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아홉개째 구운 달걀을 먹고 있는 동화 역의 정준호는 약간 후회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만철(손창민)과 대화장면이 다소 밋밋한 듯하여 달걀을 먹으면서 얘기를 듣는 설정으로 본인이 아이디어를 낸 것. 그런데 정작 촬영에 들어가자 달걀 먹느라 대사가 꼬이거나 아니면 한 박자씩 늦는 바람에 연속 NG를 내고 남의 타는 속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손창민은 심지어 “여기 달걀 좀더 갖다줘라. 아휴 이 닭 냄새…” 하며 놀려대기까지. 그래도 정준호는 “나중에 과거신 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여기 달걀 수북하게 쌓여 있어야 된다”며 연출팀에 꼼꼼히 부탁하는 프로정신을 발휘한다.
마누라에게 허구한 날 구박받는 삼류소설가 동화가 폭력조직의 보스인 만철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인생의 대반전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인 <나두야 간다>는 동화 <왕자와 거지>의 형식을 빌린 리얼 판타지 코믹영화다. 자서전 대필을 위해 어울리게 된 두 사람은 각자에게 숨겨진 재능과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깡패는 소설가로, 소설가는 깡패로 각각 새로운 인생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내가 만약 뭐가 된다면…”이라는 평범한 상상력에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정연원 감독은 “넥타이부대들이 와서 이 영화를 보고 잠깐이나마 이태백이니 386이니 하는 고단한 현실을 잊고 상큼한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면 좋겠다”고. 그러고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잠깐이나마 행복하지 않겠느냐며, 그래서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순서편집을 본 소감으로는 의도한 대로 나온 것 같단다.
불쑥불쑥 카메라 파인더 안으로 끼어드는 동네주민들의 열띤 관심 속에 구멍가게 앞 장면은 마무리가 되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맹활약을 보여주었던 바로 그 버스가 등장했다. 이제 90년대 초의 풋풋한 만철이 등장할 시간인 것이다. 정연원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촌스러운 옷을 입어도 세련돼 보이는 손창민씨” 때문에 의상팀이 준비한 옷을 다시 더 촌스러운 옷으로 갈아입은 손창민을 태우고 버스는 출발한다. 유행가 <골목길>이 골목마다 울려퍼지던 시절로 만철이 동화에게 들려주는 슬픈 사랑 얘기 부분을 촬영하는 것이다. 비좁은 버스 안은 장비와 스탭들로 혼란스럽지만 버스는 출발하고 일사분란하게 촬영이 이루어진다. 소수의 스탭만 탑승한 관계로 감독이 슬레이트도 치고 오케이 사인도 낸다. 지는 해를 연신 바라보며 얼른 다시 가게 앞으로 돌아온 촬영팀은 버스 정류소 앞에서 연인 만철을 기다리고 있는 하늘(정소영))이를 한번 만에 찍는다. 그리고 해는 자취를 감추고 잠시의 휴식과 이른 저녁식사가 끝나면 카메라는 다시 배우들을 좇아 숨가쁘게 돌아갈 것이다.
<동감>을 제작했던 (주)화이트 리 엔터테인먼트의 세 번째 작품이고 롯데시네마의 첫 배급영화가 될 <나두야 간다>는 이제 조만간 스크린이라는 마지막 종점에 도착할 예정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중나와 있을지 5월28일이면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가평=사진·글 오계옥
△ 만철의 옛 연인 하늘이와 현재 만철을 사로잡는 연희를 동시에 연기하는 정소영은 이번이 영화가 처음이다. (왼쪽 사진) △ “네? 네… 그 그래도 잔금은 나오는 거죠?” 어리버리한 표정 연기가 일품인 정준호는 촬영장에선 점잖은 젠틀맨으로 통한다. (가운데 사진) △ 카메라 세팅을 기다리며 환담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오른쪽 사진)
△ 촬영이 잠시 없는 틈을 이용하여 개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손창민. (왼쪽 사진) △ 항상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입에선 얘기가 끊이지 않는 손창민은 슛 사인만 떨어지면 곧장 만철이가 되는 변신 아닌 변신(?)을 보여준다. (오른쪽 사진)
△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편집할 때 필요한 흙묻은 신발이나 사진을 쥐고 있는 손 등의 클로즈업 컷을 찍고 있다. (왼쪽 사진) △ <나두야 간다>는 박철수 감독 영화 <가족시네마>와 <봉자>의 조감독이었던 정연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