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에 만난 연인의 열아홉, 스무살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억울해 속앓이를 해본 적이 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면, 한 인간에게 매혹당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시간을 시샘하게 된다. 에드 해리스(51)는 이를테면, 관객에게 그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하는 배우다. 그가 너무 늦게 우리에게 온 탓이다. 샘 셰퍼드의 연극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한 해리스는 1978년에야 영화 데뷔했고 <필사의 도전>(1983)으로 겨우 얼굴을 알렸으며 30대가 이울어가던 무렵에 이르러서야 <어비스>(1989)로 알려진 배우 대열에 들었다. 에드 해리스는 그렇게 생의 여름을 보낸 뒤 완숙되고 군데군데 근사하게 마모된 모습으로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끌로 깎은 듯한 턱, 윗입술을 슬쩍 밀어올리는 사려 깊은 미소, 세월로 적당히 바랜 남성의 섹시함. 그리고 무엇보다 명철한 눈동자. ‘진짜 푸른’, ‘완벽하게 충실한’이라는 뜻을 가진 ‘트루-블루’(true-blue)라는 형용사는 에드 해리스의 눈을 위해 태어난 단어일 것이다. 과대망상형 프로듀서 크리스토프로 분한 <트루먼 쇼>에서 전능한 신의 시선이 되어 피조물 트루먼을 가엽게 내려다보던 그 눈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영화의 심장을 관통한다. 극접사로 찍은 독일 장교 해리스와 러시아 저격수 주드 로의 눈동자를 잇는 선을 축으로 영화는 팽팽하게 진동한다.
1990년대 이후 해리스는 톰 행크스, 니콜라스 케이지 같은 스타들이 고삐를 쥔 할리우드 대작에서 미더운 조역을 전담했다. 연기를 가리켜 “나의 굶주림을 완벽하게 채워준 무엇”이라고 표현한 적 있는 그는 보은이라도 하듯 각 영화의 허기를 완벽히 채워냈다. 일촉즉발 위기의 연쇄 속에 자칫하면 인물의 성격을 놓아버리기 쉬운 액션 블록버스터영화 속에서도 해리스는 프레임 뒤쪽에서 꾸준히 ‘예술’을 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없는 <더 록>은 상상할 수 있지만 장대비 내리는 묘지에서 아내의 비석에 훈장을 벗어놓고 돌아서던 험멜 장군 없는 <더 록>은 무감동한 돌덩어리였을지도 모른다. 에드 해리스는 그러나 지극히 ‘위험한’ 배우다. 악과 교만도 그의 육신을 빌면 어느새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는 일의 어리석음과 야만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어진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에드 해리스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엄격하고 의연하여, 영화의 레벨도 극중인물의 도덕적 평가도 초월해버린다. 그래서 마침내 연쇄 살인범이냐 영웅이냐의 문제도 한 인간의 본질적 품위와는 혹시 무관한 게 아닐까 하는 아슬아슬한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이는 배우 에드 해리스의 위치와도 통한다. “할리우드에서는 많은 일들이 꼬이고 결국은 한 꾸러미의 절망으로 뭉뚱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연기하는 것뿐이다. 무책임해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괴로워서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군복을 입은 에드 해리스는 그 모습만으로 심장 박동을 군가의 리듬으로 바꿔놓는 1인 스펙터클이다. 최근 개봉작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도 해리스의 미혹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히틀러의 어리석고 소모적인 전투에서 아들을 잃은 코닉 중령은 깊은 정치적 회의를 딱딱한 군복 속에 감추고 러시아 저격수 자이세프를 제거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의 폐허에 입성한다.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점프한 적을 쏘아 떨어뜨리는 중령은 에드 해리스와 닮았다. 카메라 앞의 해리스는 때로 움직일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머릿속에 생각을 지나가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10년간의 리서치 끝에 첫 메가폰을 잡고 오스카 주연상 노미네이션까지 따낸 <폴록> 이후에도 해리스는 뚜벅뚜벅 고요한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2001년 출연작만 해도 무려 네편. 늦게 만난 만큼, 영화도 그를 쉽게 놓아줄 수는 없을 터이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코닉 역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내가 맡아주길 강력히 원했다. <폴록>에 많은 돈을 쏟아부은 터라 일을 해야 할 시점이기도 했지만, 감독을 해보니 특정 배우를 열렬히 원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류 할리우드 바깥의 작업
중요한 문제, 가끔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짊어진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경험이 좋다. 남은 생을 큰 영화의 조연을 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다. <폴록>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다.
감독 데뷔작 <폴록>의 경험
제작비 조달에 꽤 어려움을 겪었다. 예산을 줄이거나 내 돈을 투자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덕분에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손에서 영화를 빼앗아가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일은 화가로 치면 그림을 그려서 화랑에 주고 그림 위에 덧칠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나 진배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