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자와 ‘사랑’을 통해 교감한다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는 국경도 인종도 사라진다는 이 단어는, 사실 무수한 오해로 겹겹이 쌓여 있다. 주체가 타자를 온 힘을 다해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타자는 너의 사랑은 나에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일한 테두리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기도 한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콘스탄트 가드너>는 바로 그렇게 다른 곳을 바라보던 연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녀가 바라보던 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먼 길을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케냐 주재 영국 대사관인 저스틴(레이프 파인즈)이 젊고 아름다운 아내 테사(레이첼 바이스)를 공항에서 배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부는 더없이 애정어린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이틀 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그러나 저스틴에게 돌아온 것은 아름다운 아내의 따뜻한 육신이 아니라 잔인하게 찢겨 차갑게 식은 그녀의 주검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도발적인 성격의 인권운동가인 테사가 공격적인 질문으로 저스틴을 난처하게 했던 첫 만남의 기억, 둘이 함께 보낸 밤 그리고 갑작스럽게 자신을 케냐에 데려가 달라고 했던 그녀의 요청. 명문가 출신의 외교관인 저스틴에게 테사와의 만남은 신선하고 행복한 삶의 시작이었지만, 그 둘 사이에는 미묘한 불협화음이 존재하고 있었다. 온화한 성품의 저스틴은 도전적인 성격의 테사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함으로써 그녀가 지향하는 저항적인 삶을 보호하고 싶어한다. 아프리카 대륙을 사랑했던 테사에게 그가 둘러 준 울타리는 너무 협소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그 울타리 밖으로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기에 자신의 삶의 방식이 상대의 삶을 위축시키거나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케냐에 오기 위해서 저스틴의 아내가 된 테사는 단순히 남편을 수행하는 외교관 부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앰네스티의 일원으로서 에이즈가 만연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호활동과 제공되는 약품 뒤에 숨겨진 모종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녀는 저스틴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 그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저스틴은 그녀가 무언가 위험한 일에 연루되어 있다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그 모호함 때문에 그는 그녀의 동료 아놀드와의 관계를 오해하기도 하지만, 섣불리 그녀를 추궁하려 들지 않고 그저 기다린다. 테사는 저스틴의 동료인 샌디(대니 휴스턴)를 통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인간모르모트로 사용해 약물실험을 하고 있는 제약회사의 부정을 정부에 알리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만다. 테사가 죽은 이유를 파헤치면서 자신이 갇혀 있던 알을 깨고 나오게 된 저스틴은 순식간에 전도양양한 외교관에서 쫓기는 범법자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는 테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녀가 추구했던 더 큰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다.
테사의 죽음 이전에 저스틴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인도주의자이지만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에 테사는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저스틴이 아름다운 화초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필요한 토양과 비료를 제공하고 살충제를 뿌려주는 충직한 정원사라면, 테사는 광활한 대지에서 나무와 꽃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인위적인 개발을 저지하는 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테사는 저스틴에게 “당신은 굶주린 혁명의 민중에게 머핀을 제공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저스틴이 민중이 필요한 것은 순간의 허기를 달래줄 머핀이 아니라 매일매일 굶주리지 않을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양식을 빼앗아간 거대 자본이 자신의 가족, 자신의 아름다운 정원을 파괴하고 난 이후이다. 테사가 사라짐으로써 돌아갈 ‘집’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저스틴은 온순한 정원사의 삶을 포기한다. 그는 자신의 정원을 파헤친 검은 자본의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메이렐레스 감독은 전작 <시티 오브 갓>에서 70년대 브라질 빈민촌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미성년 갱단의 문제를 현란한 영상에 담아냄으로써 한 국가의 소외된 계층의 삶을 고발했다. 그는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계층간의 불균형과 권력의 부패에 관해 품었던 문제의식을 이 영화에서 좀더 확장한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세계적인 구도 속에서 절대 약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아프리카 대륙의 실상에 초점을 맞춘다. 케냐 정부의 부패를 드러내어 케냐에서 금서가 된 존 르 카레의 원작 <콘스탄트 가드너>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선진국 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아프리카의 힘없는 환자들의 생명이 실험실 동물처럼 소비되는 현상을 그려내고 있다. 자본을 소유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간에 생명을 담보로 한 비인간적인 거래가 제약회사와 국가간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시티 오브 갓>은 리드미컬한 편집과 과도하게 미학적으로 포장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에 그것이 제기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의식의 진정성에 강한 회의가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감독은 다큐멘터리 같은 화면 속에 케냐를 담아내면서도 시간을 역행해 진실을 파헤치는 구성을 통해 침착하지만 역동적으로 주제에 접근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