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소리도 없이 쫓아다니는 엄마가 발없는 귀신처럼 묘사되고 TV가 삶의 모든 유효한 가르침을 주는 이 나이 또래의 세계가 만화경처럼 그려지면, 이 아이들의 세계만큼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용기와 힘이 대접받는 곳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힘을 얻게 된 뒤 강아지도, 덩치들도, 사랑도 더이상 문제될 것 없게 된 풍이가 더 큰 힘을 가지려 시도하는 것도, 때문에 자연스레 이해된다. 그러니까 이 소년 헐크의 이야기는 ‘억압된 무의식의 폭주’라는 헐크 자체의 이미지와는 어쨌든 별로 상관이 없다. 차라리 초능력을 갖게 된 뒤, 이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교내 덩치를 혼내주는 ‘소년 <스파이더 맨>’에 더 가깝다. 다만 더 큰 힘에 대한 욕망을 ‘더 큰 힘엔 더 큰 책임’이라는 교훈으로 제어했던 청년 <스파이더 맨>과 달리 소년 <스파이더 맨>에겐 깁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랄까. <밀애> <선생 김봉두>의 제작사 ‘좋은영화’가 만든 이 영화는 단편으로서는 보기 드문 ‘때깔’을 자랑한다.
초등학교 버전 ‘인간과 권력’, <두 얼굴의 사나이>
글 김종연(영화평론가)
2004-04-07
헐크에게 영감받아, 스파이더 맨의 교훈을 깨치다. 초등학교 버전 ‘인간과 권력’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 미제 영웅들이 끼친 영향은 크다. 이번엔 <헐크>, 그리고 수용자는 겁 많은 초등학생 풍이다. 동네 강아지에게도 쩔쩔매고 힘센 학교 덩치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린 순정을 가져간 야채가게 딸 랑에게까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은 견딜 수 없는 일. TV 속 헐크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구름다리에서 떨어진 뒤 풍이는 정말 강한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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