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많다. 독특한 커피 향에 취하고, 안락한 의자에 몸을 던질 수 있는 곳은 많다. 이색 카페 또한 많다. 마술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요즘은 색 테라피 카페까지 등장하는 시대 아닌가. 셀 수 없이 많은 공간 중에서 <씨네21>은 어렵사리 네곳의 이색 카페를 택했다. 오감 만족, 이색(異色) 카페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책장을 펼치지 않아도 좋다. 잉여를 처분하기 위한 공간들을 찾는다면 인터넷에 훨씬 자세한 소개가 널려 있다. 여기 소개하는 네곳은 좀 다르다. 굳이 따진다면 결핍을 채우는 이색(利色) 카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과 함께 녹색 세상을 펼치겠다는 ‘캘커타’의 의지와 진정한 다문화 교류의 장을 열겠다는 ‘오렌지트리’의 소망과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푸근한 사랑방으로 남겠다는 ‘암실’의 다짐과 북카페 천국을 만들고 싶다는 ‘타셴’의 기대를 잠깐 들여다보자. 부족한 소개글로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이들 이색 카페의 초심을 곰곰이 따져보면, 문화적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곱씹힐 것이다.
자유, 사랑, 평등 단 세평 안에 다 있죠
장애우와 함께 나누는 삶, 헌책 카페 캘커타
북적이는 홍대입구 역을 빠져나와 300m 정도 연남동 주택가쪽으로 걷다보면 헌책 카페 ‘캘커타’가 나온다. 가정집이라 여기고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멀리서 어렵게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전 이곳 동네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주길 바라지만.” 출퇴근에 바쁜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끌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주인장인 윤화용씨가 얼마 전 손수 심은 키 큰 해바라기가 노란 머리를 흔들고 있다. 캘커타는 넉넉한 공간을 갖춘 카페가 아니다. 미닫이문을 열면 세평이 채 안 되는 공간. 600여권의 헌책들과 LP판들이 빼곡하다. “가게 차릴 때 1층만을 골랐어요. 장애인들도 들를 수 있어야 하니까. 근데 너무 비싸서 결국 외지고 좁은 이곳을 선택했죠.” 조선영, 이동환, 임미진, 유해원씨 등 윤씨와 함께 캘커타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장애인이다. 젊은 시절 여행에 빠져 살았던 윤씨는 배낭여행 중에 인도 캘커타의 마더하우스에 들러 장애인들을 도운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가족과 함께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윤씨를 흔들었고, 결국 2004년 겨울 캘커타를 차리는 계기가 됐다. “여행을 하면서는 누구나 친구가 돼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 같은 것도 생길 수가 없죠. 함께 일하고, 함께 여행하고, 그러려고 캘커타를 만들었어요.” 캘커타에서 얻은 수익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여행 경비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에베레스트, 타르 사막, 실크로드 등 오지를 다녀왔다. “일상에선 누군가를 위한 행위가 대단한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지만 여행을 하면서는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는 게 윤씨의 말. “올해는 해외는 못 갈 것 같고, 국내 여행을 계획 중이에요.” 매일 자전거 타고 안양 집까지 오가는 윤씨가 귀가를 서두르는 동안 이곳에서 일한 지 10개월 됐다는 이동환씨가 한마디 던진다. “속상할 때가 있어요. 아무래도 장애인들이 차를 내오다 보니 좀 늦잖아요. 조금 있다 오겠다고 해놓고서 안 오실 때는 좀 서운하죠.” 현미밥 등 녹색 밥상과 에티오피아 볶은 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먼저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셈. 그게 없다면 캘커타(02-322-2738, cafe.daum.net/calcuttacoconut)의 시간을 만끽하기 어렵다.
음악 즐기다보니 국경을 넘어버렸네
다국적 문화교류의 장, 오렌지트리
탐스러운 오렌지빛 계단. 입구부터 쿵짝거린다. 2층 카페에 들어서니 후텁지근. 에어컨은 무용지물이다. 다국적 밴드가 선사하는 흥겨운 컨트리 음악에 맞춰 50명 남짓한 다국적 외국인들이 체온 상승 운동 중이다. 끓어오르는 들숨과 날숨 때문에 들어온 지 몇분 안 된 것 같은데 등에 땀이 맺힌다. “조금만 있으면 단골 무리가 몰려올 거예요. 아마 개업 이래 가장 많은 손님이 올 것 같은데.” 해방촌의 명소 오렌지트리를 운영하는 강신우씨. 주문받은 음식을 아래 식당에서 공수하느라 정신없으면서도 “6개팀이 참여한 뮤직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오늘은 평소에는 홍대와 이태원을 주로 찾던 외국인들까지 합세한 것 같다”고 일러준다. 국적 불문, 인종 불문하고 모두들 거리낌없이 한데 어울린다. 아일랜드 태생으로 한국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는 레이첼은 “이태원에 가면 힙합 아니면 테크노뿐인데 이곳에선 다양한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연주 한곡이 끝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이 서둘러 연주자들에게 맥주 한잔씩 선사한다. 신성한 처녀보살이 거(居)했다는 해방촌의 이 낡은 건물에 오렌지트리가 들어선 건 2005년 5월. 건물을 매입한 지인을 따라 이곳에 들른 강씨는 1500명 넘는 외국인이 사는 해방촌에 변변한 음식점이나 카페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0년 넘게 다닌 자동차 회사에서 유럽, 아프리카 등 해외 세일즈를 하며 짬짬이 챙겨둔 견문이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처음엔 그냥 커피숍이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그걸 보면서 살롱이나 문화공간처럼 꾸며보자고 마음먹었죠. 먹고 마시기만 하는 공간은 이태원에도 많으니까.” 지금은 게스트 하우스인 3, 4층을 개조해 공부방과 도서관을 만들고 진짜 국제 교류를 해보고 싶다는 강씨는 언젠가 “꽃집도 있고, 책방도 있고, 벼룩시장도 있고, 그림가게도 있는” 오렌지 스트리트를 만들고 싶다. 아이리시 나이트 행사(7월22일)나 해외 아티스트 10인의 전시회(8월5일) 등은 진짜 ‘인터내셔널 빌리지’를 만들기 위한 사전 프로젝트이고, 오렌지트리(02-749-8202)는 든든한 전초기지인 셈이다.
아마추어 사진가들 다 모여!
스튜디오, 현상-인화시설이 한 공간에, 포토까페 암실
“얼굴 표정이 왜 이러냐?” 평소 프로필 촬영을 해보고 싶었다는 이정희씨. 열아홉 동갑내기 친구들을 대동하고 카메라 앞에 섰는데 자신의 모습이 영 성에 차지 않는가보다. 보급형 디지털카메라의 LCD 창을 들여다보더니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자책, 또 자책이다. “거 봐. 부끄러워하지 말라니까….”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 게 어때?” 얼굴 찌뿌린 이정희씨를 달래기 위해 친구들이 나서지만 별 소용없다. 바로 그때. 카페 ‘암실’에서 일하는 직원이 다가서더니 조명 위치를 옮겨주고, 뒷배경을 샛노란색으로 바꿔준다. 그리고 한마디. “편하게 찍으세요.” 대학로에 자리한 카페 암실은 1시간에 5천원을 내면 스튜디오 촬영 기회를 주는 포토카페다(1만원을 내면 카메라도 빌릴 수 있다). 대형 조명기 작동법을 모른다고? 그건 운영자인 김도한씨를 비롯해 암실맨들이 즉석에서 세팅해주니 걱정은 붙들어매라. 암실은 아마추어 사진동호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저렴한 가격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직접 현상, 인화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다. 흑백 전문 현상소가 많이 없어지다 보니 이곳 암실을 이용하는 회원들이 늘어간다고. 수많은 단골들이 7개의 암실에서 직접 뽑아올린 결과물들이 카페 곳곳에 나붙어 있다. “만나서 놀고 이야기하는 공간은 맞는데. 요즘 기준으로 치면 카페라고 보기 어렵죠. 제가 명색이 인테리어 디자인 전공자인데 이 꼴 좀 보세요. (웃음)” 테이블 위엔 설탕 그릇 대신 슬라이드 필름을 확인할 수 있는 라이트 박스가 올려져 있고, 의자들은 스튜디오 촬영에 나선 이들의 소지품으로 어지러운 걸 보면 여느 카페 같진 않다. “암실이 포토카페의 원조는 아니에요. 전에도 있었는데 다들 금방 없어져서 그렇지.” 4년째 암실을 꾸려온 김씨는 “사진에 미쳐” 디자인 일을 그만두고 암실을 차렸다고. 원래 포토카페 운영은 노후 대책이었지만, “텃세 심한” 사진업계에서 일감을 얻을 수가 없어 “일찌감치” 시작했다. “첫해엔 임대료도 어쩌지 못해서 신문배달도 하고 혈액원에서 피 배달도 했어요.” 처음에는 “나 좋으려고” 시작한 건데 이제는 “사랑방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회원들의 아우성 때문”에 올인할 수밖에 없단다. 거센 빗발이 멈춘 늦은 오후 ‘암실’(www.amsil.co.kr, 02-762-3352)을 나서자 마침 문제의 폐인들이 우르르 나온다.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드려요~
건축부터 영화까지 전문 서적 집합소, 북까페 타셴
서점에 가면 무엇이든 일주일 만에 끝내는 속성법을 일러주겠다고 장담하는 책은 많다. 반면, 한삽 더 파고들겠다고 약속하는 전문 서적은 턱없이 부족하다. 건축, 미술, 영화, 사진, 인테리어 등 예술 관련 전문 서적을 출판해온 독일의 유명 출판사 타셴과 손잡은 북카페가 서울에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잘될까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카페를 찾아 한손으로 들기엔 버거운 두툼한 책을 넘기며 미소를 짓고 있을까. 대학로의 북카페 ‘타셴’의 문을 열면서 맨 처음 십여개의 테이블을 힐끔거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두눈으로 확인한 풍경은 그러나, 우려와 달랐다. 테이블 위 커피 한잔에 앨프리드 히치콕이, 샌드위치 한 접시에 에드워드 호퍼가 딸려 있었다.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하늬씨와 차형주씨. <Movies of the 90’s>를 한장씩 넘기며 감독과 배우와 작품에 대한 평을 늘어놓으며 오후를 보내고 있다. “처음이에요. 지나가다 우연히 봤는데 일반 서점에선 볼 수 없는 책들이잖아요. 있다고 하더라도 구입하기에는 너무 값이 비싸고.” 최씨는 마릴린 먼로의 초창기 모습부터 세상을 뜨기 전 사진들을 담은 희귀본 도록을 일러주며 일독을 권하기까지 한다. 북카페 타셴을 차린 지 2년째. 형제인 정보문화사 이상만 대표와 함께 북카페 모험을 시작한 이상만?? 씨는 “이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면서 흐뭇해한다. 주로 컴퓨터 관련 수입원서를 번역해 출판해왔던 이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들렀다 타셴의 존재를 알았고, 국내에는 거의 전무한 전문 북카페를 마련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분명 있을 텐데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잖아요. 수익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죠.” 초창기 땐 일부 마니아 위주로 카페를 찾았는데 이제는 근처 대학의 예술 관련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 테이블을 주로 차지한다고. “단골이 왔는데 자리가 없을 때는 정말 미안하다”는 이씨는 2호점을 내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전문 서적들을 볼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하겠단다. 따지고 보면 ‘타셴’(02-3673-4115)의 성공은 기초체력 부실한 국내 출판시장에 영양을 보급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