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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빌 머레이가 베푸는 향연, <브로큰 플라워>
김혜리 2005-12-06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르는 여인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하고 아는 여자는 떠난다. 이것이 <브로큰 플라워>의 이상한 시작이다. 돈 존스턴(빌 머레이)에게 당도한 편지는 말한다. 19년 전 그가 알지 못하는 동안 옛 애인이 낳아기른 아들이 생부를 찾으러올 테니 놀라지 말라고. 한편 동거를 청산하고 떠나는 여자 셰리(줄리 델피)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마치 당신의 정부(情婦)처럼 느껴져요. 당신은 결혼도 안 했는데 말이죠.” 이중의 곤혹스런 사태를 맞은 이 남자의 대처라곤, 소파에 털썩 눕는 것이 전부다. “컴퓨터 사업으로 돈을 꽤 벌었다”는 언급 외에 그가 왜 화려한 연애 편력과 사업에서 은퇴했는지 암시하는 단서는 거의 없다. 아니, 어쩌면 있다. 여자들은 이 남자가 ‘쿨한’ 방식으로 걸어잠근 마음의 문 뒤쪽에 정작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떠났을 것이다.

짐 자무시의 영화에서는 흔히, 순수하고 열정적인 이방 출신이 무감동한 미국인을 충동질해 인생의 정체를 발견하게 한다. <브로큰 플라워>에서도 이야기에 발동을 거는 것은, 에티오피아계 옆집 남자 윈스턴(제프리 라이트)이다. 탐정 흉내가 취미인 윈스턴은 돈에게 편지의 발신인을 찾는 여행을 권한다. 인터넷으로 조사한 ‘후보’들의 주소와 교통·숙박 정보, 운전 중 감상할 CD까지 제공하는 패키지 투어다. 여행의 개요만 봐서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윌리 넬슨의 감미로운 이중창 <To all the girls I’ve loved before>라도 흘러야 제격일 듯하지만 어림없다. 돈의 여행은 본질적으로, 흉터를 방문하는 일이고 오래전 빗장 지른 빈 방을 차례로 열어 퇴락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돈과 다섯 여자의 조우를 그린 에피소드들은 뒤로 갈수록 더욱 짧아지고 메말라간다. 첫 번째로 돈이 찾아간 미망인 로라(샤론 스톤)는 그와 적당히 즐거운 밤을 보낸다. 히피로서 산 청춘을 등지고 부동산 중개인의 창백한 아내가 된 도라(프랜시스 콘로이)는 아물지 않은 감정을 드러낸다. 법률가 생활을 청산하고 동물 의사소통 센터를 운영하는 카르멘(제시카 랭)은 예의를 갖추지만 냉담하다. 그녀는 아마 성적 취향도 바뀐 듯하다. 모터사이클족들과 더불어 아직 거칠게 사는 페니(틸다 스윈튼)는 아예 문전박대한다.

단일 내러티브를 지닌 짐 자무시의 장편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브로큰 플라워>도 고전적 3장 형식을 취한다. ‘출발 전 - 여행 - 귀향 후’의 3막 구조 안에서 에피소드들은 운문처럼 행을 갈며 흘러간다. 그리고 모든 행에는 “누가 아이의 엄마인가?”라는 미스터리의 심증과 물증들이 흘러넘친다. 셰리의 분홍 투피스, 로라의 분홍 가운, 도라의 분홍 명함, 카르멘의 분홍 바지, 페니의 분홍 모터사이클과 타자기, 아들일지도 모르는 청년의 가방에 달린 꼬리표까지. 그러나 어떤 단서도 결정적인 해명을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브로큰 플라워>는 내용이 휘발된 한 아름의 기호들을 묶은 마른 꽃다발일 뿐이다. 돈의 여행에 없는 것은 해답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제대로 된 기행문에 있어야 할 요소가 결여되거나 변형돼 있다. 여행자인 돈의 성격부터 모호하고 네개의 행선지는 지명이 지워져 있다. 이쯤 해서 관객은 이 로드무비가 추적을 핑계 삼은 자성(自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여행길에서 돈은 옛 애인들뿐 아니라 비행기와 버스의 이름 모를 소녀들부터 로라의 딸 롤리타, 꽃집의 친절한 아가씨, 카르멘의 비서 등 수많은 여인들에게 시선을 사로잡히고 꿈속에서도 그들의 이미지를 본다. 요컨대 돈이 방문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여자이기도 하고 그가 사랑했어야 할 단 한 사람의 여인이기도 하다. 돈 존스턴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죽은 남자다. 그의 여정은 치명상이 심장을 천천히 잠식하는 동안 여행한 <데드맨>의 윌리엄 블레이크나, 죽음을 대전제로 삶을 연출한 <고스트 독>의 킬러가 걸은 길을 연상시킨다. 한편 돈이 재회한 여인들의 얼굴은 세월 또는 그것을 지우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의 자취를 드러낸다. 나이든 돈과 여인들의 현재는, 꽃밭도 사막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꺾인 자리를 드러내고 땅 위에 누운 꽃들이다.

연기의 본령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reaction)이라고 믿는 관객에게 <브로큰 플라워>는 배우 빌 머레이가 베푸는 향연이다. <러시모어> <로열 테넌바움>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무표정의 깊이를 과시한 빌 머레이는 <브로큰 플라워>에 이르러 배우(actor)가 액션을 어디까지 버릴 수 있는지 실험이라도 하는 듯하다. <브로큰 플라워>의 그는 온갖 사물과 사건, 공격과 위로에 대해 모든 감정이 철거된 공터 같은 표정으로 대응하면서도 매번 다른 효과를 내는 데에 성공한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닉 로딕, <빌리지 보이스>의 제시카 윈터는 그의 연기를 평하며 편집으로 의미가 발생하는 쿨레쇼프의 몽타주 실험을 언급했는데, 여기에 동조한다면 <브로큰 플라워>는 연극과 차별되는 영화 연기의 좋은 교본이 될 만한 영화다. 또한 짐 자무시에게 언제나 코미디의 감각은 의사소통의 단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브로큰 플라워>는 빌 머레이라는 한명의 배우를 통해 이 야심을 가볍게 성취해버린다.

그러나 극 중에서 돈의 냉담함은 조금씩 금이 간다.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인 죽은 여인의 무덤 앞에서 비에 젖고 멍든 늙은 사내는 “안녕, 예쁜이”라고 듣지 못하는 여자에게 인사하며 붉어진 눈을 껌벅인다. 귀향한 돈은 아들일지도 모르는 청년을 맞닥뜨리자 급기야 행동까지 한다. 그러나 짐작은 벗어나고 결심은 거절당한다. 달아난 젊은이 뒤에 황망하게 남겨진 돈을, 또 한명의 낯선- 정말 아들일지도 모를- 청년이 놀란 표정으로 스쳐간다. 돈이 낯선 청년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영화 내내 정면과 후면, 90도 측면을 고집하던 카메라가 날아오른다. 돈을 한 바퀴 반 돌아 다시 정면에서 응시하는 시점의 전환은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돈 존스턴은 과거를 더 잘 알게 되거나 미래를 바꾸지 못했다. 과거의 애인들은 누구나 아들의 엄마가 될 수 있고, 어느 청년도 그의 아들일 수 있다. 돈에게 만사는 완료시제나 가능태로만 존재한다. 짐 자무시 감독은 돈이 과거를 추적하는 여행을 하는 동안, 정작 그의 집 화병에 피어 있던 꽃은 시들어버렸음을 보여준다. <브로큰 플라워>는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가진 것은 현재뿐이다”라는 초라하지만 불가피한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을 거의 수학적으로 증명해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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