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영화를 절대평가한다는 게 불가능해졌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를 재밌게 본 건, <씨네21> 안팎을 통틀어 내 주변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심지어 <조폭마누라>를 너무 재밌게 봤고 <가문의 영광>이 딱 자기 취향이라던 후배 녀석조차 <여친소>를 ‘증오’했다. 자진해서 왕따되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겨레21>의 영화기자 시절에 <긴급조치 19호>를 무척 좋게 봤고, 마침 <한겨레> 영화담당 선배와 취향이 맞아떨어져 의기투합형 기사를 나란히 쓴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다른 영화기자들이 농반진반 ‘한겨레 긴급조치 사태’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물론 이들 영화와 그 어떤 근친 관계도 없다. 난 <긴급조치 19호>를 제작한 서세원을 혐오하는 쪽이고, <여친소>의 곽재용 감독의 전작들을 싫어하는 쪽이다. 특히 <클래식> 때는 뒤로 갈수록 끔찍했던 기억이 새롭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때 나에게는 특정한 가치로 꿈틀거리는 어떤 기억과 학습 효과가 작용했던 것 같다. <여친소>에서 그 기억은 X재팬의 발라드였고, 학습 효과는 엽기적인 그녀의 완성을 본 데 있었다(엽기적인 언니들이 주름잡는 세상이 좀더 나은 미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된 학습 효과 말이다). 전지현이 처음으로 바람이 되어 돌아온 남자의 숨결을 느끼던 그 방 안의, 그 뻔한 360도 트래킹! 그런데 그 순간 BGM으로 깔리던 X재팬의 발라드가 아주 사적인 기억을 건드렸고, 난 그 어이없는 장면에 뭉클해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것으로 <여친소>가 좋았다고 감히 고백할 수 없다. 전지현이 새로운 남자와 마주쳐 활짝 미소짓던 마지막 순간, 엽기적인 그녀가 자신을 결정적으로 구속하던 순정의 사슬을 마침내 집어던졌다는 통쾌감이 밀려왔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를 통제 불가능의 여성인 것처럼 ‘위장’시켰던 것이, 어이없게도 한 남자에 대한 순정이 아니었던가.
<긴급조치 19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음악계가 군홧발 취향에 유린당했다는 공적인 기억과 비록 영화 속이긴 하나 가수 김장훈이 청와대 실세를 통쾌하게 엿먹이는 장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학습 효과가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게다가 약간 어설픈 영화의 만듦새가 소박한 맛까지 줬다(고 여겨졌다). 이들 두 영화를 놓고 완성도를 따질 생각은 당시나 지금이나 애당초 없다. 그래야 할 영화는 따로 있으니까. 나에겐 그럴 듯한 개성만으로 족한 영화들이 있다.
개인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특정한 기억들과 학습 효과의 합은 결국 내가 살아온 흔적이다. 그 흔적을 굳이 양보할 생각도, 강요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난 <조폭마누라>를 재밌게 봤다는 300만의 이웃들과 신경질나서 함께 살 수 없고, 한주에 서너편의 영화를 보고 각각의 기사의 크기와 종류를 결정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영화를 향유하고 존중해낼 방편이 없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만족감과 경이감을 안겨줬던 이마무라 쇼헤이나 로베르 브레송,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은 다른 차원에서 존중해야 할 나만의 보물상자에 넣어둘 뿐이다. 그들 영화의 가치로 다른 영화를 재어보는 건 폭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