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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작가의 영화작가, <알게 될거야> 자크 리베트 감독
홍성남(평론가) 2004-02-23

자크 리베트의 <오 바 프라질>은 세명의 여주인공에 대한 영화인데 이 가운데 한명인 이다를 우리가 처음 만나는 것은 핫도그와 팬케이크 등을 파는 한 간이 패스트푸드점 앞에서이다. 주문을 하고서 기다리는 그녀 옆에 결코 범상하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 한 늙은 남자가 나타나 이다에게 말을 건다. “우리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어쩌면 그저 지나치고 볼 수도 있는 이 장면은 리베트가 자신의 영화에 어느 정도는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일종의 은밀한 조크이다. 폴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를 연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리베트 자신인데 여기서 그는 스크린 뒤의 세계로부터 스크린 속으로 훌쩍 뛰어들어 이다라는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예전에 자기가 만든 다른 영화(리베트의 88년작인 )에 출연했던 배우 로랑스 코트에게 서로가 아는 사이가 아니냐며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건 그냥 슬쩍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조금 더 따져볼 시간을 갖는다면 어떤 생각거리를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리베트는 왜 하필이면 이다/로랑스 코트 앞에 나타났을까? 다시 말해 <오 바 프라질>의 또 다른 주인공 니농 역을 연기한 나탈리 리샤르 역시 코트와 함께 에 출연했던 배우였는데 왜 리베트는 말 건넬 상대로 그녀 니농/리샤르가 아니라 굳이 이다/코트를 선택했을까? 의문이 여기까지 미치면 혹시 여기에서 리베트가 잠깐 동안이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영화 속에 투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다. <오 바 프라질>의 다른 두 주인공이 서로는 교분을 맺고 각자로는 남자들과 어떤 식의 ‘관계’를 갖게 되는 인물들임에 반해 앙리라 불리는 고양이와만 소통을 하는 듯한 이다는 다른 주인공들과도 그리고 그 영화 속 누구와도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고독한 자이다. 아마도 그런 이다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래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리베트 자신이 스크린 속의 세계로 월경해온 것은 아닐까? 리베트 스스로가 의도했건 아니건, 여하튼 우리는 여기서 고독한 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또 그걸 미묘하게 드러내고 있는 한 영화감독과 대면하게 된다.

리베트가 고독한 영화감독이라는 피할 길 없는 이런 생각은 우선은 그의 영화들이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여간해서는 잘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누드 모델>이란 다소 음흉한 느낌부터 주는 제목을 달고 오래전에 <라 벨 누아죄즈: 디베르티멘토>(<라 벨 누아죄즈>의 단축판)가 극장 개봉되었고 <잔다르크>가 비디오로만 출시되어 있는 국내 상황도 리베트에 대한 뚱한 수용에 있어서 별다를 것은 없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도 관람의 기회가 주어진 근작 <알게 될거야> 이후에도 그가 지난해에 <마리와 줄리앙의 이야기>라는 신작을 만들어냈다는 소식을 접하면 아마도 깜짝 놀랄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사실 리베트는 여전히 영화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는 현역 영화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누벨바그를 다룬 책 속에서나 언급되는 역사 속 인물인 것처럼 종종 간주되곤 하니 이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여기에 그의 영화는 물리적 접근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적 경험 혹은 이해의 측면에서도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 일반적인 생각들이 맞물려 있어 리베트는 영락없이 외딴 곳에 홀로 존재하는 시네아스트로 인식되기가 쉽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예컨대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이, 그리고 알랭 레네의 (주로 초기) 영화들이 비록 난해할지언정 이제는 낯설다고까지는 생각지 않을 이들에게조차도 리베트와 그의 영화들은 생소한 대상으로 먼저 다가올 것이라고. 이제 <알게 될거야>가 그 낯설고 외떨어진 (듯한) 세계로 들어갈 조그만 발판을 마련해줬으니 지금이라도 그의 초상을 그려보고 그의 세계를 둘러볼 때가 된 것 같다.

냉철한 비평의 눈을 지닌 감독

주지하다시피 리베트는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등과 함께 누벨바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누벨바그 시기에 리베트가 만든 영화들(<파리는 우리의 것>과 <수녀>)은 누벨바그의 다른 대표작들, 이를테면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나 트뤼포의 , 또는 샤브롤의 <미남 세르주> 등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우열을 논한다는 어려운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세인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끌진 못한 것들이었다. 누벨바그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리베트라는 존재가 자주 그리고 중점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그러나 누벨바그가 개화하기 전의 리베트라는 인물을 돌이켜본다면,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의 누벨바그 멤버들 가운데 가장 돋보인 이가 바로 그였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우선 시네필로서의 리베트에 대해서 말하자면, 트뤼포는 그를 두고 “우리 (영화)열광자들 가운데 리베트가 가장 열광적이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실례로 트뤼포는 장 르누아르의 <황금마차>(1952)- 연극무대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분명 <알게 될거야>에 하나의 주요 레퍼런스가 되는 작품이다. 그 일례로 <알게 될거야>의 주인공 카미유는 <황금마차>의 카밀라를 리베트식으로 환생시킨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가 개봉하던 날 리베트가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극장 안 좌석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리베트는 다음날로 포터블 카메라를 빌리러 갔다고 한다. 한편 리베트는 영화에 대한 놀라운 직관적 통찰력을 보여준 뛰어난 영화비평가이기도 했다. ‘하워드 혹스의 천재’나 ‘로셀리니에 대한 편지’ 같은 그의 글들이 여전히 그 감독들에 관한 ‘고전’으로 취급받으며 여전히 읽힌다는 것은 비평가로서 그가 재능과 권위를 겸비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한 예증에 해당할 것이다.

이제 영화감독(이 되고자 열망했던 인물)으로서의 리베트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의 첫 장편영화 <파리는 우리의 것>이 개봉 기회를 잡은 것은 1961년의 일이었지만 그가 그 영화의 작업에 착수한 것은 그로부터 3년 전이었다. 작업의 출발지점만 놓고 보자면 <카이에…> 멤버들 가운데 샤브롤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게 리베트였던 것이다. 장편영화만 따질 때는 그렇지만 단편영화까지 고려의 대상으로 놓으면 리베트는 <카이에…> 멤버들 가운데 가장 일찍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카이에…>의 다른 멤버들에게 그들 역시 가졌던 영화 만들기에의 강렬한 열망을 자극해준 존재였다. 다시 한번 트뤼포의 회고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시골뜨기의 반격>(1956)이라는 본보기를 보고서 나는 <개구쟁이들>을 만들 결심을 했고 샤브롤은 장편영화 <미남 세르주>를 만들겠다는 모험에 돌입했다.” 리베트의 초기 경력을 가지고 이쯤에서 정리해보자면, 그가 비록 누벨바그 멤버들 가운데 뒤늦게나마 작가적인 개화를 맞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네필로서, 비평가로서, 그리고 영화감독(지망생)으로서 건실히 닦아온 행로가 지지대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절실한 애정(예를 들면 리베트식의 뮤지컬인 <오 바 프라질>의 한 원천으로 스탠리 도넌의 옛날 뮤지컬영화 <소녀에게 휴식시간을 줘라>(1953)를 끌고 들어오는 것처럼, 종종 그는 현시대의 감독들이 하는 것과 비교하면 좀더 덜 직접적이고 미묘한 방식으로 다른 영화들을 참조하곤 한다), 냉철한 비평의 눈(예컨대, 종종 에피소드 구성을 취하거나 아니면 플롯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오히려 그것 자체를 중요하지 않게 취급해버리는 이야기하기의 방식, 선호하는 배우들과의 작업 자체에 대한 중시 같은, 리베트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혹스적 요소들은 혹스에 대한 애정어린 비평의 소산인 게 분명하다), 지칠 줄 모르는 영화 만들기에의 열정이 리베트라는 시네아스트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길게 지속되는 리듬의 창조

리베트라는 영화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잠깐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기준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듯한 긴 러닝타임으로 유명하다(아니, 악명이 높다). 12시간40분에 달하는 <아웃 원>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라고 치부하더라도 그의 영화들은 많은 경우 평균적인 러닝타임의 두배 정도가 되는 3시간에서 4시간에 육박한다. 물론 대중적인 영화들이라고 해서 이 정도의 러닝타임을 과시하는 예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 영화들은 대부분 관객을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놓는다. 요컨대 그런 영화들에서는 고비마다 배치된 굵직한 사건의 마디들이나 폭발력 강한 스펙터클들이 관객이 느낄 법한 불편함과 부담을 덜어줄 서비스 장치의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리베트의 영화들에는 이런 식의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판이다. 상식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여기서의 러닝타임이란 적절함과 유효함의 선을 멀찌감치 넘어버려 그것을 아예 심중에도 두지 않은 채로 멀리 확장된 것이다. 흔히 ‘죽어버린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유의 시간이 ‘생생하게’ 흘러간다. 그러니 많은 관객에게 이 어마어마하게 혹은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긴 러닝타임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일종의 시련(ordeal)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우선은 긴 러닝타임의 망망대해를 홀로 헤엄치면서 견뎌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따라가야 할 진로를 스스로 찾아내 내적인 리듬을 발견해내거나 아니면 창조해낼 수도 있다. 이것이 리베트가 자기의 영화들에 관객을 끌어들이려 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관객쪽에서 감내해야 할 긴 지속의 시간이 리베트 영화를 구축하는 중요한 원자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의 영화가 구축되는 방식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 원자재임을 지적해야겠다. 리베트의 필모그래피에서 리베트적 기준에 부합하는 러닝타임의 영화가 등장한 것은 <아무르 푸>부터이다. 리베트의 첫 두 영화가 대략 140분 정도의 지속시간을 가진 영화였다면 그의 이 세 번째 영화에서 256분이라는 좀더 긴 러닝타임의 영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절이 생긴 것은 영화작업을 대하는 리베트의 태도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과 거의 정확하게 대응한다. <아무르 푸>에 이르러 리베트는 영화가 스토리 구성, 시나리오 쓰기, 촬영, 편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해진 과정을 통과하며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다. 영화란 여기에 참여하는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들 자신의 고안과 즉흥연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상황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그리고 때로는 우연적인 일들에 자유롭게 열려 있는 것이다. 이제 리듬은 미리 쓰여진 시나리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배우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것들을 기록하는 카메라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된다. 리베트 특유의 ‘긴 흐름을 유지하는 영화’(film-fleuve)는 여기에서 생성된다.

영화의 새로운 단계를 향한 야심

비록 예전만큼 급진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리베트는 상황에 대처하며 임의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근작 <알게 될거야> 역시 시나리오가 아니라 단지 10페이지 정도의 개요만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다. 어느 정도는 혹스로부터도 배웠고, 또 좀더 본격적으로는 장 르누아르(리베트가 “영화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던 시네아스트)와 장 루슈(리베트의 말을 빌리면, “60년대의 모든 프랑스영화 뒤에서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처럼 과정을 중시하는 영화 만들기에 대해 리베트는 <카이에…>의 출중한 영화비평가답게 영화역사의 전개과정 안에다가 위치시킨다. 그에 따르면 영화의 역사는 그리피스와 에이젠슈테인이 몽타주를 발명한 시기, 프로파간다영화의 테크닉을 정교하게 만든 푸도프킨-할리우드의 시스템이 지배적인 시대, 그리고 이전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며 프로파간다를 거부한 시기로 이어져왔으며 그 다음에는 첫 번째 시기와 세 번째 시기를 ‘편집’해 영화의 ‘구원’을 기도할 시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것만 봐도 리베트가 기도했던 것이 단지 방법론상의 변화가 아니라 그를 통해 영화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젖혀보겠다는 대단히 야심찬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리베트의 이 원대한 프로젝트는 자칫하면 그에 대한 모종의 오해로 이끌 수도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그는 정말이지 ‘작가’(auteur)의 통제가 없는, 그래서 ‘작가’의 자취가 지워진 영화를 원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된다. 이 같은 질문은 <아무르 푸>를 만들던 때부터 그가 영화에서 ‘작가’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지점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제기된다. 그러나 실제로 리베트가 ‘작가’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렸냐고 하면, 그렇다기보다는 자발성이 최대한 허용된 방식과 작가의 통제가 수행되는 방식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예컨대, 아주 단순히 말해 그가 <아웃 원>과 그것의 단축판인 <아웃 원: 유령>을, 편집을 통해 하나가 하나의 단순한 단축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완전히 다른 유의 영화로 분류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은 여전히 작가의 손길이 스며 있음을 시사한다. 리베트의 작업방식과 관련해 논의할 수 있는 다른 문제는 카메라 앞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을 활용해 구조의 자유를 추구했던 그가 혹 자연주의자는 아닌가, 하는 오해이다. 정말이지 이것이 오해인 것은, 다수의 그의 영화들 속에 존재하며 환상성과 인위적 정교함의 인상 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어떤 세계로 인해 분명해진다.

리베트에 대한 훌륭한 비평 글들을 써왔고 70년대에 이미 리베트에 관한 책을 펴냈던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용어를 빌리자면, 리베트의 많은 영화들에는 이른바 ‘픽션의 집’(the House of Fiction)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건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에서와 같이 매일 동일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벌어지는 어느 불가사의한 집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픽션으로 옮겨지고 또 그 픽션이 현실의 일로 연장되는 식의 꼬임들이 형성되는, 실제 집이면서 그 자체로 연극무대가 되는 <지상의 사랑>에서의 공간일 수도 있고 리베트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상의 연극무대(<알게 될거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리베트의 영화에서는 허구의 어떤 세계가 현실세계 바로 옆에 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두 세계의 관계는 꼭 <알게 될거야>에서 우고와 카미유의 호텔방을 닮아 있다. 이 두 사람의 방은 각각의 문을 가진 독립된 방이지만 알고 보면 그 사이를 통과하는 문이 있어 은밀하게 내통이 가능한 방들이다. 그처럼 리베트의 영화에서 현실의 세계와 그 옆에 자리한 다른 종류의 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이면서도 서로 독립적이지만은 않은 세계이다. 이런 모양새의 세계를 가지고 리베트는 내러티브 구조를 문제삼을 뿐만 아니라 꽤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흩뿌려놓는다. 그런 세계를 통해 음모가 횡행하는 세상, 홀로됨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같은 전형적인 리베트적 주제가 흥미롭게 배치될 수도 있고(이 두 주제가 잘 연관되어 있는 영화가 일 듯하다), 픽션의 본질과 텍스트의 해석과 관련된 문제를 사고할 기회가 제공되기도 한다(이 경우에는 <셀린느와 줄리…>를 떠올리면 된다).

제임스 모나코는 리베트를 가리켜 “영화작가의 영화작가”라고 불렀다. 이 외우기 쉬운 정의는 그러나 맥락을 놓쳐버린 채 제1급의 시네아스트를 가리키는 말 정도로 오용되어서는 안 된다. 모나코의 이 정의는 리베트가 무엇보다도 영화를 통해 내러티브의 구조 자체를 분석한 시네아스트라는 의미, 데이비드 톰슨의 말을 빌리면 “아무도 리베트만큼 내러티브와 지속시간에 대해 더 많은 실험을 한 사람은 없었다”고 했을 때의 리베트에 대한 평가와 어울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를 찾아온 <알게 될거야>는 이런 시네아스트에 대한 입문은 허용하지만, 리베트의 인장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험적 활력보다는 유희적 활력이 좀더 두드러지는 이 영화는 리베트의 세계에 대한 완전한 안내 지표가 되지는 못한다. 그 세계로 들어가려면 셀린느와 줄리가 픽션의 집에 온전히 들어가기 위해 필요했던 그런 캔디가 필요하다. 그 캔디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회고전 같은 것일 테다. 우리가 그 캔디를 깨무는 순간에야 아마도 처음 이야기했던 고독한 시네아스트로서의 리베트의 이미지가 우리에게서 많이 지워지지 않을까.

F i l m o g r a p h y

<파리는 우리의 것>(Paris nous appartient, 1960) <수녀>(La Religieuse, 1965) <아무르 푸>(L’Amour fou, 1968) <아웃 원>(Out One, 1971) <아웃 원: 유령>(Out One: Spectre, 1973)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Celine et Julie vont en bateau, 1974) <지상의 사랑>(L’Amour par terre, 1984) <4인조>(La Bande des quatre, 1989) <라 벨 누아죄즈>(La Belle Noiseuse, 1991) <잔다르크>(Jeanne la Pucelle, 1994) <오 바 프라질>(Haut bas fragile, 1995) <알게 될거야>(Va savoi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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