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시간째인데 요상스레 지루하지가
않다. 싫증을 내고 가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오히려 듣는 이가 조바심을 낼 정도로 구성연(31)은 재미난 말솜씨의 소유자다. 가끔씩 섞어쓰는
문어체 말투도 신선하고, 내뱉기 전 한번쯤 뜸들여 기대를 부풀리게 하는 것도 선수다. ‘인디포럼 2001’ 개막작인 김지현 감독의 <바다가
육지라면>을 본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감’잡았을 듯.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어눌하게 ‘계룡산식’ 라면 조리법을 설파하는 그를 보고서,
저 사람은 정말 저렇게 라면을 끓여먹나보다 했던 것도 다 그런 말재주 덕분이다. “우하하하…. 사실 그 장면에서 전 설명서대로 정확히 끓인다고
했어야 하는데…. 어찌나 부끄럼을 탔는지 슛만 가면 어…버버버 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 감독이 긴장풀 때까지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라고 해서
헛소리한 건데 그게 그만….”
그는 <연애에 관하여>등 김지현감독의 전작(全作) 4편에 모두 출연한 ‘전속’배우다. 혹시 끼가 철철 넘쳐서 감독이 아끼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는 단지 “친분 때문에 사소하게
이것저것 도와주다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89학번이었고, 김지현 감독이 같은 대학 불교학과 87학번으로 학교뿐
아니라 같은 동아리 선후배 사이. “그때는 데모 안 하는 애들이 없었어요. 그냥 쫙 거리로 나갔잖아요. 너무 하부세포여서 조직명은 모르겠고,
김지현 감독을 처음 본 게 아마 그 무렵인 것 같네요.” 오래 본 친구였으니, 모든 걸 다 받아줄 사이 아닌가 하지만, 감독과 배우로 만난
둘은 개와 고양이마냥 으르렁대기도 자주 했다. <연애에 관하여>만 하더라도 배우가 교체된 것만 세번이고, 2년 가까이 찍었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사실 제가 배우도 아니잖아요. 말랑말랑하게 이 정도면 되겠지 했는데, 감독이 몇번씩 면박을 주는 거예요. 도가 지나치게. 왕무시하는
것 같아 일방적으로 화내고 나가버린 적도 있어요.”
자신의 말대로 그의 직업은 배우가 아니라
사진작가다. 그가 찍는 대상은 거친 풍랑이나 인물의 내면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요리’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소나무만 찍는 사람이
있듯이, 내 눈엔 토마토나 감자나 국수가 되게 예뻐보이는 것이니까요.” 그중에서도 사발에 봉분 모양으로 눌러 담은 밥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가장 찍기 어렵기도 해요. 사람들은 원래 밥을 흰색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진을 찍어놓으면 어떻게든 어두운 부분이 생기거든요.
그런 질감이나 색감을 적절히 조절하는 게 쉽지 않지요.” 처음부터 사진작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하고 관광차 파리에 갔을
때, 고장난 카메라 때문에 고생한 그는 돌아가면 꼭 카메라 수리공이 되기로 맘먹었다. “남들은 엉뚱하다고 하지만 그건 절실한 문제였어요. 기술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그게 없어 여행을 망치다니 말이 되나요?” 사설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아 종로의 카메라점을 기웃거렸지만 “여자는 노”라는
이해못할 이유를 대는 주인들 때문에 결국 95년 서울예대 사진과에 입학했다. “학교에도 그런 과목은 없더라고요. 죽은 것을 살리는 의술처럼
느껴져서 매력이 있었는데, 요즘 카메라는 부품만 달랑 하나 바꿔끼면 된다는 말 듣고 꿈을 접었죠.”
어쨌든 사진을 배운 덕에 충무로 구경도
해봤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찍으면서 연을 맺었던 김영철 촬영감독의 소개로 <강원도의 힘>의 현장 스틸을 맡게 된 것.
극중 상권(백종학)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주인으로도 출연했다. “뒷모습만 나와서 그렇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지난해에 이어
오는 7월21일 을지로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 ‘돌멩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두 번째 요리 사진전을 여는 그가 좋아하는 감독은 우디 앨런.
최근 “외로운 사람들을 짝지어주는 사회복지사업(?)도 겸하고 있다”며, 생각있으면 언제든 연락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작업실이 있는 돈암동으로
향했다. 글 이영진 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