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으니 배우로서는 한 봉우리 넘었다고 생각한 걸까? 러셀 크로가 배우보다 훨씬 더 험준할지 모르는 새로운 봉우리, 감독에 도전한다. 크로가 감독, 각본, 제작, 출연을 한꺼번에 맡을 화제의 작품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긴 녹색 해안>(The Long Green Shore). 퇴각하는 일본군을 치기 위해 뉴기니 해변에 발을 들인 호주군 1개 대대가 미군과 일본군의 시체 여러 구와 직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존 헵워스라는 작가가 쓴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으로, 고인이 된 작가 대신 처음에는 밥 엘리스라는 시나리오 작가가 각색을 했고, 이를 크로가 다시 손질한다고 한다. 낯선 극한 상황에서 군인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적인 깨달음, 즉 삶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에 대한 명상이 원작소설에는 담겨 있다고. 이 작품에서 크로가 맡을 역은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 사령관이 될 수도 있고 영화의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인물을 포함해 선택할 수 있는 배역은 많다. 크로는 <아름다운 마음>의 촬영을 마무리 지은 뒤 내년 봄께 남태평양의 어느 긴 녹색의 해안에서 첫 메가폰을 들 예정이다.
한편, 크로가 감독 데뷔를 한다는 소식에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영화사 프로듀서들이다. ‘왜 그가 이토록 훌륭한 우리 작품을 거절했는지’ 이제서야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 녹색 해안>의 제작사는 <슬라이딩 도어즈>와 크로가 주연한 을 제작했던 인터미디어. 크로와는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온 영화사다. 크로가 <긴 녹색 해안>의 원작소설에 관심을 보이고, 또 카메라 ‘뒤’에 서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인터미디어사는 곧바로 이 책의 저작권을 사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긴 녹색 해안>으로, 이제 크로는 <파인딩 피시>의 덴젤 워싱턴, <위험한 마음의 고백>의 조지 클루니와 함께 카메라 앞과 뒤을 모두 누비는 인기배우대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