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는 4천개의 풍선이 아이들의 환호 속에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잘못되면 풍선을 다시 세팅하는 것만 두 시간이 걸리는 장면이라 모두들 숨을 죽인다. 지미집의 C카메라, 사다리 위의 D카메라, 크레인에 올려진 메인 카메라, 와이어로 천장에 매달린 B카메라 모두 신호를 기다리며 침을 삼킨다. 슛 사인이 떨어지고 흩날리는 풍선들. 풍선이 떨어지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쏟아지는 한숨을 뒤로하고 스탭들은 전부 풍선을 챙기느라 법석이다. 그리고 두 시간 뒤. 70여명의 어린 배우들과 함께 풍선신에 재도전하는 이곳은 열다섯살 <제니, 주노>의 결혼식이 열리는 부천 소사체육관이다.
와이어에 매달린 B카메라맨에게 김동천 촬영감독이 묻는다. “힘드냐?” B카메라맨의 대답에 긴장감이 잠시 누그러든다. “편하지는 않습니다.” 빨간 고깔모자를 쓰고 나비넥타이를 한 주인공 주노는 두려운 얼굴로 10m 높이의 그네에 앉아 있다. 아래에는 난생처음인 웨딩드레스를 입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제니가 있다. 아이들은 손전등을 흔들어대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지미집과 크레인이 다시 움직이고 조명이 강하게 체육관을 밝힌다. 주르륵 패러글라이딩하듯 내려오는 주노의 그네 위로 쏟아지는 4천개의 풍선들을 네대의 카메라가 담아낸다. 아이들은 풍선에 묻히고, 컷소리는 아이들의 함성에 묻혔다. 총소리처럼 풍선 터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움직이지 말라는 제지도 한참 뒤에나 통하는 건 피끓는 에너지를 가진 배우들에게는 당연지사.
고양이처럼 왔다갔다하며 조잘거리는 현장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제니, 주노>는 15살 중학생 남녀의 사랑 이야기. ‘중학생 임신’이라는 민감한 소재 탓에 촬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문근영을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어린 신부>의 김호준 감독, 박준석 PD 콤비의 신작이다. 이날 촬영장면은 부모님에게 임신이 알려져 곤경에 처한 제니와 주노를 위해 친구들이 학교체육관에서 결혼식을 치러주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의 절반은 두 주연배우에 의해 만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며 동시대의 감수성에 집중할 것을 예고했다. 제니 역의 박민지는 “제니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책임감이 강한 캐릭터다.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이”라고 배역과 아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심문받는 느낌이라고 너스레를 떨던 남자주인공 김혜성은 “많지는 않지만 우리 주위에 현실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답해 좌중을 술렁이게 하기도. 12월13일에 45회차로 크랭크업할 <제니, 주노>는 내년 2월 개봉예정이다.
사진 정진환·글 김수경
△ 제니에게 시선 처리와 카메라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지훈 감독. 스탭들에게는 엄한, 배우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라고. (왼쪽 사진) △ 풍선이 내려오면 아이들은 즐거워하지만 촬영 뒤 비닐봉투에 담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 와중에도 반쯤은 고의로, 반쯤은 얼결에 풍선을 터트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오른쪽 사진)
△ 나란히 천장에 매달린 주노와 B카메라맨. 그넷줄과 와이어 사이가 가까워서 세팅할 때 스탭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
△ 왼쪽부터 차례로 터지는 천장의 풍선봉투. 눈처럼 내리는 풍선이 장관을 이루는 동안 짜여진 촬영동선에 따라 촬영팀, 와이어맨, 벌룬데코팀은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