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그녀(전지현)를 처음 본 건 지하철에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녀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머리에 왕창 토한 뒤 지하철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사태를 지켜보던 견우(차태현)는 그녀를 업고 역을 나서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여관에 데려가 재운 다음날 그녀에게 전화가 온다.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녀는 견우 앞에서 술을 마시더니 다시 한번 실신한다. 이틀 연속 그녀를 여관에 재운 견우는 예기치 않게 엽기적인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다.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번번이 견우를 당황시키는 그녀의 자제할 줄 모르는 행동들이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뭐든 하라는 대로 따르는 착하디착한 견우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틈을 보이지 않는다. 얼핏 첫사랑을 잃은 아픔을 내비치던 그녀를 보며 견우는 이별을 예감한다. 두 사람은 서울 근교 어느 언덕의 나무 아래에 2년 뒤 열어보자며 각자의 편지가 담긴 타임캡슐을 묻고 헤어진다.
■ Review
십수년 전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나오는 여자,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 나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 있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 노래의 마지막 소절에서 비롯된다. 노래말은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주인공 견우는 참으로 쉽지 않은 갖은 고행을 헤쳐간다. 술만 마셨다하면 실신하는 그녀는 기껏 여관에 업고 가서 고이 재우면 다음날 보자마자 뺨부터 후려치지만 견우는 변명 한번 제대로 못한다. 다짜고짜 반말로 나오는 그녀에게 “예… 그런데요”라며 나이를 확인하는 조심스런 말투는 견우가 7살 때까지 자신이 여자인 줄 알았다는 초반부의 독백을 상기시킨다. 카페에 가면 커피를, 술집에 가면 골뱅이를 시키라는 폭군 같은 요구에도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고약한 술버릇과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을 마냥 귀엽게 받아들인다.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 같은 부자가 아니며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처럼 강한 남자는 아니지만, 견우는 요즘 젊은 여성들이 원하는 어떤 남성상을 대변한다. 2001년 서울에서 ‘백마탄 왕자’란 모름지기 그녀의 철없음과 응석을 감싸안을 너른 가슴을 가져야 한다.
1999년부터 PC통신에 연재된 이야기 <엽기적인 그녀>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건 대단히 우연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영화화한 쪽의 목적의식은 분명하다. 제목을 ‘귀여운 남자’로 바꿔놓아도 별반 차이가 없을 이 영화는 그녀의 엽기적 행동이 아니라 그 남자의 가식없는 너그러움에 주목한다. <엽기적인 그녀>의 해학은 그녀의 기행이 초래하는 것이지만 정작 웃음이 터지는 건 견우의 난처한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이런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여길 것이다. 맞다. 황당하고 어이없어 어쩔 줄 몰라하는 차태현의 모습은 박중훈을 연상시킨다.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할렐루야>에서 속물근성을 참지 못해 흘리는 표정의 파노라마가 정반대 성격을 지닌 차태현의 얼굴에도 들어 있다. 박중훈을 궁지로 몰아넣으며 천변만화하는 가면을 요구했던 것이 부조리한 사회라면 차태현의 코믹함을 부추기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다. 과거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멜로드라마의 여성상을 역전시킨 그녀를 영화는 ‘엽기적’이라고 부른다. 당당하고 솔직하며 직선적인 그녀가 “그런 남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그런 여자”가 되는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처럼 달라진 멜로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이 핵심인 영화다. 제작사가 신씨네라는 사실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지점이다. 신세대 성풍속도에 기반한 <결혼이야기>, 자기가 죽은 다음을 걱정한 자상한 남편이 등장하는 <편지>, 그녀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멋진 남자가 주인공인 <약속> 등 신씨네는 언제나 멜로드라마 유행의 맨 앞줄에 있었다. 영화의 완성도는 또다른 논란거리지만 <엽기적인 그녀>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건 패션의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각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신씨네의 영화로 먼저 다가온다.
영화 중반부에 코믹하면서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 그녀가 하이힐을 신어 발이 아프다며 견우의 운동화를 빌려 신는다. 그녀에게 운동화를 주고 대신 그녀의 하이힐을 신고 뒤뚱거리며 걷는 견우에게 그녀가 소리친다. “나 잡아봐라.” 기가 차다는 견우의 표정에 다시 그녀가 소리친다. “너, 나 안 잡으면 죽어.” <엽기적인 그녀>가 처한 위치를 잘 보여주는 이 장면은 70년대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봤던 “나 잡아봐라”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나무를 빙빙 돌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녀와 괜히 잡으려는 시늉만 하는 남자가 마침내 낙엽 가득한 숲속에서 뒹굴고 마는 시퀀스 말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달라진 것은 표현방식이다. “너, 나 안 잡으면 죽어”라는 거친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30년 전 신성일이라면 어떤 표정을 지어보였을까? 그러나 변한 것은 단지 말투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후반전을 지나 연장전에 돌입하는 동안 영화는 복고풍의 드라마에서 정서적인 힘을 얻는다. 그녀와 견우가 언덕 위 나무 아래에 타임캡슐을 묻고 2년 뒤 만나자고 약속하며 시골 간이역에서 올라타는 기차는 분명 과거로 향하는 것이다. 온갖 이동통신이 도무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은 첨단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수차례 어긋난다. 영화는 그들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을 그들의 만남을 주선한 운명보다 소홀히 취급한다. <엽기적인 그녀>가 시대의 변화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귀에 감기는 하모니를 들려주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1989년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데뷔한 곽재용 감독이 1993년 <비오는 날의 수채화2> 이후 8년 만에 연출한 <엽기적인 그녀>는 ‘캐릭터 변주’라는 당초 목표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작품이다. ‘낡은 영화에 포장만 새로 입힌 꼴’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지만 이 영화가 호소력을 발휘하는 지점도 이런 구식 감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토록 씩씩하고 강해보이던 그녀가 견우를 저 멀리 반대편 산에 보내놓고 외친다. “견우야. 들려?” 결코 듣지 못할 걸 알기에 그녀는 울먹이며 다시 소리친다. “견우야, 미안해.” 의연하던 그녀가 내비치는 여린 마음이 심중에 있는 말을 끝내 못했던 우리의 바보 같은 사랑을 스쳐지나간다.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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