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한참을 뒤돌아봐야 한다. <마부> <박서방> <월급봉투>, 제목을 짚어가면 그건 이미 ‘조국의 근대화'가 조국을 뒤덮기 전이다. 그때 이미 아버지들의 위치는 불안불안했다. 옛시대의 심성으로 변화하는 세태를 맞는 그 모습에는 희생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주인공이었다. 그들이라기보다 배우 김승호라고 말해야 정확하겠지만.
그의 아들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에서건 현실에서건 아들들은 이미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넘겼을 텐데. 한해 1인당 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5회, 10회를 웃돌던 극장가의 황금기가 순식간에 막을 내렸을 때, 한국영화도 긴 불황에 들어갔다. 영화는 혼자서 늪에 빠지지 않았다. 배우들도, 스타들도 끌고 침몰했다. 시기적으로 대략 유신시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로 계산된다. 한국영화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을 때, 구명정을 탄 몇몇을 빼면 한국영화 황금기의 아들들은, 그리고 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영화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는데, 구명정은 대체로 영화의 기슭으로 가닿지 않았다. 문화예술로 치장해 권력의 정통성을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집단이 좌석이 적은 그 작은 배들을 끌어들였다.
돌아오지 않은 건 배우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친구, 관객도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에게 여가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영화는 많은 것들과 함께 사치였으니까. 간혹 배우를 사랑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 사회의 유행상품이 배우의 영화가 아니라 스타의 광채였던 ‘그런 때’도 있었다. 배우에게 자신의 꿈을 투영하는 관객이 사라진 마당에, 그들이 영웅이 되고 사랑을 할 계제가 마련될 리 없지. 칠순에도 매혹적인 숀 코너리나, 예순 목전에도 여전히 스타인 해리슨 포드는 먼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니, 어느 때부터 그들은 거기 있었다. 권력도, 영웅담도 지니지 않은 우리의 아버지. 신구, 박인환, 주현, 명배우 세분은 그 아버지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없었으면 영화는 제 속에 세상을 완성할 수 없을 뻔했다. 다음 세대의 아버지들, 오늘 젊은 배우들의 미래는 자식들 곁으로만 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이 영화의 복판에 설 수 있을 때, 우리는 한국의 영화가 잊고 있던 세상의 다른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씨네21>의 310호 특집을 한국영화의 세 아버지께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