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 어느 유사 종교집단에 의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사주카페’는 이미 우리 생활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내렸다. 음침하던 무당집 같은 분위기의 점집이, 산뜻한 인테리어에 차까지 마시며 약속도 할 수 있는 카페로 변신하여 아무나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승진, 결혼, 진학 등 심각한 내용에서 이성친구와의 교제, 좀더 은밀한 어조로 묻는 속궁합까지 가볍고도 시시콜콜한 내용을 가지고 카페의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역술인에게 상담한다. 물론 커피값과는 별도의 오천원에서 1만원에 이르는 상담료가 추가로 지불된다.
홍익대 앞에 성업 중인 카페 ‘재미난 조각가’(02-325-4543)는 상호와는 달리 재미난 역술인들이 있는 곳이다. 지난 1995년부터 시작하여 10년간 대학생들의 일상의 한 공간으로 자리잡은 이곳은, 찾아오는 손님의 70% 이상이 점술을 볼 목적으로 찾아와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있다. 오후 5시면 평일과 주말에 상관없이 어김없이 나와 사주풀이와 타로카드를 하고 있는 여성점술인 유천(52).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시작했다는 그녀는 대학부설 사회교육원의 역술과정까지 이수한 전문 역술인이다.
“이곳은 대학 앞에 있다보니 당연히 대학생 손님들이 많아요. 그 나이에 맞게 연애와 진로에 관한 질문이 대다수고요. 외국유학에 대한 물음도 많아요. 질문이 대체로 가볍지요. 그러나 학생들이라고 나름대로 고민이 없겠어요. 뭔가 막히는 게 있고, 답답한 게 있으니 오겠지요. 개중에는 사주카페를 섭렵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사주란 진지한 측면이 있는데, 재미로만 생각하고 심심풀이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많아요.”
아울러 그녀는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걱정한다. 좋은 결과가 있도록 참고만 하면 되지 너무 점술에 매달리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란 말도 덧붙인다. “인간의 운명이란 게 있다고 저는 믿어요.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그게 피해지나요. 어차피 겪어야 하는 것이라면 겪어야지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닥쳤을 때의 임하는 자세, 그것을 넘고 극복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불행하고 슬픈 일이 생겨도 지혜롭게 넘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도 보통 한 시간은 기다려야 점을 볼 수 있는 대학가 사주카페의 풍경은 분명 먼 훗날 우리 시대의 풍속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득, 엄숙한 정치사나 경제사보다는 당대를 살았던 민중의 생활사가 요즘 역사학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역사란 거창한 인간들과 거대한 사건들만이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즐거움과 기쁨, 고통과 고민이 물결치던 심성의 상태를 살펴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사가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커피향기처럼 카페 안에 진동하는 그네들의 고민과 걱정거리는 이 시대와 사회를 기록하는 파형이란 생각이 든다.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지 말고 여기 와서 커피나 한잔 하면서 시원하게 풀어보세요.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고요. 뭐 그렇지는 않지만 놔두면, 점으로 안 풀면 점점 커지잖아요.”
타로, 내면을 비추는 거울
천재적인 에스파냐의 작가 레베르테가 지은 을 아직 안 읽었다면, 이를 영화화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는 보았는지 모르겠다. 고서중개업을 하는 주인공이 악마의 세계의 들어가는 아홉장의 타로카드를 정확하게 배열하여 수수께끼를 푸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 이집트어로 ‘수레바퀴’ 또는 ‘태양’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나왔다는 타로카드는 왠지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롭기만 하다.
트럼프의 원조이기도 한 타로카드를 유럽에 전한 이들은 십자군 전쟁 바로 뒤에 유럽에 건너온 집시였지만, 여러 나라에서 이단적인 내용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었다. 일반화된 것은 근세에 접어들어 유럽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감퇴되고 신비주의 운동이 널리 퍼지자 신비의 카드로 성행하게 되었다. 물론 타로카드 자체에 무슨 마술이나 신비한 힘이 깃들인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단순한 종이카드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타로는 이미 정해진 필연적인 운명을 해석하는 다른 점술들과 달리 자신의 운명이 담긴 카드를 자신이 선택한다는 ‘우연성의 원리’에 기초한다. 일종의 운명의 로또 뽑기라고나 할까. 우리의 무의식을 통해 조물주나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내린 어떤 운명을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타로카드는 ‘아투’라 부르는 22장에 또 다른 56장을 합한 마술사나 여자 교황 등이 그려진 78장으로 되어 있고, 질문자가 뽑은 카드를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타로카드로 점을 칠 때는 구체적인 자신의 문제나 질문을 정해서 보아야 하고, 되도록 질문도 앞으로 6개월 이내의 것으로 하는 것이 좋다. 타로카드의 원리는 인간의 무의식 세계이다. 우주 만물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것에서 복잡한 저 은하계의 질서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자신의 무의식 속에는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가 모르는 코드가 숨겨져 있고, 이것을 기호화한 카드로 나타난다. 타로카드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는 신비한 거울인 셈이다. 그 거울 앞에 당신은 무엇을 묻고 싶은가?
와 서양 점성술
동양의 에 필적하는 서양의 점성술. 특정한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의 특정한 성격을, 12개의 별자리로 해석하는 점성술은 인간의 삶을 우주의 운행원리와 접목시킨 일종의 운명과학이다. 모두 48권으로 이루어진 (게리 골드슈나이더 지음/ 북&월드 펴냄/ 8500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점성술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좀더 세분된 48개의 별자리를 바탕으로 나와 너, 나와 모든 이들간의 총 1176가지로 분류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모든 것’을 해명하고자 한다.
구성은 나에 대한 것과 나와 남에 대한 것으로 나뉜다. 우선 권마다 자신이 해당하는 ‘별자리로 읽는 나의 성격’이 나와서 내가 누구인지를 속삭여준다. 그리고 나와 같은 유명인사들을 소개하여(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명인도 포함시켰다) 나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러고나서 ‘48개 인간관계 스펙트럼’을 통하여 다른 별자리들과의 관계를 조망한다. 그 각각의 관계가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 관계가 어찌 진행되고 어디로 향할지를 살펴본다.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면 그 둘의 만남이 장차 우정, 사랑, 결혼, 일, 가정이란 길고 긴 인생여정에서 힘겨운 동반이 될지 아니면 행복한 반려가 될지 예견한다.
사실, 점성술은 아는 이들에게는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고전에 주석달기 같은 것이다. 전해내려오고 정리된 점성술의 지식에 몇 가지 해설을 달면 그것으로 그만인 셈이다. 또한 혈액형처럼 이미 타고나서 새삼스레 고칠 수도 없는 결정된 어떤 성향에 지나지 않고, 좀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운명이란 말로 포장된 적성검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성술이 아직까지 신봉되는 것은, 하늘을 바라보면 살며시 가슴에 저미어오는 저 넓은 우주 속의 내 존재가 얼마나 초라할까 하는 깨달음과 더불어 별빛 속에서 느끼는 어떤 가느다란 끈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