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포르노 영화로 영화계에 입문했던 구로사와 기요시는 스릴러의 외양을 빌려 <큐어>의 모양새를 다듬었지만,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장르의 관습에는 무심하다. 로망 포르노 영화가 포르노의 외피 속에 감독의 자의식을 짙게 깔았던 것처럼, <큐어>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장르적 유희가 아닌 탈수기처럼 같은 방향으로의 순환을 반복하면서 삶을 건조시키는 일상의 잔인한 힘과 그 평온함 뒤에 숨겨진 ‘문명 속의 불만’을 까발리려 한다. 일상은 자신의 평온함을 위해 인간에게 너무도 많은 포기를 요구하고, 그럼으로써 출구를 상실한 불만은 가슴을 짓누른다. 그것이 <큐어>의 묵시론적 세계관에 담긴 구로사와 기요시의 불만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살인. 더구나 이 사건은 시체에 X자를 새기는 것 외에는 관련이 없는 살인자들에 의한 것이다. 용의자들은 살인의 이유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담당 형사인 타나베(야쿠쇼 고지)는 이들 모두가 범행 직전에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라는 청년과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타나베는 마미야를 취조하여 사건을 규명하려 하지만, 오히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덫에 걸려 자신을 취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큐어>를 이끌어가는 힘은 마미야가 던지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인물들은 이름과 직업, 가족관계 등의 사회적 규정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 하지만, 집요하게 반복되는 질문은 그들의 일상적 자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깨닫도록 한다. 즉 마미야의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일상적 삶이라는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그 심층부에서 꿈틀대는 억압된 자아를 발견하라는 주술적 요구인 셈이다.
살인자를 내세우지만 궁극적으로는 평범한 자들에 대한 영화인 <큐어>는 가장 익숙한 삶 속에 내재된 불만과 분노, 공허함과 폭력적 충동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구로사와 기요시는 세탁기나 환풍기, 믹서기 등의 일상적 소음으로 ‘낯선 익숙함’을 빚어내고, 텅 빈 공간을 도드라지게 하는 미장센을 통해 ‘평온의 탈을 쓴 공허함’의 무게를 잰다. 작별 인사를 위해 손을 흔드는 의례적 행위처럼 무미건조하게 묘사된 살인장면이 빼놓을 수 없는 섬뜩함이지만, 분노의 폭발과 일상의 평온함, 어느 것을 선택하든 그 결과는 모두 암담하리라는 묵시론적 결론은 더욱 잔혹하게 느껴진다. 1997년작인 <큐어>는 너무 뒤늦게 도착한 편지이지만, ‘진짜 구로사와 기요시’를 원한다면 소인 날짜쯤은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