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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한국영화 [3] - 가상 시나리오
이종도 2006-01-20

2006 신화의 재구성

2006년 가장 큰 행사 가운데 하나인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변화를 살짝 알려주는 4페이지짜리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봤다. 최근 들어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백윤식이 주인공을 맡고 시나리오 뼈대는 <범죄의 재구성> <지구를 지켜라!> 등 그의 출세작으로 삼았다. 행간마다 올해의 이슈들을 끼워 넣어 부족하나마 올해 한국사회의 판도를 예감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1. 1월. 김선생이 2006년 기상도를 그려보다

김선생(백윤식)이 모형 자동차로 외국 도시에서의 운전을 시뮬레이션해보고 있다. 이때 최창혁(박신양)이 건들대며 나타난다.

김선생: 너 뭐냐?

창혁: 학교 다녀오는(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길입니다.

김선생: 어, 최 선수구나?

창혁: 큰 거 열장이 걸렸다구요? 근데 무슨 애들처럼 장난감 갖고?

김선생: (자동차를 계속 움직이며) 이 차가 그냥 지도 위나 다니는 게 아냐.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 개막전 열리는 데라고. 척 보면 차들이 독일스럽지 않니? 2006년 최대 이슈가 뭐야, 최 선수?

창혁: 무슨 황당한 퀘스천이에요? 어, 독일 월드컵?

김선생: 마음에 청진기를 대봐. <뉴스위크>에서 2006년 최고 이슈를 뭐라고 뽑았어? 지식! 지식이잖아. ‘지식 혁명, 왜 가장 현명한 국가와 기업에 승리가 갈 것인가?’ 내년에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은 게 뭐야?

창혁: 월드컵 입장권을 위조해 팔자? FIFA를 수술시키자는 거네. 듣자 하니 김선생님 이번 추위 땜에 거기가 확 쪼그라들었다고 그러던데. 다시 오뉴월 소불알처럼 확 늘어나셨나봐?

김선생: 그게 지식이라는 거야.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삼성경제연구소가 왜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을 4.9%나 잡았을 거 같애? 길거리 응원에, 이기고 나서 한잔 마시고, 선남선녀 기분 좋아 여관 가고, 다 쓰게 돼 있다구. 영화배우들(사기꾼) 좀 불러봐. 고기나 굽게.

# 2. 2월. 영화배우들, 도원결의를 하다

김선생 이하 영화배우들이 모여 김선생집 옥상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

김선생: 취직들 좀 해라.

얼매(이문식): 김선생님 손 끊었다믄서요.

제비(박원상): 선생님 명예퇴직하셨다가 필드가 그리워서 나오셨잖아.

김선생: 월드컵 프로젝트, 어때. 시추에이션이 어떤 거 같애?

제비: 생각 좀 해보고요.

김선생: 넌 생각 하지 마. 생각은 내가 하니까. 자들, 취직 축하한다. (글라스에 와인 가득∼)

창혁: 우린 이력서가 되니까∼.

휘발유(김상호): 근디, 궁금한 게 있는디, 위조 항공권이랑 위조 월드컵 입장권이랑 짭새한테 걸리믄 얼마나 살래나? (모두들 재수없는 소릴 들었단 표정)

김선생: 다들 침 뱉어. (모두 칵∼ 침을 뱉는다). 입도 가셔. (모두 와인으로 가글하고 뱉는다)

#3. 3월. 김선생, 지방선거와 사업을 연계하다

김선생, 이암박 대선 후보 진영에 찾아가 이암박 후보와 티타임을 갖는다.

김선생: 이암박 후보께서 청계천 만드시고서 하는 첫 선거인데, 5·31 지방선거, 시추에이션이 좋아요.우리 선수들이 청진기 대봐도 답은 하나예요. 이게 후보님 대선 가는 길이잖아.

이암박: 대통령 자격증 시험이 있으면 당연히 내가 딸 텐데.

김선생: 지방선거 압승이라고 보고, 6월9일부터 7월9일까지(월드컵 기간) 바쁘세요?

이암박: 주중엔 제가 만든 버스전용차선으로 출퇴근하고, 오후엔 청계천 산책하고, 주말엔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느라 바쁩니다만.

김선생: 조류독감에 걸리셨구나. 조류독감 치료 줄기세포를 11개 내가 확보했는데 당장 후보님께 봉헌하겠습니다. 그건 좀 나중에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이번에 누가 골 넣을 거 같애요, 독일에서?

이암박: 박지성이 아니겠어요?

김선생: 2006년 트렌드 하면 또 유비쿼터스 아니겠어요? 실시간으로 전세계가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잖아요. 바쁘시더라도, 박지성 선수가 골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면서 이암박 후보님 감사합니다, 하고 카메라 앞에서 말하고 그럼 서울에서 이후보님이 사랑한다며 두손 머리에 올려 하트 표시하면, 그거 바로 대선으로 가는 결승골이죠. 돈 조금만 쓰시죠?

이암박: 축구계에 빠꼼이신가봐요?

김선생: 미국 공화당쪽에서 전화가 왔네, 바빠서 이만. 11월7일 미국에서 선거가 있는데, 도와달라고 야단이야. 공화당 애들이 국회도 놓칠까봐 똥줄이 타는 거지. (이암박, 놀란 표정이다)

#4. 4월과 5월. 선수들, 입장권을 만들다

휘발유가 피땀 흘리며 월드컵 입장권을 위조하고 있다.

휘발유: 햐, 말이 11도지, 2002년 월드컵 입장권 오리지날을 정확히 분석해가지고 필름 11장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봐. 옛날 같으면 눈깔 빠졌다고, 눈깔!!

창혁: 근데 언니 이름은 왜 휘발유야? 휘발유에 돈 냄새 좀 나나?

얼매: 자기야, 올해 유가가 얼마나 급등했어? 40프로야 40프로. 미국이랑 중동이랑 짝짜꿍이었다가 어떻게 됐어? 근데 9·11 이후 좆나 금이 갔네~. 부시가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 사우디 압둘라 왕세자를 초대해서 열라 들이밀었는데도 산유량은 늘어날 줄을 모르네~. 쪽바리 새끼들이 부시가 졸라 지랄하는데도 이란이랑 몰래 아자데간 유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네? 그럼 오빠라도 휘발유에 관심 안 갖겠어? 올해 화두야, 화두.

창혁: (순간 김선생에게 문자 메시지가 온다. 한국 8강, 4강 진출 유무로 판돈을 거는 도박 사이트를 만들라는 지시다) 어차피 안 먹어도 딴 새끼들이 먹게 돼 있는 돈인데, 착하게 살면서 보고 있을 순 없지. (월드컵 입장권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운다)

휘발유: 새해부터 담뱃값 500원 오른대매?

얼매: 그러니까 인생이 부조리한 거야. 다시 또 안 올리겠대. 기껏 사재기해놨더니.

#5. 6월. 병구가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리려 하다

병구(신하균)는 마네킹 판 돈과 벌꿀 판 돈으로 월드컵 티켓과 항공권을 사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린다. 그러나 티켓이 가짜란 게 밝혀진 뒤 엄마는 갑자기 병세가 더 악화되고 병구는 깊은 실의에 빠진다. 병구는 추적 끝에 김선생의 텅 빈 사무소를 덮치고, 마침 월드컵 4강 도박 판돈 사업을 하러 나온 제비를 잡게 된다.

제비: 아, 씨발 민주주의는 이게 안 좋아. 항공사가 망한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야, 근데 그건 뭐야.

병구: (손에 들고 있던 꿀병을 내민다)

제비: 야, 난 말이지, 몸에 좋은 상황버섯 이런 거나 먹는다구.

병구: 벌들한테 밥 좀 주려구요. 장마철이라서 벌들이 통 먹질 못했거든요.

제비: 장마철엔 설탕물도 먹인다더니.

병구: 아뇨. 전 벌에게 설탕물은 먹이지 않아요. 그건 벌들을 속이는 나아~쁜 짓이거든요.

제비: 근데 여기에 무슨 벌이 있어? (병구가 꿀을 제비에게 뿌린 뒤 가져온 상자를 연다. 벌들이 일제히 제비에게 날아든다)

#6. 7월. 4강 진출을 염원하며 대한민국이 잠을 못 이루다

한국과 스페인 16강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서울에선 시차 탓(독일이 여덟 시간이 빠르다)에 밤을 꼬박 새고 동이 튼 이후에도 득점에 따라 도박을 하고 있는 김선생 일당들. 한국이 시종 밀리고 경기가 거의 끝나갈 참이다.

휘발유: 자, 내가 뭐랬냐. 쩌번 대회는 홈경기 이점으로 먹고 들어간 거야. 5만원씩, 것다가 무득점이니까 피박! 5만원씩 더.

순간 이영표가 동점골을 터뜨린다.

제비: 도로 5만원씩 가져간다이~(벌에 쏘여 얼굴이 팅팅 부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직전, 박지성의 왼발 역전골이 터지고 한국, 8강에 오른다.

얼매: (판돈을 깡그리 휘저어가며) 인생 뭐 있어? 부조리! 부조리!!

#7. 4강전을 앞두고 구로동 샤론스톤 뜨다

베를린의 한 여관방. 김선생과 샤론스톤(염정아)이 작전을 세우고 있다.

김선생: 얘 얼굴을 잘 기억하라고. 얘가 박지성이야.

샤론스톤: 어마, 열라 섹시하게 생겼다. 얘를 숙소 앞에서 사인받는 척하면서, 내일 골 넣을 결정적 순간에 헛발질을 하라고 최면을 걸라 이거지?

김선생: 4강에 자칫 올라갔다가는 큰 거 10장이 사라진다. 모두들 4강 올라간다고 엄청 꼴아박았어. 이때 거둬서 먹어야지.

샤론스톤: 나 좀 봐. 어때. (요염한 포즈를 이리저리 취해본다) 게임 끝났어~. 다 죽었어~.

#8. 프로젝트의 수확을 따다

구로동 샤론스톤이 엉뚱한 후보 선수에게 최면을 걸고, 박지성은 해트트릭을 하는 바람에 한국은 독일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 4강 판돈으로 모든 걸 잃은 김선생은 차비를 간신히 빌려 한국으로 향하고, 김선생 일당은 그동안 번 돈을 인출하기로 한다.

휘발유: 어제 또 허리 돌렸구만.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 1억 해봐야 11킬로야. 다해봤자 110킬로밖에 안된다고.

제비: 김상호씨. 요즘 기가 허하세요? 제가 드린 상황버섯 드시고도 상태가 안 좋으시네요~. (함께 있는 은행경비들 눈치 좀 보라고 쫑코를 준다)

#9. 김선생의 말로

김선생은 서울에 도착, 소식을 듣고 ‘제비’ 잡으러 다니지만, 제비는 벌써 여자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당한 뒤다. 마침 비까지 처절하게 내리고 있는데 물파스와 이태리 타올로 중무장한 병구에게 덜미를 붙잡힌다.

병구: 김선생님 맞죠? (해맑은 미소로)

김선생: 넌 누구야?

병구: 모르시겠어요. 고향 후배잖아요. (표정 굳어지며) 고향이 안드로메다시죠?

김선생: 야, 나 뇌수술당해서 상태 안 좋아. 뭐? 안드로메다?

병구: 고향이 안드로메다 아니냐구, 이 더러운 외계인 놈아!

#10. 올드보이 김선생

병구는 김선생을 납치해 지하실에 감금하고 삭발시킨다. 김선생은 온갖 탈출방법을 모색해보지만 결국 절망한다.

#11. 한 위대한 축구광의 부활

김선생은 병구의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탈출, 컴퓨터방으로 올라가 안드로메다 우주선과 접선하는 데 성공한다. 안드로메다 우주선은 한국의 결승 진출과 아들 구출을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뜨려 병구의 컴퓨터방을 엉망으로 만든다. 뒤늦게 병구가 나타나지만 손을 쓸 틈이 없다.

안드로메다 왕: akifoaj! aliaouja(한국과 브라질 결승전을 보러 빨리 슈투트가르트로 가자, 이 멍청아)

김선생: kkakukasjakaj alflailja(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