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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출연배우들
2001-07-3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혹성 탈출>에는 1천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에게 유인원 분장을 시켜야 했다. 분장을 맡은 사람은 아카데미 5회 수상의 거장 릭 베이커. <배트맨> <맨 인 블랙> <그린치> 등에서 특수분장을 담당했던 릭 베이커는 <혹성 탈출>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원숭이들의 두터운 입과 전신을 뒤덮은 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감정과 느낌을 순간에 포착할 수 있다. 그냥 마스크를 뒤집어쓴 게 아니라, 마스크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성우가 정해지면, 그의 인상이나 행동의 특징 같은 것들을 캐릭터에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캐릭터가 행동을 하고, 감정표현을 할 때마다 관객은 실제 배우에게서 받았던 것 같은 느낌을 여전히 전달받는다. <혹성 탈출>에서도 마찬가지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할 때, 두터운 분장 위로도 슬픔이 스며나온다.

하지만 감정이 전달되고 배우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과 별개로 원숭이 역을 맡은 배우들의 얼굴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망좋은 방>과 <하워즈 엔드> 등 제임스 아이보리의 영화에서 전형적인 영국 처녀 역을 주로 맡았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최근 몇년간 맹렬하게 역할 파괴중이다. <파이트 클럽>에서 마약과 섹스에 취한 여인으로 보여준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테드 장군 역의 팀 로스 역시 영국 출신.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픽션>으로 유명해진 팀 로스는 ‘광기의 분출’라는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혹성 탈출>에서도 유감없이 자신의 매력을 발휘한다. <아마게돈> <그린 마일>에 출연했던 마이클 클락 던컨이 테드 장군에게 밀려 실각한 애터 역을 맡았고, <빅 마마 하우스>의 폴 지아매티가 노예상인 림보를 연기한다.

‘원숭이 행성’이란 백그라운드 탓인지, 인간들의 활약은 아쉽다. 인생의 모든 죄악을 대신 사해주는 것처럼 인상을 쓰던 찰턴 헤스톤에 비한다면 마크 월버그는 아주 평이하다. 그냥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군인이라고나 할까. 마크 월버그의 연기도 따라서 평평한 느낌이다. 레오와 함께 탈출하는 대나 역의 에스텔라 워런은 페리 엘리스와 까르티에 등의 광고모델로 유명해진 신인배우. 78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수중발레 챔피언도 지냈고,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까지 받았다. <공룡 백만년>의 라켈 웰치 못지않은 신체 조건을 지녔지만 아쉽게도 팀 버튼은 그녀를 매혹적으로 잡아내지 않는다. 그냥 레오 주변의 ‘인간’ 하나로 비친다고나 할까.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제대로 보기도 전에, 허공을 가로질러 그냥 날아가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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