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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칼진 근대인의 불안, <트로이>

건달, 그리스와 신이 사라진 <트로이>를 보고 근대인의 히스테리를 읽다

고대 그리스인은 왜 그리 많은 신들을 발명했을까? 그 속내를 알 순 없지만 민주주의를 발명한 사람들이니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유일신은 독과점의 안락함에 빠져 천상에 가부좌를 틀고 인간세계를 가만히 구경만 할 것이다. ‘주여 이제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고 간청해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니가 와라 천상으로’라고 심드렁하게 한마디할 것이다. 그러나, 벤처기업 허가해주듯 되도록 많은 신을 만들면 인간 세상을 선점하려는 경쟁심 때문에 앞다투어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다. 인간이 옆으로 밀어놓은 존재론적 문제의 해법을 저마다의 신상품으로 들고…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지상에서 열심히 판촉 하는 자유시장의 신을 느긋이 지켜보는 인간의 자리가.

그리스인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슬쩍 신의 세계로 돌려놓는 외교술을 알았다. 천둥의 신 제우스? 천둥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니 그건 제우스의 변덕이다. 바다의 풍랑도 언제 돌발할지 모르니 포세이돈의 심술이다. 예쁜 여자를 보면 왜 인간이 정신이 나가는지 설명이 안 되니 미는 아프로디테의 소관이다. 어디 그뿐인가? 질투, 증오, 애착, 복수심 등등의 인간 감정은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신들의 장난질이다. 그러니, 인간은 신들이 장난에 권태를 느껴 인간 감정의 파노라마를 중단할 때까지 거기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책임은 신들의 몫이다.

그리스인은 죽음, 육체, 감정, 아름다움 등 불가해한 삶의 조건에서 신의 그림자를 찾았지만 숭배하지는 않았다. 신은 인간세상의 불화를 책임지는 해결사이거나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일 뿐이었다. 그리스인은 신들에게 감정을 억압당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간은 감정의 격류에 몸을 맡기고도 그 결과에 대한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니체는 이 상태를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아폴론적 환각이 공존하는 세계로 찬미했다. 기독교를 아폴론적 환각의 편집증으로 봤던 니체에게 근대는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결핍된 불구였다. 그에게 근대의 치료제는 내 육체 안에 기거하는 변덕스런 디오니소스에게 있었다.

<트로이>에는 그리스도 디오니소스도 없다. <트로이>는 만족을 모르는 앙칼진 근대인의 불안과 히스테리가 순진한 고대인의 자족을 질투한다. <트로이>에서 그리스의 신들은 다 거세되고 두명의 잘난 근대인만 도드라진다. 헥토르는 “아폴론이 활을 쏘느냐”며 무능한 그리스 신들을 부정하는 실용주의자다. 또, “사랑하는 여자와 자식을 위해 전장에 나가는 단순한 원칙”을 가졌으며, 제수인 천하절색 헬레네가 품에 안겨도 실수하지 않는 이성적인 가부장이다. 그는 근대를 지탱하는 이성주의, 과학주의, 가족주의, 국가주의 등등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구현한다. 아킬레스는 더 급진적으로 신을 부정해서 신전을 약탈하고 성상을 칼로 파괴한다. 그는 신에 대한 숭배 대신 인간의 손으로 만든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진정한 근대인이다. 역사를 위한 순교라는 미학적 이미지에 도착된 그는 살육을 통해 권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존재를 유지할 수 없는 근대의 파시스트 같다. 그런데, 그를 구원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여자다. 아킬레스는 ‘역사’를 포기하고 철수하려다 한 여자 때문에 트로이에 남게 된다. 사제인 그녀는 변덕스런 그리스의 신들 같지 않고 어쩐지 헌신적인 성모 마리아 같다. 아킬레스는 결국 마리아를 위해 순교한다. 기묘한 반전이다. 모든 근대성의 징후들을 강고한 헤브라이즘의 강보 속에 쓸어담으려는 이 엄청난 식욕. 이게 미국이란 나라가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트로이>에는 그리스는 없고 미국만 있다. 정작 아킬레스의 신화가 들려주는 진짜 중요한 그리스적 은유는 빠져 있다. 아킬레스의 의미는 헥토르가 아니라 파리스와의 관계 속에 있다. 아킬레스의 아폴론적 환각의 급소가 연애밖에 모르는 파리스가 날린 단 한발의 에로스의 화살에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고 아킬레스를 죽이는 건 파리스다. 어쩌면, 헥토르와 아킬레스라는 국가주의의 영웅들은 파리스의 연애담에 동원된 액션 엑스트라일지도 모른다. 파리스가 살아 있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국가, 민족, 역사라고 소리치는 시간에 주변사람들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세계가 평화로울 텐데….

남재일/ 고려대 강사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