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동래구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 정문에서부터 건물 몇채가 겹겹이 서 있을 만큼 교정이 크다. 그러나 <우리 형> 촬영장소는 이 넓은 교정의 맨 뒤 구석. 작은 창고 하나가 나무들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 좁은 공터 안에 배우와 스탭들이 몰려 들어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모니터 및 사운드 장비가 놓여 있다. 이제 종현(원빈)과 쫄바지(김태욱)가 미령이란 여학생 때문에 한판 뜰 참이다. 영화에서 몇번 없는 액션신인데다 정확히 동작을 계산하지 않는 ‘막싸움’이다보니 신재명 무술감독이 특히 긴장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작업했던 그는 이런 ‘막싸움’을 지도할 때마다 행여 누가 다칠까 노심초사하느라 “피가 마른다”고 한다. 이런 순간에 서울에서 몰려든 취재진들 때문에 슛 들어갈 찰나를 놓친 스탭들. 어수선한 공기를 가까스로 정리하고 누군가 외친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그 순간 이 흘러나온다. 교정 스피커에서다. “6교시 마치는 시간입니다.” 현장은 다시 맥이 풀린다.
수업종뿐 아니라 쉬는 시간마다 구경 나오는 학생들. 이 ‘정기적’인 장애물들 앞에서 집중력 있는 촬영이 어려울 법도 한데, 스탭들은 일사불란하다. 숫기 많아 보이는 안권태 감독의 세심한 눈과 유한 목소리가 현장을 정확히 움직이게 하는 힘 같다. 신재명 무술감독이 신하균에게 “아주 미세한 차이긴 한데…”라며 김태욱에게 덤벼드는 동작을 설명하는 동안 안권태 감독은 창고 뒤편으로 돌아가 엑스트라들에게 감정 연기를 지시한다. “거기서 너희들이 응원하는 것처럼 ‘밟아라, 밟아!’ 이러면 안 된다고. 종현이랑 상현이는 둘이 형제잖아. 그 형제의 형이 쫄바지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건데, 그렇게 처절하진 않더라도 ‘밟아라, 밟아’ 이 말은 안 나올 거 같애.” 부산 사투리로 1∼2분가량의 자상한 지시를 끝내자 다시 슛. 엑스트라들은, 자신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신하균을 사정없이 밟아대는 김태욱에게 아까완 다른 대사를 던진다. “야야, 고마해라. 아 죽겠다.” “그래, 진짜로 아 죽것네.”
<우리 형>은 홀어머니를 모시는 성격 다른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편부 밑에서 여동생을 두고 자란 감독이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을 담아 쓰고 연출하는 첫 작품. 신하균은 성실하고 소극적인 형 상현을, 원빈은 말썽 많고 외향적인 동생 종현을 연기한다. 둘 사이에서 러브 트라이앵글을 만들어낼 여학생 미령은 신인 이보영이 맡았고 이날 촬영분량엔 출연하지 않았다. 소재에 어울리게 <우리 형>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 추석에 개봉할 예정이다. 제작은 곽경택 감독의 제작사 진인사필름, 투자 및 배급은 CJ엔터테인먼트다.사진 오계옥·글 박혜명
△ 싸움을 할 줄 모르는 형은 동생이 맞는 것을 보고 막무가내로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된통 당한다. 결국 싸움을 종결짓는 건 동생. 형에게 윽박지른다. “니는 와 낑가드노?” (왼쪽 사진) △ “늬들은 뭐꼬? 구경났나? 꺼지라!” 구경하던 친구들을 윽박질러 쫓아낸 뒤, 동생은 꼴이 엉망이 된 형을 일으켜 세운다. (오른쪽 사진)
△ 신하균과 원빈은 <킬러들의 수다> 이후 두 번째 만나는 사이. 둘다 조용한 성격이라 현장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래도 신하균은 원빈의 말수가 이전보다 많아졌다 하고, 원빈은 신하균이 친형처럼 편한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왼쪽 사진) △ 시나리오가 좋아서 이 작품을 택했다는 신하균은 “상업적으로 안타까움이 많은 배우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기자의 몹시 예민한 질문에, “나도 사람이다보니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기분이 좋고 하지만, 모든 것이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솔직하고도 여유있는 대답으로 응수했다. (오른쪽 사진)
△ 원빈은 드라마 <꼭지> 때 연기가 즐겁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때 남은 애착으로 이 작품을 택했다고 밝혔다. “동생의 이미지가 강하고 본인도 계속 그런 역할만 맡는다”고 누군가 지적하자 “실제로도 막내로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아직까진 동생 역할에 더 많이 끌린다”고 말한다. (왼쪽 사진) △ <친구> <똥개>에서 이미 과격한 액션신을 체험한 김태욱은 리허설과 슛의 액션 강도차가 상당히 크다. 슛 직전 원빈과 친근하고 조용하게 액션의 합을 맞춰본 그는, 막상 슛이 들어가면 사정없이 발길질을 날린다. 아래 누운 사람은 신재명 무술감독. (가운데 사진) △ 안권태 감독에게 영화를 부산에서 찍는 이유를 묻자 “시나리오를 표준말 버전으로도 써봤는데, 부산 사투리는 굉장히 함축적인 표현이 많은데 그걸 다 풀어쓰니까 문장이 너무 길어지더라”고 한다. 이어 “제가 부산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부산이 너무 좋고, 바다도 너무 좋아하고… 그리고 저 해군 나왔거든요”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