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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 감독 임찬상

어처구니없는 역사, 거짓말 같아도 좋겠다 싶었다

“운이 좋았죠. 제 생각엔 올해쯤 돼야 촬영 들어갈 거 같았거든요.” <효자동 이발사>로 데뷔한 임찬상(35) 감독은 지난해 <효자동 이발사> 촬영을 마치고 올해 개봉을 하게 된 사실 자체를 행운으로 여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지난해 시나리오가 나오자마자 송강호가 캐스팅되면서 <효자동 이발사>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완성됐다. 시나리오가 나오고 1∼2년 지나야 캐스팅이 되는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운이 따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운으로 돌린다면 그것도 섭섭한 일이다. <효자동 이발사>는 ‘박정희 시대를 거친 아버지 세대에 대한 소박한 위로’라는 자기 목표만은 기어이 이루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느껴지듯 임찬상 감독은 영화적 야심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인물이라기보다 소박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농담을 던지거나 질문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빠지는 일 없이 그는 오랜 시간 혼자 고민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하류인생> 예고편에서 보여준 과거 장면에 비하면 <효자동 이발사>의 과거 장면은 너무 허술하죠”라며 자기 영화의 약점에 대한 말도 스스럼없이 건넨다. 그는 연세대 영문과를 나와 1년간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영화아카데미 13기로 영화에 입문했다.

<효자동 이발사>는 시대에 대한 고발과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아버지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영화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고발은 아버지상을 그리는 데 비해 중요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현대사를 매우 우회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약점을 충분히 인지했을 텐데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로 너무 기울면 재미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영화라는 게 허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생각을 할 텐데 재미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역사적 사실에 치우친다면 의미가 강해질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배치했는데 재미있게 보다가 다 보고나서 의미도 있다고 느꼈으면 싶었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무장공비들이 설사를 하고 그것이 전염병으로 간주된다는 설정이다. 꽤나 엉뚱한 발상인데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가 있나.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간첩단 사건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나중에 커서도 이런 간첩단 사건이 정치적 이유로 조작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믿기 힘들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싶었다. 그게 조작된 사건이라는 사실 자체가 허구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내가 1969년생인데 김신조와 무장공비가 내려왔던 1·21 사태만 해도 말로만 전해들으면서 마치 <전설의 고향>의 한 토막처럼 느꼈다. 실제 역사가 허구처럼 보이니까 설사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중간에 포기할까, 한 적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이런 설정을 만드느라 그랬던 건가.

맞다. 아주 직설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아들 낙안이 대학생이 돼서 학생운동했다고 고문당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렇게 전개하고 보니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다시 쓰나 고민하다가 설사를 한다는 아이디어를 넣으면서 이야기가 풀렸다.

낙안이 전기고문을 받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고문을 하는 사람도 어린애 말투이고 고문을 받는 낙안은 계속 웃는다.

우화적인 톤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관객이 어린아이를 고문하는 장면을 어떻게 볼지도 생각 안 할 수 없었고. 찍기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부담이 많이 됐는데 아쉬움도 많다. 미술적인 부분이 잘 살았으면 개성적인 장면이 됐을 텐데, 낙안이와 고문요원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편안하게 보다가 시대의 진실을 부드럽게 공감하고 각성하길 원했는데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영화를 보면 송강호가 아니면 곤란한 영화였다는 느낌이 든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존재감과 다소 무게가 없어 보이는 그의 이미지가 적절히 어울린 영화다. 그동안 송강호의 캐릭터를 보면 이번 영화가 보기 드물게 내지르는 연기를 한 작품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송강호의 연기관이 바뀐 건 아니다. 휴먼스토리라는 점 때문에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필요했다. 영화의 앞부분은 재미있고 뒷부분은 슬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전반부에는 무게있는 연기가 필요없었고 편안하게 동화돼서 보다가 인물의 진실과 만났으면 했다. 찍으면서 가볍게도 찍고, 무겁게도 찍고 그랬다. 넘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코미디를 수용했고.

송강호의 연기관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감정을 직접적으로 강하게 표현하기보다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연기를 많이 한다. 낙안이 불구가 돼서 돌아왔을 때 성한모가 울부짖는 장면도 두 가지 가능성을 갖고 찍었다. 소리를 지르며 포효하는 아버지, 그런 상황에서도 소심함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 그렇게 두 가지였는데 결국 약간 감정을 누르는 연기를 했다.

하긴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설경구가 했으면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

설경구 연기를 잘 알진 못하지만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어머니로 나온 문소리의 비중이 매우 작다. 시나리오부터 그랬겠지만 어머니의 비중이 너무 작다는 게 치명적인 결함처럼 보인다. 어머니까지 들어오면 이야기가 분산된다고 봤던 것인가.

한 작품에서 모든 걸 담을 순 없다. 어머니의 비중을 늘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촬영할 때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막상 다 찍고 나니까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촬영 때는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의 비중이 작긴 하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성한모가 미처 표현 못하는 감정을 대신 보여주기 때문에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낙안이의 다리를 잡고 울부짖는 장면 같은 경우도 성한모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윤주상, 정규수, 손병호, 오달수 등 연극쪽에 경험이 많은 배우들을 기용했다. 대통령으로 나온 인물도 낯선 배우다. 캐스팅의 원칙으로 연극계에서 기용하자는 생각을 한 건가.

60∼70년대 분위기를 만들자면 다소 낯선 배우들이 나오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분들이 연극에서 쌓은 경험을 잘 활용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대통령으로 나온 조영진은 예전에 그가 출연한 연극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어 캐스팅했다. 연희단거리패 배우인데 <시골선비 조남영>이라는 작품에서 아주 꼿꼿한 선비 말투로 연기를 했다. 주위에서 괜찮은 캐스팅이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효자동 이발사>를 보면서 <포레스트 검프> <인생은 아름다워> <자전거 도둑>, 3편의 영화가 연상됐다.

<인생은 아름다워>랑 비슷한 점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서 <효자동 이발사>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도 맞다. 우디 앨런의 <젤리그>도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한데 가공의 인물이 역사의 현장에 끼어드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푸줏간 소년>이나 <귀신이 온다>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푸줏간 소년>에 나오는 부자 관계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도 염두에 뒀던 부분이다. 이런 말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대중화시키기엔 <푸줏간 소년>은 너무 진실에 접근한 것처럼 보였다.

판타지나 우화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나.

그렇진 않다. 기본적으로 판타지는 내 취향이 아니다. 어떤 스타일을 정해놓고 만들겠다는 생각도 없다. 습작할 때 쓴 시나리오를 보면 스릴러, 코미디 등 다양하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쓰는 거지 판타지나 우화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회사에 다니다 영화를 시작했는데 선택의 고비가 언제였나? 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가 있을 텐데.

회사 다니기 전부터 영화를 하고 싶어서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집에서 반대해서 못 갔다. 그런 다음 회사에 들어갔는데 1년 지나고 나니까 1년 전에 했던 업무를 다시 반복하게 되더라. 아, 이렇게 반복되는구나,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는 얘기구나, 했다.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딱 1년 지나서 그만두고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물론 회사 다니면서도 민예총에서 하는 영화강의를 듣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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