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청스럽다. 소심하다. 허점투성이다. 한데, 사랑스럽다. 그리 잘생긴 것도 아니다. 누구처럼 ‘몸짱’도 아니다. 한데, 자꾸 정이 간다. 아주 로맨틱하지도 않다. 당연히 멋진 멘트만 쏟아낼 리 없다. 한데, 자꾸 생각이 난다. 아름다운 장동건과 브래드 피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을 지닌 배우. 그들이 바로 김주혁과 휴 그랜트다. 현실에 발을 딛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손을 뻗으면 어딘가 닿을 듯한 이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심함과 허점은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것이니까.
김주혁
2005년은 그에게 매우 뜻깊은 해였다. 아버지 김무생씨와의 이별이라는 악재도 있었지만, 호재가 더 많았다.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사실 그동안 그는 연기력에 비해 대중적 인기가 따라주지 않는 배우 중 하나였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는 그간 끼만 보여왔던 ‘소심남’의 정수를 제대로 선보이며 ‘김주혁’이라는 이름을 대중의 머리에 아로새겼다.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이야기이자, 배우 장진영의 영화 <청연>에서도 그는 빛났다. 연봉 5만원으로 연극판에 데뷔한 지 8년 만에, 영화 <세이 예스>로 스크린에 데뷔한 지 꼭 5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다소 느끼한, 하지만 소심해서 버터 향기를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는 남자. 다소 터프한, 하지만 어리숙해 종종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남자. 그 남자 김주혁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떴다.’
2005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일 중독자 김주혁은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 못했다.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문근영과 공연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그는 “신중히 검토하고 있을 뿐,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확실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혹시 (이제야은 선택권을 갖게 된 스타 배우) 김주혁은 이제야 비로소 ‘김주혁이 아니면 안 되는 영화’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참 다행이다.
휴 그랜트
‘로맨틱 코미디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를 꼽는 설문조사를 한다고 치자. 대답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휴 그랜트. 우리는 그를 놀라운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고 칭송하진 않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환히 밝히는 그의 경박함은 사랑한다. 어정쩡한 태도와 툭하면 눈 깜빡거리며 말하는(사실 그나마도 더듬는) 찰리(<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를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중은 그가 섹스는 좋지만 아이는 싫어하는 샘 포크너(<나인 먼스>)에서 우유부단한 에드워드 페라스(<센스, 센서빌리티>)를 거쳐 바람둥이 영국 신사 다니엘 클리버(<브리짓 존스의 일기1, 2>)가 되자, 그것이 바로 휴 그랜트라고 오해하기에 이르렀다. 배우로서는 그 분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지만, 정작 휴 그랜트로서는 다소 거북한 칭찬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인물에 최대한 투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일축했다.
2006년 자살 폭탄 테러범들을 소재로 한 <아메리칸 드림즈>로 돌아올 예정이다. 여기서 그는 영국 방송가의 명사로 출연한다. 기존의 어눌한 매력을 버리지 않은 그가 블랙코미디에서는 또 어떤 다른 빛을 낼까. 기대되고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