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주 무서운 꿈을 꿨다. 앞뒤 맥락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선명한 것은 배우 설경구가 낫과 칼의 중간쯤 되는 흉기를 들고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려오는 장면이었다. 의 강철중 형사가 이성재에게 열받았을 때의 모습과 에서 이무라를 때려눕힐 때의 표정을 곱해놓은 것과 같은 정말 살벌한 얼굴로 그는 “야 이 X발놈아”라고 외치고 있었다. 어찌나 분위기가 험악했던지 엉겁결에 나도 주변을 둘러보며 방어수단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손에 들고 보니 고작 나무 막대기였다. 그것으로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엉거주춤 방어자세를 취하는데 꿈에서 깨어났다.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수습하면서 꿈을 분석하다보니 그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이 개봉하던 날인 12월15일 밤, 나는 영화의 개봉을 축하하는 술자리를 찾아갔다. 어찌하다 보니 설경구의 옆에 앉게 됐는데, 약간 취기가 오른 그는 대뜸 나를 포함해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인즉, 에 대한 평론이 ‘영화에는 문제가 많은데 설경구는 잘했다’라거나 ‘역도산은 안 보이고 설경구만 보인다’는 식의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설경구는 감독이 연출한 대로 했는데 어떻게 영화와 떨어져 보일 수 있냐”는 것이었고, 결론은 “영화 좀 똑바로 보라는 것”이었다(물론 그의 말투는 상당히 젠틀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한마디 덧붙였다. “기자 너희들이 이 영화를 얼마나 힘들게 찍었는지 1%라도 안다면 그런 말 못할 거야”라고.
사실, 예전 같았으면 그의 마지막 말이 그리 신경쓰이진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런 얘기라면 이미 숱하게 들어온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영화라는 게 만들려고 하면 다 힘든 일이고 다 고생 아닌가. 특히 고난이도의 액션이 들어간 영화라면 그 고생의 정도는 훨씬 더할 게지만,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인 영화 그 자체이지 않은가. 영화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정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아예 마음속에 ‘접수’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그 자리에서 그의 말은 울림이 있었다. 그건 스탭이 되기 위한 문턱에서 중도탈락한 내 경험 아닌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나 자신의 불성실함에 대한 반성 때문이 아니었을는지. 그들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고민을 하고, 밤을 새워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감정을 뽑아내기 위해 무자비하게 자신을 다스린 만큼 글에 임했는가, 라는 반성, 한편의 영화를 제대로 읽어주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성실하게 표현을 고르는 대신, 손가락이 흐르는 대로 자판을 두드린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 말이다. 깜찍한 문근영이나 귀여운 아오이 유우를 가까이서 취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들보다 먼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그것도 공짜로!)에서 영화기자는 참으로 행복한 직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 영화를 만든 이의 진심과 피와 땀과 눈물로부터는 멀어졌던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버렸다. 어쩌면 그날 밤 꿈에서 만난 것은 설경구가 아니라 나태함과 불성실함을 질타하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