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종합촬영소를 그대로 지나쳐, 좁은 시골길을 따라들어가면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창고 하나. <양아치어조>의 세트장이 세워진 곳이다. 듣는 사람이 두세번씩 되묻게 만드는 희한한 제목의 <양아치어조>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디지털 장편이다. 3월15일 오후 4시경. 약간은 허름해 보이는 창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자, 여느 촬영장과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펼쳐진다. 35mm 필름 카메라 대신 디지베타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것이 다를 뿐, 주인공 익수(여민구)의 방 안 세트를 비롯하여 조명과 촬영, 녹음 장비와 이를 다루는 스탭들은 모두 조범구 감독과 서지현 PD의 인맥으로 모인, 현재 충무로에서 활동 중인 프로들이다. 조범구 감독은 <장마>, <어떤 여행의 기록> 등으로 이미 단편영화계에선 잘 알려진 스타. 원래는 1천만원 정도를 예산으로 하여 디지털 6mm로 제작될 예정이었던 그의 첫 장편이, 영진위에서 3천만원의 사전제작지원을 받고 청어람이 투자와 배급을 맡으면서 순제작비 3억, 4억원에 이르는 대작(?)으로 세팅된 것이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별볼일 없는 강북 아이들의 강남 진출을 위한 악전고투기를 조범구 감독 특유의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영화 <양아치어조>. 감독과 배우, 스탭들은, 이른바 얼굴이 웬만큼 팔린 배우는 한명도 없지만 주연급 배우 7명에 수십명의 조단역이 꼼꼼하게 캐스팅되어, 잘 짜여진 캐릭터 위주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침 그날의 촬영분량 중 첫컷을 위해, 익수와 현진(양은용)이 바쁘게 세팅 중인 스탭들 사이에서 대사를 연습 중이었다. 첫컷은 4번 만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컷은 2번 만에 OK가 났지만 네 번째는 테이크가 6번이 넘어가도록 OK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박성남 조감독은, 원래 감독님 스타일이 20번의 테이크는 보통이라고 귀띔한다. 이와 함께 감독이 충무로 연출부 경험이 없기에 작업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자유롭다는 것도 특징임을 덧붙인다.
영화는 현재 75% 정도 촬영이 완료되었고, 여름 안에 크랭크업 예정이다. 그리고 “완성만 해오라”며 작품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는 청어람은 이후 배급방식을 결정할 것이다. 제작사로부터의 그 어떤 압력도 없이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촬영 중인 이 영화는, 감독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축복받은 장편 데뷔작이다.
사진 오계옥·글 오정연
△ 조범구 감독은 스스로 확신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배우들의 의견을 묻고 그에 따르는 방식으로 연기를 연출한다. (왼쪽 사진)
△ <양아치어조>의 현장에는 스토리보드가 없다. 컷마다 감독과 촬영감독은 배우와 함께 동선과 카메라 이동을 의논한다. (오른쪽 사진)
△ 익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던 현진에게 들이닥친 두 남자. 카메라와 인물의 이동이 많고, 인물의 시선처리가 중요한 장면이어서 NG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왼쪽 사진)
△ 집으로 들이닥친 남자들에게 반응하는 현진의 단독숏. (오른쪽 사진)
△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는 시선의 각도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 조범구 감독의 방식. 현진의 시선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을 체크하고 있다. (왼쪽 사진)
△ 현진이 떠난 뒤, 혼자 잠에서 깬 익수의 쓸쓸함이 포인트. 두 가지 동선으로 촬영됐다.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