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에 열병을 앓고 여덟살에 지능이 멈추어버린 엄기봉씨는 올해로 마흔세살이 되었다.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그가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된 것은, 여든을 넘긴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살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해 번 돈을 들고,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들고 마을을 한걸음에 내달리는 기봉씨의 이야기는 <인간극장>으로 화제를 낳은 데 이어 책(<맨발의 기봉이>)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남해 근처 다랭이 마을에 사는 기봉(신현준)은 팔순의 노모(김수미)를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다. 정신연령이 여덟살에 멈춘 그는 이제 마흔살로, 엄마에게 줄 음식을 들고 맨발로 마을을 뛰어다니곤 한다. 엄마가 이가 약해져 음식을 잘 못 씹는다는 얘기를 들은 기봉은 틀니를 해드리기로 마음먹는다. 마을 이장 재선을 노리는 백 이장(임하룡)은 마을의 스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기봉이를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내보내기로 한다. 기봉의 코치를 자청한 그는 기봉에게 대회 우승을 하면 상금으로 엄마 틀니를 해드릴 수 있다고 설득하는데, 머지않아 기봉의 심장이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로 이미 흥행력을 입증한 김수미, 신현준, 탁재훈이 다시 뭉치면서, 탁재훈의 극중 배역이 영화 속에 새로 등장했는데 백 이장의 말썽 많은 아들이자 기봉이를 타박하는 여창이 바로 그다. 탁재훈은 영화 밖의 이미지까지 끌고들어와 돌발적인 웃음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장애를 가진, 생활이 어려운 인물을 그리면서 <맨발의 기봉이>는 과장된 희화화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기봉이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은 실제 에피소드에 기인한 것 이상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기봉이를 보는 시선도 선량하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화처럼 비현실적인 느낌도 벗었다. 백 이장은 기봉에게 허드렛일을 시켜온 마을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데, 그 자신도 이장 재선을 위해 기봉에게 무리할 수 있는 훈련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기봉의 심장이 안 좋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의 속도가 느려지고, 감동을 위한 관습적 장치가 반복 등장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맨발의 기봉이>는 웃음과 눈물을 섞으면서 지나치게 억지스럽지 않은 결말을 맞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과욕을 부리지 않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