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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2] - 상영작
박초로미 2004-04-14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상영작

스가타 산시로 姿三四郞

1943년/ 흑백 / 82분

1936년에 도호영화사의 전신인 P.C.L(Photo Chemical Laboration)에 입사해 영화계에 입문한 구로사와에게 감독의 직함을 준 그의 데뷔작. 영화는 스가타 산시로라는 청년이 스승의 지도 아래 훌륭한 유도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평소 유도에 관심이 많았던 구로사와는 이 영화를 일종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로 만들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평생의 중요 주제가 될 사제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그려내기도 했다. 초심자의 영화답게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안달이 난 수다쟁이”가 만든 것 같다는 평을 들은 이 영화는 급속한 리듬의 편집이라든지 기후의 극적인 기능 같은 요소들에서 구로사와의 차후 발전을 예고한다. 개봉 당시 비평과 흥행에서 꽤 성적이 좋아서 스튜디오의 지시에 따라 구로사와는 1945년에 속편을 만들었다.

주정뱅이 천사 醉いどれ天使

1948년/ 흑백 / 98분

음습한 슬럼가를 배경으로 상충하는 두 인물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리얼리즘적인 터치로 그려진다. 술에 절어 살지만 직업 정신만은 투철한 의사 사나다에게 마츠나가라는 야쿠자가 치료를 해달라며 찾아온다. 마츠나가를 진찰한 사나다는 그가 폐병에 걸렸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겉으로 강직한 사내인 체하는 사나다는 마츠나가의 도움을 거절한다. 인물의 심리 묘사와 그에 상응하는 공간 처리가 뛰어난 이 영화는 구로사와가 특히 좋아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 마침내 나는 내 자신이 되었다. 이것은 내 영화였다”라고 구로사와는 말했다. 한편으로 <주정뱅이 천사>는 이후 구로사와의 얼굴이 될 미후네 도시로가 구로사와와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 영화이기도 하다.

들개 野良犬

1949년/ 흑백 / 122분

실제로 권총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형사의 이야기를 들은 구로사와는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영화화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조르주 심농식으로 만들어보고자 의도한 결과 나온 영화가 <들개>이다. 영화는 어느 몹시 더운 날 만원버스 안에서 그만 권총을 소매치기당하고 만 신참 형사 무라카미가 잃어버린 자신의 권총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담았다. 마치 줄스 다신의 다큐누아르영화 <네이키드 시티>를 연상시키듯 꼼꼼하게 수사 과정을 그려가면서 구로사와는 그 과정 안에다가 패전 뒤 혼돈에 빠져든 일본의 단면들도 담아냈다. <들개>는 범죄영화의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선악의 판단의 문제를 진지하게 묻는다는 점에서 구로사와의 초기작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종종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이키루>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나온 영화다.” <이키루>의 착상에 대해 구로사와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영화는 죽음이 자신의 코앞에 닥쳤을 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 인물을 통해, 그의 임박한 죽음을 통해, 올바른 삶을 성찰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암에 걸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시청 공무원이다. 이 인물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의 숭고함을 빼어나게 묘사한 <이키루>는 구로사와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정교하게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예를 들어 영화학자 노엘 버치는 여기서 알랭 로브그리예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정밀한 형식화를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키루 生きる

1952년/ 흑백 / 143분

구로사와의 최고 걸작이며, 일본 영화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 잘 알려져 있듯 영화는 산적들로부터 빈번히 약탈당하던 농부들이 산적들에게 맞설 사무라이들을 고용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7인의 사무라이>는 우선 그 스타일의 역동성으로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영화다. 구로사와는 빼어난 미장센과 편집을 통해 움직이는 사진으로서 영화는 운동감을 가져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여기서 구로사와는 일곱명의 사무라이들 모두에게 캐릭터를 부여주고는 그들이 누구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는다. 박진감 넘치는 최상급의 엔터테인먼트가 되면서도 인간을 들여다보는 구로사와의 깊이있는 시선도 들어가 있는 영화, 그렇게 해서 관객과 역동적인 대화를 나누는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이다.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년/ 흑백 / 207분

구로사와가 50년대에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으로 꼽히는 <거미집의 성>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개작한 영화다. 마녀로부터 영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 와시즈는 그 예언에 따라 계략을 써서 영주의 자리에 오르지만 결국은 파멸하고 만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구로사와 자신의 말에 따르면 <거미집의 성>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안개와 바람 같은 기후 요소들을 드라마틱한 요소로 만들어낼 줄 아는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한다. 한편으로 출중한 아름다움과 형식적 정밀함이 돋보이는 <거미집의 성>은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양식화한 연기, 전형화한 인물, 여백이 많은 배경, 정적과 격발의 교차 등은 모두 그 실례가 되는 요소들.

거미집의 성 蜘蛛巢城

1957년/ 흑백 / 110분

숨은 요새의 세 악인 隱し砦の三惡人

1958년/ 흑백 / 139분

구로사와가 처음으로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도전해 만든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그가 호쾌한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임을 입증하는 영화다. 16세기의 전국 시대. 우연히 황금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차지하려는 두 농부, 그리고 그 황금의 소유자인 공주와 그녀를 호위하는 장군이 황금을 짊어진 채 적진을 통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구로사와에 대한 비평서를 집필한 영화비평가 도널드 리치는 마치 루이스 브뉘엘이 만든 <쾌걸 조로>와 같다는 비유로 이 영화를 잘 정의내린 바 있다. 재미있는 모험극인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무엇보다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적진에서 공주를 데려온다는 <스타워즈>의 기본 설정뿐 아니라 R2D2나 C3PO 같은 캐릭터들도 루카스가 구로사와의 영화로부터 ‘모방’한 것.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惡い奴ほどよく眠る

1960년/ 흑백 / 151분

구로사와 프로덕션을 설립한 구로사와 감독이 그 첫 번째 영화로 만든 작품. 구로사와는 자신이 운영할 회사의 첫 영화로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함의를 가진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하는 부패와 부정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데 뛰어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영화는 대기업 회장의 딸과 회장 비서의 결혼식 피로연에 의문의 케이크가 배달되는 것을 시작으로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되는 절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노엘 버치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에 대해 ‘대기업이란 사악한 세계’에 대한 격렬하고 풍자적이면서 도덕적인 비판을 담은 영화로 오시마 나기사 영화의 한 국면을 미리 보여준다고 썼다.

요짐보 用心棒

1961년/ 흑백 / 110분

두 대립하는 집단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이들을 물리치는 한 떠돌이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그린 활기 넘치는 시대극. 개봉 당시 일본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둔 <요짐보>는 당대 일본의 시대극 영화들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심지어 당시 점점 인기를 잃어가던 그런 유의 영화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기도 한 영화였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시대극 장르의 틀 밖으로 멀리 나가지 않으면서도 종래의 틀을 벗어나기도 하는 ‘파격’ 혹은 ‘혁신’을 선보였다. 우선 칼로 몸을 벨 때 리얼한 사운드 효과를 부가하는 것부터가 이전의 시대극 영화들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구로사와는 잘린 손목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폭력의 묘사를 좀더 리얼한 수준으로 끌고 갔다. 일본에서 얼마 뒤 이른바 ‘잔혹영화’라 불리는 일종의 장르가 생겨난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영화가 <요짐보>와 후속작인 <쓰바키 산주로>였다.

<요짐보>의 상업적 성공 이후 그 속편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구로사와가 만든 영화가 쾌활한 사무라이 영화 <쓰바키 산주로>이다. 영화는 전편에 이어 떠돌이 사무라이 산주로가 등장해 이번에는 정의롭기는 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한 젊은 사무라이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쓰바키 산주로>는 비록 <요짐보>의 후속편이긴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속편은 아닌 영화이다. 장르에서 전통적인 시대극에 가깝다는 점이나 전반적으로 좀더 직설적인 유머가 구사된다는 점에서 <쓰바키 산주로>는 전작과 구별된다. 구로사와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젊은 관객은 <요짐보>를, 그리고 좀더 나이가 많은 이들은 <쓰바키 산주로>를 좋아했다고. 몸에서 분수가 터지듯 피를 뿜어내는 마지막 대결장면은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쓰바키 산주로 椿三十郞

1962년/ 흑백 / 96분

에드 맥베인의 오랫동안 잊혀졌던 펄프추리소설 <왕의 몸값>을 영화화한 <천국과 지옥>은 구로사와가 현대 스릴러영화에서도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걸작이다. 구두회사의 이사인 곤도에게 아들을 납치했으니 거액의 몸값을 준비하라는 전화가 걸려오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이어서 영화는 곤도의 딜레마에서부터 유괴범의 체포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천국과 지옥>은 ‘천국편’과 ‘지옥편’이라 불릴 수 있는 두개의 파트로 구성된 영화다. 이 가운데 그야말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곤도의 저택에서 펼쳐지는 전반부가 곤도의 딜레마가 중심인 일종의 도덕극스릴러라면 시선을 곤도의 저택 아래로 가져간 후반부는 본격 경찰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이 기하학적인 내러티브에다가 도덕적 딜레마, 범죄영화로서의 흥미, 당대 사회에 대한 시선 모두를 담으려 하는 욕심을 부린다.

천국과 지옥 天國と地獄

1963년/ 흑백 / 143분

<붉은 수염>은 <요짐보>와 <쓰바키 산주로> 이후 그것들과는 다른 식의 영화를 시도해보고자 했던 구로사와의 의중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대극이긴 하되 활극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시대극이 만들어졌다. 도쿠가와 시대 말기, ‘화란’에서 선진 의술을 배워온 야스모토는 니이데가 소장으로 있는 시골 마을의 공공 진료소에서 수련의로 일해야 하는데, 자신과 같은 인재가 그런 곳에서 썩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다. 그러나 진료소에서의 경험은 야스모토를 의사다운 의사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시켜준다. 여기서 그는 일명 ‘붉은 수염’ 니이데에게서 인간성, 인내, 용기, 통찰력을 배우게 된다. <붉은 수염>은 사제관계에 대한 교훈극이지만 그런 고리타분하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루함 없이 극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흥미롭게 들려줄 줄 아는 영화다.

붉은 수염 赤ひげ

1965년/ 흑백 / 185분

란 亂

1985년/ 컬러 / 160분

거의 10여년 동안 구로사와의 머릿속을 떠돌던 <>이라는 프로젝트는,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을 영화, 그래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영화가 될 만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완성된 <>은 시각적 화려함으로 넘쳐나는 거대 규모의 에픽이 되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느슨하게 스크린 위에 옮겨놓는다. 70평생의 대부분을 전쟁을 치르며 살아온 늙은 영주 히데토라는 이제는 세 아들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나눠주고 여생을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셋째아들의 충고를 듣지 않은 그는 그런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몰랐다. “미친 세상에서는 오직 미친 자만이 정상이다”라는 히데토라의 외침이 절절하게 들리는 이 영화에서 구로사와는 하늘 위에서 인간의 조건을 진단하고자 한다.

꿈 夢

1990년/ 컬러 / 119분

노년의 구로사와는 제작비를 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전작 <>도 힘들게 제작자를 구해 만들었던 그는 그 영화를 만든 이후에도 또다시 5년이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번에는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가 도움이 되었다. 영화는 여우가 시집가는 행렬을 훔쳐보고 두려움에 떠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여우비>부터 모두 8개의 에피소드를 모아놓았다. 각 에피소드가 시작하기 전에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자막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철저히 ‘나’의 꿈을 모아놓은 영화, 즉 구로사와의 지적이고 사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꿈>은 그 함의가 긍정적인 것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든 몽환의 제의를 벌이는 영화이고 아울러 구로사와가 돌비 사운드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실험해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다다요 まあだだよ

193년/ 컬러 / 134분

작가인 우치다 햐켄의 노년의 삶을 그린 <마다아요>는 구로사와의 마지막 영화이다. 영화는 햐켄이 글을 쓰는 데 집중하기 위해 교직을 떠나던 1943년부터 1962년 그의 77살 생일 파티가 있던 날까지 일어난 일들을 전형적인 구로사와적인 목소리보다는 좀더 나직한 톤으로 일종의 에세이를 들려주듯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이미 교직을 떠났어도 제자들에게 여전히 스승인 햐켄은 상상력과 감수성이 유별난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구로사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늙은 햐켄이 꾸는 꿈 안에서 아름다운 색깔의 구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것은 영화 속 햐켄의 상상일 뿐 아니라 구로사와가 우리에게 보여준 마지막 상상력의 재현이란 점에서 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1]

▶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2] - 상영작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