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산43번지. 이곳에 거제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의 근사한 하얀 집이 있다.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의 귀신 ‘연화’의 거주지이기도 하다. “장서희씨, 오늘 고생 좀 하시겠습니다.” 김상진 감독이 분장을 하는 연화 역을 맡은 장서희에게 각오 단단히 하라고 겁을 주는 동안 무술팀은 지붕 위에서 부산을 떨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필기(차승원)의 등 뒤에서 연화가 거꾸로 매달려 쓱 내려와 놀래키는 장면이 이날 촬영 분량. 얼마만큼의 와이어를 내려뜨려야 적절한지 체크가 끝나자 제작진은 서둘러 촬영에 돌입한다.
하지만 맘처럼 촬영은 쉽지 않다. 와이어를 내리는 구멍이 너무 좁아서 NG. 제작부, 조명부 할 것 없이 지붕 위에서 재차 톱질을 하는 특수효과팀을 돕는 데 달라붙는다. 아침 7시부터 50여 컷을 찍은 강행군. 모두들 기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농담과 웃음을 피로회복제 삼아 버텨낸다. “이번에는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촬영이 수차례 반복되자 와이어에 매달린 장서희의 얼굴은 새빨개지고 호흡은 가빠진다. 여기서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는 차승원이 “니가 박쥐니? 자꾸 그러면 너만 힘들어”라는 대사에 “너 지금 얼굴 시뻘겋잖아”라는 애드리브를 더해 좌중을 웃음바다에 빠뜨린다. “감독님, 귀신인데 얼굴이 빨개지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조감독의 걱정스런 질문에 김상진 감독은 “괜찮아. 이제는 이 영화 공포라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잖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귀신이 산다>는 공포코미디이지만,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등을 만들어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감안하면 ‘코미디’에 무게가 실릴 것은 분명하다. 김상진 감독은 “진짜 공포영화라니까 정말 사람 말 안 믿네”라고 능청을 떨지만 말이다. <귀신이 산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집 한채 갖는 것이 소원인 청년 박필기가 헐값에 집을 구하지만, 이곳에는 이연화라는 한 맺힌 귀신이 살고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 여자친구인 수경(손태영)과 함께 집을 사수하려는 박필기와 이들을 어떻게든 몰아내려는 이연화가 대결을 벌인다는 내용. 필기의 환상장면에 등장할 1천 마리의 닭들 중 200마리에는 와이어를 매달 것이라는 감독의 호언에서 엿볼 수 있듯 이번 영화 또한 만화적인 상황들을 곳곳에 포진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상진-차승원 콤비의 호흡도 기대되는 부분. 추석 개봉예정이다.
거제=사진 임민철·글 김수경
△ 거실에서 처음으로 보여주는 연화의 ‘박쥐’ 버전 와이어액션, 높이가 괜찮냐고 묻는 김상진 감독에게 장서희 왈, “아이, 그냥 슛 빨리 가요”. (왼쪽 사진) △ 누워서 받는 연기지도. 이렇게 편안한 준비과정과 달리 박쥐처럼 매달리면 1∼2분을 버티기도 힘들다. (가운데 사진) △ 낮촬영 내내 열혈처녀 수경(손태영)에게 시달리는 ‘매맞는 남자’ 필기(차승원). (오른쪽 사진)
△ 원본인 <링>을 능가하는 열연을 보여준 박영규. CG로 합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왼쪽 사진) △ 연화에게 더 적극적인 액션을 주문하는 김상진 감독.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