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할까?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대표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할 수 있을까. 내내 고민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명도를 확인하는 작업은 그다지 실속없을 것 같다. <이웃의 토토로> <붉은 돼지> 등 그의 애니메이션들은 국내에서 재패니메이션과 동일어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감독이 원작을 쓴, 어느 견지에선 미야자키 감독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1호’로 부르기에 적당한 작품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한마디로, 걸작이다. 따로 설명할 방법을 찾기 곤혹스럽다. 이후 미야자키 감독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스타일과 세계관, 그리고 주제의식이 한데 뭉쳐서 한편의 애니메이션에 응축되어 있다고 하면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해석이 분분해지고, 때로 모호한 신비감이 감도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이다. 원작에서 미야자키는 일본 전래동화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이 <벌레를 사랑한 공주>로, 중세 시대의 귀족이 곤충에게 강하게 집착하는 와중에 혼례마저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줄거리다. 여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서구식 영웅담을 가미했다. 근육이 멋진 남성? 아니다. 순수하고 순결하기 그지없으며 타인을 위해 목숨마저 내바치는 여성이다. 이 가녀린 소녀가 상영 시간 내내 스크린 속을 휘젓고 배회한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관객은 흠짓 놀라게 된다. 타인의 모든 것, 즉 ‘약점’까지 보듬어 사랑하라. 나우시카가 주는 교훈은 하찮은 것이지만,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기 때문이다. 작은 비행선에 몸을 의지한 채 나우시카는 공중을 부유하고, 괴상하게 생긴 벌레들과 소근거리며 어리석은 인간들을 이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히 개인적이면서 몽환적인, 동시에 격한 울림을 자아내는 판타지 세계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에 달한 것 같다. 긴장감과 웃음을 유발하는 벌레들과 마을 함대의 추격전, 그리고 나우시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향한 꿈에 이르기까지. 이는 1980년대 이후 재패니메이션이 ‘일본적 스펙터클’에 집착하는 현상과 묘하게 맞물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감독 개인의 사사로운 판타지를 그려낸 작품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아갈 길을 앞서 제시하는 역할도 한 것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둘러싼 논쟁도 흥미롭다. 일본과 서양의 평자들은 이 작품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첨부한 바 있는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극우 보수주의의 움직임을 읽는 이로부터 좌익 편향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참조할 만한 해석은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첨부한 것으로, 그는 “세계대전 시대, 일본 군대의 가미가제 정신을 영상으로 옮긴 애니메이션”이라는 극언을 한 바 있다. 같은 애니메이션이, 환경적 메시지로부터 반전영화, 신화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시선으로 독해 가능하다는 점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미야자키 감독이 자신의 열정과 신념으로 초지일관한 작품이라는 점을 확신하게끔 한다. 한 가지 더. 그렇다면 이렇듯 외견상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성인관객이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보호’의 모티브가 그들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탓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천공의 성 라퓨타>)와 자연(<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정령(<이웃의 토토로>), 이처럼 힘없고 여린 존재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한다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들려주는, 늘 같은 이야기의 익숙한 변주다. 그 목소리엔 듣는 이가 귀를 막을 수 없도록 하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email protected]
박스/ 캐릭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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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시카/ “푸른 옷을 입고 황금의 들판에 서서 잃어버린 대지와의 끈을 잇고 사람들을 푸른 청정의 땅으로 인도할지니” 나우시카는 이러한 전설을 현실로 만들어낼 인물. 파괴된 자연이 스스로를 복원해내는 재생의 비밀을 알아내고,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간들에 맞서는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감독의 대표적 캐릭터다. 힘보다는 타인과 대화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희생정신을 겸비한 나우시카는 완벽한 ‘여신’의 이미지로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우시카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이 좋아하는 존 카사베츠 감독 영화 <글로리아>(1980)에서 지나 롤랜드의 배역을 유심히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유파/ 부해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하며 바람계곡의 전설에 내려오는 구원자를 찾도록 운명지워진 인물. 나우시카의 아버지를 대신해 바람계곡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낸다. 검술에 능하며 나우시카에겐 아버지에 버금가는 존재.
아스벨/ 페지테의 왕자. 여동생인 라스텔이 토르메키아군에 인질로 잡혀간 뒤 복수를 다짐한다. 작은 비행정으로 토르메키아 군대에 저항하는 무모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도 비행정을 다루는 솜씨가 익숙하며 나우시카와 우정을 나누는 사이. 비슷한 캐릭터가 미야자키 감독 이후 작품에 곧잘 나오곤 한다.
노파/ 바람계곡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할머니. 앞을 못 보지만 뛰어난 예지능력을 지니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구원자의 전설을 자주 들려주곤 하는데 이후 그 구원자를 직접 만나기에 이른다. 바로 나우시카.
거신병/ 산업문명이 창조한 거대한 병기. 지구종말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 감독이 이 거신병의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