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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적인 판타지, <나이트 워치>
이종도 2005-12-06

영화를 보고 나면 어둡고 광활한 러시아 숲의 초입에 성큼 들어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트 워치>는 러시아판 <반지의 제왕>이다. 그러나 이 진술의 방점은 ‘러시아판’에 있다. <반지의 제왕>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지점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역사성이다. 여기엔 천년 가까운 어둠의 세력과 빛의 세력의 대결이 있다. 단 두 사람이 싸우는데, 천년 동안 싸워 온 전사들이 모두 호출된다. 선과 악의 엄청난 대결이 아니라, 싸움 하나에도 역사적인 의미를 두고 과거사를 들춰 보이는 과장된 진지함이 있는 것이다. 선은 악을 품고 있고, 악에도 선이 있으니 도스토예프스키적인 판타지라 해도 무방하다.

흡혈귀와 마법사와 둔갑술사가 활약하는 걸 보면 조잡해 보이는 <블레이드> 연작이나 <언더월드>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이트 워치>만의 영상언어는 그것보다 더 형이상학적이며, 판타지 장르에 훨씬 더 깊이 들어가 있다. 공중제비를 하는 트럭이나, 부엉이가 여자로 변하는 둔갑술, 손을 가슴에 넣어 치료하는 소생술은 독특한 문화적 토양에서 나온 상상력의 언어임을 가늠하게 한다. 흡혈귀를 무찌르는 필살기 따위는 없다. 여기엔 거울과 손전등 같은 상징적인 무기만이 있을 뿐이다. 감독은 초라한 무기들을 저예산의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메운다.

모스크바의 지하철과 아파트 주위를 서성대는 사람들이 천년전쟁을 치른다. 휴전 협약을 맺은 이들은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데이 워치’와 ‘나이트 워치’란 이름으로 인간의 도시를 순찰한다. 1992년 바람난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 마녀를 찾아간 안톤은 어둠의 세력을 감시하는 나이트 워치를 만난다. 12년 뒤 나이트 워치가 된 안톤은 한 아이를 뒤쫓으면서 거대한 저주의 한복판으로 들어선다.

이야기가 직선적으로 달려가서 끝을 맺는 게 아니라 점점 그 몸집을 부풀리며 전개되는 까닭에 난삽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위기에 몰린 ‘빛’의 극적인 승리 따위를 기대하면 안 된다. 영화를 다 본다 해도 기껏 3부작의 초입에 들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진작부터 숲에 들어갈 생각이 있던 자들만 들어가라. 이 숲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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