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1월14일 캔자스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일가족 4명이 잔인하게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미국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이 중에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이자 뉴욕 사교계의 명사인 트루먼 카포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도 있었다. <뉴요커>의 기고자로도 활약했던 그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넬 하퍼 리(캐서린 키너,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와 함께 캔자스로 내려가 주변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얼마 뒤 두명의 범인이 잡히고,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그들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특히 지적으로 예민하고 예술적인 감성이 두드러진 범인 페리 스미스(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에게 큰 관심을 갖고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훗날 ‘뉴 저널리즘의 선구작’으로 꼽히게 되는 논픽션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뉴욕 최상류층의 파티를 누비고 다니며 마릴린 먼로, 험프리 보가트 등과 교우를 맺었던 그가 이 처참한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스스로 ‘논픽션 소설’이라고 부른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문학적 야심과 함께 말랑말랑한 글뿐 아니라 현실에 관한 이야기 또한 잘 써낼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려는 허영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범인이 잡히면서 그는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카포티는 페리 스미스를 이용해 자신의 명성을 얻으려 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스미스에게 매력을 느끼면서 갈등하게 된다. 그는 스미스의 삶을 안타까워 하지만, 책의 마무리를 위해 스미스의 사형 집행을 절실하게 바라기도 한다. 그가 처한 이 딜레마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은 채, 모순된 한 인물의 내면을 건조하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에 관한 ‘논픽션 소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트루먼 카포티의 삶과 <인 콜드 블러드>
1924년 태어난 트루먼 카포티는 165cm도 되지 않는 키에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졌고 동성애자였던 탓에 주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 대신 그의 문학적 재능은 콤플렉스를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1945년 <마드무아젤>에 발표한 단편 <미리암>으로 오 헨리상을 수상한 그는 <머리없는 새> <마지막 문을 닫아라> 등으로 승승장구했으며, 58년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해줬다. <인 콜드 블러드>를 500만부 이상 판매한 카포티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려는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손대는 글마다 완성하지 못했고, 술과 마약에 찌든 삶에 빠졌다. <인 콜드 블러드> 이후, 1984년 병으로 눈을 감기 전까지 그는 단 하나의 작품도 내놓지 못했다.
1966년 출간된 <인 콜드 블러드>는 피살당한 클러터 가족과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와 두명의 범인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에 대한 꼼꼼한 설명을 담고 있는 ‘논픽션 소설’이다. 마치 그들 모두의 모든 시간에 함께했고, 심지어 내면까지 속속들이 읽고 있다는 듯한, 극단적 전지적 시점의 이 책은 우선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가 압도적이다. 자신과 하퍼 리가 취재한 6천여 페이지 분량의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답게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범행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빽빽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카포티>에도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카포티는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기록은 하지 않았다. “대화의 94%를 기억할 수 있는” 그만의 재능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이 곳곳에 들어가 있을 탓에, 이 책은 저널리즘 차원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적’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