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인 중림동 약현성당은 첫사랑을 추억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장소였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점토로 만든 액자, 경건한 제단이 감싸주었던 첫사랑. 지니(김선아)는 스무살에 처음 좋아한 남자 구현(이현우)을 이 성당과 함께 떠올린다. 5월10일 현장을 공개한 〈S 다이어리〉는 이날 지니가 몰래 구현의 가방에 자기 목걸이와 같은 모양의 마스코트가 달린 휴대폰 줄을 매다는 장면을 촬영했다. 뚜벅뚜벅 걸어다니기만 했던 이현우와 달리 김선아의 촬영은 매우 고됐다. 구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릎으로 성당 바닥을 기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릎 부분에 천을 대고 촬영을 마친 김선아는 세 남자를 거치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지난 연애를 떠올렸고, 내가 추억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S 다이어리〉는 2002년 싸이더스HQ 시놉시스 공모전에서 <전도연의 섹스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수상한 시놉시스가 원안인 영화다. 스물아홉의 출판사 직원 지니는 뭐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버릇이 있다. 네 번째 실연을 당하고 “예전에 만났던 남자들이 널 정말 사랑했는지 물어보라”는 수모까지 받은 지니. 그녀는 섹스를 비롯한 모든 걸 적어둔 다이어리를 바탕으로 성가대 지휘자였던 대학생 구현, 삼수한 대학선배 정석, 한참 어린 만화가지망생 유인을 차례로 찾아가고, 복수를 결심한다. 〈S 다이어리〉를 연출하는 사람은 이 영화로 데뷔하는 권종관 감독. 남자로 살아가는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단편 <이발소 이씨>로 주목받은 그는 “여성의 심리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지니가 영화 대부분을 책임지는 〈S 다이어리〉를 연출하는 심정을 밝혔다. 개봉은 8월 말에서 9월 초. 김수로가 절약정신이 엄청난 복학생 정석으로, 공유가 엄마에게 쥐어사는 철부지 유인으로 출연한다.
사진 정진환·글 김현정
△ 지니는 뭐든 커플을 좋아한다. 첫사랑을 시작할 때 이미 커플 마스코트를 장만했던 그녀는 두고두고 커플티와 커플 반지 등에 집착하게 된다.
△ 이현우는 인터넷영화 <메이>를 제외하면 영화 출연이 처음이다.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도 출연 중인 그는 “드라마 촬영은 붕어빵 같고, 영화 촬영은 도자기 굽는 일 같다”고 서로 다른 속도감을 묘사했다. (왼쪽 사진) △ 맨무릎으로 기다 못해 무릎보호대를 만들고 있는 김선아. 출연분량도 많고 뛰는 장면도 많아 얼마 전에는 촬영을 쉬어야 할 정도로 몸이 아프기도 했다. (가운데 사진)
△ 권종관 감독은 가방에 휴대폰 줄을 매다는 짧은 장면도 세심하게 지도했다. 누가 볼까 두근거리는 소녀의 첫사랑과 바쁘게 휴대폰 줄을 다는 손길까지 세심하게 체크하느라 한컷을 한 시간 동안 찍기도 했다. (왼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