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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대특강 - 한방에 끝내는 영화 논술 [1]
이종도 일러스트레이션 헌즈 2006-02-02

지난해 많은 관심을 모았던 영화를 되짚어보며 함께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보았다. 글쓰기도 말하기도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지난해 즐겼던 영화를 복기하면서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같이 만들어봤으면 한다. 수험생들이라면 가볍게 머리 식히기에 좋을 것이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술자리 안주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다.

논술백서1. 글발이 안 풀리면 최근에 본 영화를 떠올려보라.

안녕! 어, 음. 대꾸가 없네요. 나 같은 스타가 꼭 먼저 인사해야겠어요? 그래요 그럼. 본론부터 들어갈게. 논술은 이태리 타올이야. 생각의 기름기를 박박 닦아내야 돼. 그럼 어떻게 돼? 속살만 남아.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을 먼저 뽑아내라구. 그게 제일 중요해. 그 다음 어떻게 속살을 디자인할 건지 다 생각한 다음에 쓰는 거야. 아무 생각없이 첫줄부터 쓰지 마. 자, 질문 하나 할게. 내가 복수한 거 어떻게들 생각해?

<친절한 금자씨>의 복수의 정당성과 절차적 정의에 대해 논하라

학생1 | 그런 사적인 구제가 법의 정의를 대신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잖아요?

=그래, 맞았어. 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하는 정의를 사적인 구제라고 하지. 사적인 구제는 어때? 금지되어 있지. 그럼 그건 전적으로 틀린 건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법의 지연.’ 아버지의 복수를 벼르면서 하는 말이지. 법은 늘 한발 늦게 되어 있어. 금자가 법의 절차를 다 밟으면 유괴범의 잘못이 심판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을까? 적지 마. 그거 다 생각의 기름기야. 네 생각의 속살이 되면 안 외워도 자연스레 외워져. 먼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먼저 정해야지. 불가피한 경우의 사적인 구제는 인정해야 할까 아니면 악법까지 다 준수해야 할까? 어떤 생각이든 괜찮아.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설득력 있게 말하면 되는 거야. 어중간하게 금자도 옳고,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옳다고 하면 그건 ‘난 아무 생각없는 사람이에요’라고 자백하는 거야.

그래, 불가피한 사적 구제는 어쩔 수 없다는 논지를 밀고 나가기로 했다고 치자. 그럼 왜 그렇지? <복수는 나의 것>에서 해직당한 뒤에 가족과 자살하는 팽기사 얘기가 나오지? 절차적 정의를 구하는 동안 일가족이 더 망가지면 어떨까. 아예 인간적인 존엄도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사회에 호소하다가 제풀에 꺾여 자신의 존엄도 얻지 못하고 죽지는 않을까?

-학생2: 그러나 이런 ‘불가피한 사례’를 용인하면 부작용이 커질 텐데요?

그렇지. <함무라비 법전> 시대처럼 너무 잔인한 사회가 되겠지? 또 생각지 않은 청부폭력, 그리고 거기에 드는 비용으로 지하경제가 비대해지겠지. 이런 뜻하지 않게 생기는 부수적인 외부효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볼까? 공적인 정의가 사적인 정의보다 더 부패했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대부>처럼 사람들이 경찰에 먼저 달려가기보다는 마피아에 먼저 달려가겠지? 그렇다면 그 정의가 공적인 것인지, 사적인 것인지보다는 과연 어떤 쪽이 더 일관성 있게 자신의 태도를 지키는가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가령 <친절한 금자씨>에서 마지막 초등학교에서의 심판처럼 말이야. 그게 박 감독님이 던진 질문이라고 생각해. 과연 이 땅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말이지.

더 볼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유색인종 소년이 살인범으로 몰리고 배심원들은 소년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대부> 부패한 경찰과 판사 대신 사람들은 마피아에 정의를 구한다.

<복수의 립스틱> 강간당한 장애소녀가 경찰에 가지 않고 직접 남자들을 처단한다.

논술백서2.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겠거든 주위를 돌아보라.

여러분 안녕. 많이들 왔네. 먼저 질문 하나부터 할게. 왕따 어떻게 생각해?

<너는 내 운명>에서 동네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린 은하(전도연) 부부에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 논하라

<필라델피아> 본 사람? 에이즈에 걸린 환자에 대한 편견을 잘 보여준 영화잖아. 앤드류(톰 행크스)가 동성애자이고, 에이즈 환자니까 회사가 마음대로 잘라도 된다고 생각했었지. 그건 어때, 부당한 거라고 생각해? 진정?

학생1 | 에이즈가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되면 어떻게 해요, 그럼? 격리해야 하잖아요?

네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할 정도로 정신병 조짐이 보이니까 나가라고 하면 어떻겠니? 미안해. 17세기 프랑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파리에서 구빈원을 만들면서 6천명이나 되는 부랑아와 범죄자, 동성애자, 광인을 함께 다 묶어서 수감했어요. 이게 정신병원의 시작이야.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구분하고 격리하면서 근대사회가 탄생했다고 할까. 동네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는 합리적이야.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뿐이지 매우 미개하지. 영화에서 에이즈가 동성애를 하면 걸리고, 손만 잡아도 걸린다는 ‘미신’에 동네사람들이 떨잖니? 소금도 뿌리고. 또 하나 질문. 만약 <웰컴 투 동막골>에서 여일(강혜정)이 죽지 않고 살았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학생2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랜들(잭 니콜슨)처럼 됐을 거 같은데요.

여일은 아마 왕따가 됐어도 엄청 왕따가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여일의 순수함이 모자람으로, 또는 비정상과 광기로 치부되기 쉬웠을 거야. 그때만 해도 그런 사람들이 이웃으로 있었는데 어느샌가 모두 사라졌어. 정신병원 같은 각종 수용시설로 다 들어간 거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쓴 <광기의 역사> 대로 우리도 그런 근대화 과정을 밟은 거지. 이런 ‘비정상’에 대해 사회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어. 이를테면 사회는 왕따 같은 희생양이 계속 필요하지. 히틀러의 유대인과 집시 학살도 넓게 보면 여일이나 은하 부부의 왕따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집단적 분노와 광기를 소수의 ‘비정상’에 퍼부어서 사회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또 하나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 사실 은하 부부 동네사람들이 재수없다고 소금 뿌리는 건 혐오시설이 동네에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과 꽤 비슷해. 국가적으로 확대하면 올림픽에 찾아오는 손님들 외관에 보기 좋지 않다고 난민촌을 갑자기 철거하는 1980년 소련이나 1988년 한국사회가 되는 거지. <홀리데이>는 잠깐 앞장면에서 그때의 난민촌 철거를 다루고 있더라. 평소 주위를 잘 둘러봐. 우리 사회가 누구를 내쫓고 누구를 비정상으로 분류하는지를. 일상에 대한 그런 날카로운 관찰에서 글쓰기가 시작되는 거야.

더 볼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단순한 잡범인 랜들이 정신병원에 잘못 들어갔다가 정말 정신병자가 되버린다.

<파이란> 삼류건달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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