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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선이고, 추는 악인가
2001-02-02

숏 컷...김봉석 칼럼

올해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작은 론 하워드 감독의 <그린치>. 무려 2억5천만달러를 벌어들여 <미션 임파서블2>와 <글래디에이터>를 가볍게 제쳤다. 아직도 성적이 괜찮으니 총수익은 더 늘어날 거다. 하지만 국내 성적은 정말 초라하다. 12월16일 개봉했는데 10만명도 못 넘고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원작이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다. 또는 짐 캐리 때문이기도 하다. 짐 캐리의 <미, 마이셀프 앤 아이린>은 국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짐 캐리는 <에이스 벤츄라> <마스크> 그리고 코미디 연기에서 벗어난 <트루만 쇼> 정도를 제외하고는 환영받은 영화가 거의 없다. 짐 캐리의 도를 넘어선 익살이나 기괴한 모션은 국내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한다.

<그린치>가 국내에서 푸대접받은 진짜 이유도 바로 그 ‘기괴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얼핏 보기에도 <그린치>는 괴상해보인다. 크리스마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인데 기괴한 모습의 녹색괴물을 굳이 봐야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행동이 귀여운 것도 아니다. 꼬마돼지 베이브는 하는 짓만이 아니라, 외모도 꽤 귀여운 편이다. 이상하게 생겼어도 하는 짓만은 천사인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 <엔젤전설>도 있다. 외모가 약간 이상해도, 하는 짓이 깜찍하다면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린치는 그렇지 않다. 자기연민에 잠시 빠진다 할지라도, 자신을 따돌린 놈들에게는 확실하게 복수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훔치고, 축제를 망친다.

<그린치>란 영화의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원작이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는 동화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다가 내용을 알고는, 그린치의 몰골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은 ‘기괴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층에서 엽기가 유행이긴 하지만, 주류문화에서 여전히 기피대상이다. 그럴 수도 있다. 괴상하고 끔찍한 것들보다 예쁘고 화사한 것을 좋아하는 심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누가 세상의 더럽고 추한 것만을 보고, 가지려 하겠는가.

문제는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세상에는 미와 추가 공존한다. 때로는 추함이 미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미와 추가 무엇인지 절대화할 수는 없다. 추가 악이라고는 더더욱 동일시할 수 없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면 추하다고 생각하고, 추한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척한다(환경을 해친다고). 주변에 장애인 학교나 시설이 들어서지 못하게 막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일전에 한 연예인이 TV에서 ‘성관계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니까’ 장애인이 태어난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다.

혹시 <그린치> 같은 걸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게 원인일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들이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자라기를 원한다. 그러나 빛에는 어둠이 있고, 심지어 빛과 동거하는 그림자도 있다. 세상의 어두운 면, 우울한 일상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 필요가 있다. 꿈은, 현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닥터 수스는 아이들도 어둠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린치> 같이 어두운 동화를 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닥터 수스의 원작을 아주 밝고 화사하게 만든 <그린치>조차 외면당했다. 한국사회가 너무 밝은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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