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자신이 미워질 때는 혹시 없었는지?1996년 10월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의 ‘사전심의’에 위헌결정을 내리고, 영화관련법이 바뀌어 그 공륜도, 심의도 이름이 바뀌었으나 그 행정기구의 등급심위위원들에게는 등급심의를 보류할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등급없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도록 틀을 짜놓고 심의를 보류하지 않는다니, 그건 한꺼풀 벗겨보지 않아도 또다른 검열이었다. 이 법은 조만간 헌법재판소로 되돌려질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두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둘 하나 섹스>의 제작자가 영화진흥법 관련조항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고 법정으로 들고 왔다.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재로 넘긴 것이 바로 1년전. 헌법재판소는 또다시 영등위의 등급보류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예상했던 대로, 귀신이 온다고, 검열이 사라졌으니 음란 폭력물이 범람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리라는 경보음이 들려온다.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단 위안을 드리고 싶다. 검열이 도덕의 붕괴를 막지는 못한다고. 언론의 자유가 붕괴시킬 도덕도 없다고.(영화도 언론임을 인정한 것이 1996년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처음은 아니잖은가.) 또하나,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 장치는 따로 궁리할 일이다. 영화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도, 그런 일이니까. 검열이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 영화들을 처리할 극장도 마련 못했는데, 이런 결정은 시기상조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문제는 96년에도, 2000년에도 그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지금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제한상영관이든, 등급외전용관이든 등급외 영화를 상영할 극장의 출현은 더이상 외면 못할 당위로 다가온 셈이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심의기구에서 자의적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매우 구체적인 심의기준들이 만들어져야한다. 그리고 모든 영화에 심의를 강제하는 현행 영진법을 뿌리부터 다시 재고해야한다.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영화, 상업적 목적에서 만드는 것이 아닌 실험 단편영화까지 손을 대야한다는 획일적 발상을 청산하라는 영화계 소리도 경청할 일이다. 심의를 민간자율에 맡겨야한다는 요구 역시 마찬가지. 당장 시작해야할 영화진흥법 개정 작업이 ‘예상했던 대로’ 헌법 앞에 돌아가고야 말 도돌이표로 끝나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