적인 이야기, 오타쿠용, 성인물 등 다양한 스펙트럼 스케일/ 단편, 중편, 장편 등 다양 주제 의식/ 선정성과 폭력성이 강한 미소녀물 등이 있는 반면, 철학과 문학, 휴머니즘, 현대 사회 비판 등 인간의 보편적 주제를 다루며, 만화를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가주의적 경향으로 양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