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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대특강 - 한방에 끝내는 영화 논술 [2]
이종도 일러스트레이션 헌즈 2006-02-02

논술백서3. 잘난 척 떠들지 말고 뭐든지 왜냐고 다시 한번 따져보라.

자, 출석 부르기 전에 선생님한테 감사의 봉투들 안 주니? 썰렁하구나. 요즘 너희들 <왕의 남자>의 준기 오빠한테 꽂혀서 공부도 게을리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 자, 수업 들어가자. 연산군은 왜 늘 미친 사람처럼 나오는 걸까?

왜 연산군은 광기의 임금으로 알려지게 된 것인지에 대해 논하라

<왕의 남자> 보면 신하들이 다 그러지.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왜 신하들이 다 연산군만 보면 이가 갈려서 그러니?

학생1 |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비판적인 여론을 만든 거 아닐까요?

이걸 생각해보자. 조선시대 중·후기에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 같은 불운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단 말이야. 그런데 이런 역사적 평가는 누가 내리는 거지? 그렇지. 다음에 왕권을 잡은 세력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평가하는 거지. 물론 독단적으로 역사를 적을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공정하게 잘 봐주십쇼’ 하는 거랑 마찬가지 아니겠니?

야만의 기록이 아닌 역사가 어디 있겠니? 역사는 늘 승자의 역사라는 점을 유념하고 역사를 대해야 돼. 우리가 늘 역사책에서 장군들이 폼나게 칼 휘두르는 것만 봤지만 <황산벌>을 보면 거기서 신음하는 건 이름도 없고 힘도 없이 전쟁터에 끌려나온 농사꾼들이야. 미치광이로 몰린 연산군이나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들이 처음엔 자질이 모자라기는커녕 촉망받는 군주였다구. 왕이 자신의 힘을 강화해 중앙집권을 하겠다는 왕권정치와 당쟁구도에서 승리해 정국운영을 주도하겠다는 신권정치가 긴장 상태를 이루는 가운데 그들은 희생당하고 역사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물론 이건 그냥 그럴 거라는 추정이 아니라 꼼꼼한 역사 읽기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몇몇 학자들의 주장이야. 여기에 덧붙일 만한 게 야사나 정담, 그리고 각종 개인적 기록들이지. 그리고 음모론도 빼놓을 수 없어. 음모론은 그냥 하나의 가십이 아니라, 통제된 여론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어. 가령 영조의 경종 독살설, 정조 독살설 등이 그것이지. 연산군은 이런 음모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중기부터 강력해진 신권정치와 이후의 세도정치에 점차 세력을 내주게 된 왕권의 부실 징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

학생2 | 그렇다면 광대들의 정치풍자극은 연산군이 물타기를 통해 신권을 압박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너 이녀석 똑똑하구나. 너는 ‘봉투’를 면제해주마. 영화적으로 본다면 그렇지. 연산군은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반대세력에 압박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이를테면 광대들은 참여예술을 한 셈이지. 군사정권 시절 마당극을 탄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까? 부당한 권력을 풍자하는 게 예술의 최대 목적은 아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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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 날로 보수화해가는 미 군부와 군산복합체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연구.

<영원한 제국> 왕권과 신권의 다툼이 빚어낸 비극에 대한 추론.

논술백서4. 세상이 너무 복잡하면 가족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라.

젖을 때까지 써. 논술 딴 거 없어. 읽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젖을까, 그걸 열나게 궁리해야 하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

성의 개방화가 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논하라

너희들 그런 생각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면 돼. 성적 자기결정권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양되고 있는 과도기라고 말이야. 너희들 하라는 공부 안 하고 술 마시고 집창촌 근처에서 기웃거린 적 있지?

학생1 | 왜 선생님의 취미를 저희한테 덮어씌우세요?

왜 공창제가 생겼을까. 그건 은밀한 축첩제도라고 할 수 있어. 물론 전근대적이고 마초적이지. 그런데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과 그를 뒷받침해줄 호적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정말 자기가 직업으로 택하고 싶은 사람만 집창촌에 취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창촌에 드나드는 사람을 검거하는 현행 제도는 이를테면 여성의 경제적 조건과 법적 제도는 알 바 아니고 들키지 않게 잘하라는 ‘눈 가리고 아웅’ 정도밖엔 안 되는 거야.

왜 <연애의 목적>의 홍이(강혜정)는 그렇게 수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까? 왜 유림(박해일)이는 ‘5초만 넣고 있겠다’는 준강간적 태도로 연애에 임할까? 그들은 서로 자신의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성인이지만, 아직 성에 대해 이중잣대를 대고 있는 한국사회의 감시망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아직 어린애라고 할 수 있어.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남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잖아. 성적인 권리, 몸의 권리를 사회적 도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와 그 권리를 개인에게 이양해야 한다는 자유주의가 여기서 맞붙은 거야. 너희들이랑 상관없을 거 같지? 너희들이 머리 하나 마음대로 못 기르고 학교의 잣대대로 잘라야 하는 거랑 이건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런 점에서 <싱글즈>에서 아빠도 없이 자기 애를 자기가 키우겠다는 동미(엄정화)는 홍이의 믿음직스러운 선배라고 할 수 있고, <바람난 가족>에서 고등학생 애인의 애를 낳아기르며 무용가로서의 꿈도 키우려는 호정(문소리)은 그런 동미들의 왕언니라고 할 수 있지. 호정은 인권변호사이자 동시에 한국사회의 성의 이중잣대를 실천하는 남편 영작(황정민)을 쫓아내잖니. 그게 경제적 자립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 근데 봐라. 이제 호주제 폐지되지, 여성들의 경제력이 남성을 앞지를 기세지, 그리고 동미나 호정처럼 대안가족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니. 이제 경제구조가 개편이 되는 거야. 전통적인 남성 가부장 호주들이 나라를 이끄는 게 아니라 저마다 제각각의 사람들이 각자 형편대로 가정을 꾸리면서 살게 될 거란 얘기지. 그런 사람들이 등록금 내주는 학부모가 되면, 글쎄다, 너희들의 머리 길이도 이제 너희들이 결정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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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 남편에게 절절매는 델마가 친구 루이스와 함께 처음으로 자기 자신만의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논술백서5. 신문과 텔레비전이 먹여주는 대로 먹지 말고 스스로 떠먹어라.

너희들 바쁘구나. 인사 좀 하지. 어, 그래. 오늘은 거짓말의 효용과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와 강 사장(김영철)이 서로에게 한 거짓말과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연관시켜 거짓말의 기회비용을 논하라.

<달콤한 인생>에서 왜 보스랑 2인자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거짓말을 했을까? 아는 사람?

학생1 | 보스로서는 자기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선우는 자기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피해를 입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래, 그런 점에서 선우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 이실직고를 해서 잃을 것과 거짓말을 해서 잃을 것의 크기를 비교했어야 옳았는데. 낭만적인 상상과 자기 목숨을 맞바꾸고 말았어. 강 사장도 이런 무리한 검증절차를 밟음으로써 굳이 치르지 않아도 될 기회비용을 낭비했어. 조직도 날려버리고 자기 목숨까지 잃었잖아. 황우석 박사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만을 이용해 연구했을 때와 논문조작이 들통났을 때의 경우를 여러모로 따져서 생각해야 옳았지. 강 사장네 조직은 소규모라 기회비용이 조직 내부에서만 소모되었지만, 황 박사의 경우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까지 끌어쓰면서 국가와 국민의 기회비용까지 낭비했다는 데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부작용, 즉 불필요한 외부효과까지 발생했지. 대외적으로는 한국 과학자들의 신인도 추락 같은 걸 생각할 수 있겠지. 대내적으로는 국가와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추락이지.

학생 2 |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덮어줬어야 하지 않나요?

글쎄. 언제 성취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국익을 위해서 불필요한 많은 세금과 국제적 신인도와 도덕성을 희생한다는 건 비합리적이지. 그나마 브릭 같은 젊은 과학자들, MBC 같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오해를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뀐 건 큰 수확이지. 만약 이런 내부고발자가 없었다면 더 큰 국익의 손실이 있었을 거야. 황 박사는 정보의 비대칭성(불균형)을 이용해 계속 거짓말을 하고 국익에 호소했잖아. 연구비를 대주는 국가도 그 세금을 낸 시민도 그걸 몰랐지만 대신 그 도덕적 해이를 내부고발자들이 잡아냈으니 무너지는 둑을 가까스로 막은 셈이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을 경우에 받을 타격, 애국적인 광기로 진실을 가리게 될 경우 입을 사회적 혼란은 상상할 수도 없지. 그런 큰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열렬하게 한국사회가 영웅을 고대하고 있다는 슬픈 얘기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진 슈퍼맨에 대해 아직도 큰 미련을 갖고 있다는 건 한국사회가 어딘가 깊은 외상을 입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국가의 이익=나의 이익이라는 집단주의적 사고와 효율성의 신화에 대한 맹신이 도리어 집단의 이익과 효율을 해친다는 게 아이러니지.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이 말하는 대로 믿지 마. 그건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 진실이길 바라는 희망에 불과한 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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