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제네바에 가본 적은 없지만, 세계화란 단어와 세계화 강박증을 세계화한 WTO 본부는 그곳에 있다. 본부가 자리한 로잔거리가 어디로 통하는지, 그 거리 154번지가 어디쯤인지 알 리가 없지. 어쨌든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대표단’이 7월2일, 그 낯선 거리로 향한다. 유럽방송연합(EBU), 영국영화자문위원회(BSAC), 유로시네마(EUROCINEMA), 유럽영화감독연합(FERA) 등 이름만으로도 유럽 영상기구라는 걸 알 수 있는 비정부기구, NGO들이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시청각 세미나를 열며 초청장을 보내온 것이다. 자국영화를 지켜낸 한국의 경험에 관해 발제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가본 적은 없지만 WTO 건물에서는 다양한 의제를 놓고 비정부기구 대표들과 사무국, 그리고 WTO 회원국 대표들 사이에 포럼이 자주 벌어진단다. 이번 세미나도 그런 모임 중 하나다. WTO는 자신들의 활동에 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NGO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판단해, 대화창구를 열어놓는다는 원칙까지 세워놓았는데, 그 통로를 문화부문까지 넘보는 자유시장의 논리를 논박하는 데 역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사수 캠페인을 통해 한국영화를 상영할 스크린은 물론, 영화의 지원자들까지 확보한 문화연대쪽은 모든 나라가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국제적 연대기구를 만들어야 하며, 문화분야는 다가올 다자간무역협상에서 예외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또다시 주장할 것이다.
문화연대에는 비슷한 초청장이 또 한장 날아와 있다. ‘문화적 다양성을 위한 국제네트워크’(INCD)라는 국제기구가 오는 가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여는 회의에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밝혀온 것. 이 단체는 다양한 문화가 상호작용하며 선택의 폭을 넓혀갈 때 인류사회의 발전이 보장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기구 역시 시민운동기구지만 동반자가 있다. 문화정책에 관한 국제네트워크(INCP). 문화 관련 각국 장관들의 비공식적 정책 논의 테이블이다(그들이 지난 98년 캐나다에서 첫 모임을 갖고 미국이 주장하는 문화의 자유시장화 전략에 반대한다는 한목소리를 내던 때부터, 한국대표는 거기 없었다). 루체른의 INCD 총회는 바로 이 문화 관련 장관 회의와 같은 시기, 같은 도시에서 열린다. 비정부기구와 정부기구가 함께 대인지뢰금지조약을 이끌어냈듯 문화적 종다양성을 위한 새로운 국제적 문화질서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