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없는 자의 설움에서 시작해 보이지 않은 귀신의 호러로 가더니 <사랑과 영혼> 스타일로 방향을 튼다. 그러더니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다’라는 테마에 최종 귀착한다. <귀신이 산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나 체할까 걱정스러울 만큼 많은 이야기로 버무러져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김상진표 코미디다. 그렇지만 이전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욕설도 없고, 투박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단정하고 깔끔해졌다. 아마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에서 줄곧 호흡을 맞춰온 박정우 작가와 ‘헤어지고’ 만든 작품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김상진 감독은 “가족들이 유쾌하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이게 내 첫 번째 목표였다”고 한다. <귀신이 산다>는 그 목표에 부합하는 편안한 코미디이지만, 혹시 이건 ‘쌈마이’를 자처하며 코미디 장르의 외길을 뚝심있게 걸어온 김상진의 타협은 아닐까? 강우석 감독과 CJ엔터테인먼트의 협력과 갈등, 이를 둘러싼 제작가협회 등 제3자까지 한바탕 회오리를 일으켰던 터라 시네마서비스의 제작본부장이기도 한 그에게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다.
흥행 3연타를 쳤는데 이번에도 성공예감이 드나.
잘되지 않을까.(웃음)
원안과 많이 달라졌다고.
우선, 귀신을 보게 된다는 설정이 없었다. 그리고 연화(장서희)의 사연이 지금과 다르다. 연화가 남자랑 어렵게 살고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했는데 성공하는 순간 이 여자를 사주해 죽인다는, 치정극 비슷한 구도였다. 또 바닷가의 집도 아니고 아파트였다. 이상하잖나. 귀신이 아파트의 한집에서만 나오는 게. 소송도 걸렸다. 어떤 소설가가 호숫가의 집에서 벌어지는 내용의 자기 책과 비슷하다고. 휴∼, 귀신 나오는 거 찍으면 다 걸린다고 봐도 좋을 거다.
<광복절특사>로 그동안의 작품 흐름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쌈마이도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귀신이 산다>는 어디에 방점을 찍으려 한 건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세 작품을 비슷한 느낌으로 했으니까 좀 다르게 가야겠다고 한 거다. 가장 크게 보면 관객층의 개념이다. 앞의 세편은 좁게 갔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선 극단적으로 젊은 관객층이었다면, 30대로 좀 넓힌 게 <신라의 달밤>이다. <광복절특사>도 마찬가지로 20대 후반이나 30대까지 겨우 먹는 영화였다. 폭력적이고 욕도 많고 과격했으니까. 이번 영화는 아예 찍을 때부터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해야겠다고. 또 이야기의 진행도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하자고. 또 이전에는 영화적으로 거친 측면이 없지 않은데 정돈이 잘된 영화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관객층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꼭 넓혀야겠다기보다 내가 충격받았던 게, 아들이 지금 다섯살인데 <토이 스토리>하고 <몬스터 주식회사>를 비디오로 두고두고 본다. 100번도 더 보는 것 같다. 나도 열댓번은 본 것 같고. 그런데 보면서 새로운 부분이 있고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또 보면 재밌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우리나라에는 꼬맹이나 나나 같이 재밌게 볼 수 있고, 보면 볼수록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하고 싶었다. 덧붙이자면, 어떤 문제의식을 영화 속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경향이 요즘 너무 강한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과거를 다루는 게 유행이다. <실미도> <효자동 이발사> <살인의 추억> 등등. 좋은 영화들이지만 너무 강박적인 게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조폭마누라>, 그리고 그 다음해에 <가문의 영광>이 거듭 추석 시즌을 휩쓸었을 때,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 영화들이 왜 이렇게 잘됐는지 이해를 못했다. <조폭마누라>가 왜 잘됐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문제는 볼 게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석 때 가족과 함께 영화 한편 보러 극장에 나섰는데 별로 볼 게 없었다는 거다. 가족과 함께 편안히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이런 이유다. <슈퍼스타 감사용>이나 <꽃피는 봄이 오면>처럼 차분한 영화도 그래서 때맞춰 나온 게 아닐까.
그런데 데뷔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부터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어왔다. 코미디가 특정의 인물이든 사건이든 희화화하는 대상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풍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지 않나.그렇지. 은연중에 있지. 문제의식이라는 게, 끄집어내서 관객에게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게 있어야 하고, 그런 코드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걸 가지고 너무 누르거나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것일 뿐.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 김상진 특유의 투박함을 버리고 가면 감독의 개성을 기회비용처럼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가.
그건 이 영화의 특징적인 부분이지 그런 게 이후 영화에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이전 영화의 느낌들이 다시 들어갈 수 있다. 이 영화는 드라마 코드가 강할 수밖에 없다. 귀신의 사연, 차승원이 왜 그렇게 집을 가져야 하는지 등. 여기에 <주유소 습격사건>나 <신라의 달밤>의 코드를 넣으면 오히려 드라마도 안 살고 삐걱거릴 수 있어 코미디를 일부러 죽이면서 간 측면도 있다. 드라마에 맞는 적재적소의 코미디만 넣으려고 촬영하면서 많이 자제했다. 이전 영화의 맛이 좀 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상진 코미디의 변화에 대해 의견이 좀 갈린다. 분명한 건 갈수록 순해진다는 거다.
<빈 집>만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영화적 특성과 맛이 감독마다 다른 거지. 앞서 얘기했지만, 이번에 원래 있던 김상진의 맛을 죽이고 간 게 가족들이 편안히 볼 수 있도록 하느라 그랬다. 이게 타협이냐,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12세 관람가에 맞출 수 있도록 필터링을 무척 강하고 엄격하게 했다. 이건 감독의 선택이다. 내가 12세 관람가의 영화를 만든 적이 있나? 사실 <주유소 습격사건> 때만 해도 (평단으로부터) 얻어터지느라 정신없었고, 이후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등으로 이어지면서 김상진표 코미디라고 비로소 이야기들을 한 것이고, 이번에 또 다른 변화를 꾀한 건데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랴.
패싸움이든 아니든 일종의 집단극으로 막을 내리는 건 이번에도 비슷하다. 왜 꼭 모두 모여서 마무리시키나.
격정으로 치닫는 게 한국영화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인 점이 있다. 사람 수라는 물량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액션이나 코미디는 몹신으로 불리는 대규모 장면을 불러오는 게 장르적 특징이기도 하다. 감정적으로 봤을 때 쉬운 것도 있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오고 하나의 사건으로 마무리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갈등이 해소되는 것. 영화 내내 밑밥을 던져놓고 마지막에 극적으로 매듭짓는 것. 사실은 박정우 작가랑 안 하면서 제일 아쉬운 게 이 측면의 다른 이야기다. 박 작가가 정말 머리 좋은 게 연관된 이야기들을 잘 묶어놔서 탁 터뜨릴 수 있게 한다. 특히 조·단역의 등퇴장이나 쓰임새를 잘 활용한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는 묶어놓고 터뜨리는 게 이전 작품들보다 좀 약하다.
강우석 감독과 박정우 작가가 영화를 보고 뭐라 했을지 궁금하다.
박 작가는 그냥 재밌다고 했고, 강 감독은 여태까지 내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웃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 좀 웃었다고 한다.
어떤 대목에서.
손발이 바뀌는 것 같은 장면. 상상력이 이전과 다르다고. 조금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고.
영화의 매무새가 깔끔하다. CG가 워낙 매끄럽게 쓰여서 그런 인상이 더 강하다.
영화에 CG 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찍었다.
닭 스펙터클이 재밌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에는 사연이 있어 보이던데.
아내의 이야기다. 아내가 지금도 생닭을 못 만진다. 어렸을 때 큰집에 갔을 때 어른들이 이 영화처럼 목을 탁 쳐서 잡는데 살아서 펄펄 돌아다녔다는 거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특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의 어린 시절 기억에 그런 게 많더라.
닭들에게 정말 와이어 액션을 시켰나.출연시킨 닭이 모두 천 마리 정도 되고, 와이어로 매단 게 200마리 정도 됐다. 반복찍기로 해서 CG를 붙였다. 와이어를 일일이 하느라고 조명, 분장 등 모든 스탭이 달라붙었다. 그 닭장면이 원래 밤신이었는데 닭들이 밤에는 꼼짝달싹을 안 한다. 천 마리 갖다놔도 백 마리 같다. 털이 이만큼 있지만 자기들끼리 파고들고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낮신으로 바꾸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노출을 오버시켰다.
그런데 귀신을 볼 수 있게 되기 전과 후가 단절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급격히 변하는 건 아닐까.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간 거다. 귀신을 보게 되면 안 무서우니까. 그리고 보기 전후의 사연을 구구절절 말하면 힘이 떨어질 테고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악덕 부동산업자가 나오는데 좀 도식적이지 않았나 싶다.
좀 그런 게 있지. 도덕교과서 같은. 어떡하나 악역의 필요성 때문에 넣은 건데. 이 영화는 굉장히 계산적으로 간 영화다. 물론 필기(차승원)가 시달리는 장면이 좀 길다는 평가가 있긴 한데, 왜 집이 필요했는지, 집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귀신과 어떻게 교감하게 됐는지 등 과학적이라고 하면 좀 오버지만 굉장히 계산하고 간 거다. (귀신과 사람이) 교감을 했으니까 뭔가 맞서 싸우는 대상이 필요했다.
코미디로 칸영화제에 가겠다고 한 적도 있는데, 코미디 감독으로서 걸고 싶은 승부의 끝은 무엇인지.
칸 가야지. (웃음)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코미디를 하고 싶다. 다음 영화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광주학생운동, 흔히 댕기머리사건이라고 하는 걸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무게있는 이야기이지만 코미디로 풀어보려고 한다. 이제는 캐릭터코미디가 아닌 인간적인 걸 많이 건드리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1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CJ에 지분 일부를 넘기게 됐으니) 강우석 감독과 시네마서비스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진 않는다. 시네마서비스의 제작본부장으로서 김상진 감독의 향후 역할은.
강우석 감독이 주로 하던 투자심의를 장윤현 감독과 나, 김정상 사장 등에게 많이 맡기는 편이다. 사실 그동안 강 감독 혼자서 많이 해왔다. 강우석과 김상진으로 대표되는 색깔의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데 흥행이 안 돼서 그렇지 다른 종류의 영화도 많이 만들고 있다. 문호를 더 많이 개방하려고 한다. 쉽게 말하면, 패밀리 개념의 영화를 하다보니 강 감독 혼자 투자를 결정하고 만들어온 측면이 있는데 이제는 좋은 영화를 골라내고 배치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한 패밀리 개념을 개선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