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투리는 편안하게 하면 됩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윤인호 감독이 급기야 신발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한마디 던진다. “시끄럽다. 이눔아야. 아침부터 재수없게시리….” 백태낀 엄마(정선경)의 눈을 보고 신발가게 주인이 여민(김석) 모자를 내쫓는 장면인데 경상도 사투리 대사가 매끄럽지 않아 자꾸 NG가 난 것이다. 70년대 경상도 마을이 배경이지만 정작 신발가게신 촬영을 하는 곳은 전북 김제의 한 재래식 시장이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구경나온 동네사람들이 쓰는 전라도 사투리와 가게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왁자지껄 마구 뒤섞이며 마치 어느 시골 시장통에 서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겨우 사투리가 정리되지만 이번에는 정선경이 들고 있는 운동화를 확 나꿔채는 장면에서 신발이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두어번의 NG가 난 끝에 16신이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18신은 여민의 통쾌한 복수장면으로, 신발가게 유리를 와장창 깨뜨려야 하는데 유리가 금만 가거나 엉뚱한 지점에 깨지거나 해서 준비된 석장의 유리로 겨우 촬영을 마쳤다. 윤인호 감독의 우렁찬 오케이 사인과 함께 지난해 10월10일 시작한 <아홉살 인생>의 4개월간의 여정이 드디어 끝나는 순간이다. “영화가 끝나니까 처음부터 다시 찍고 싶다”고, 그러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감독은 아이들에게 너무 못할 짓 많이 해서 미안하단다. 겨울에 여름장면 찍고, 맞는 장면에서 실제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10m 깊이의 물을 1m라 속이고 촬영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정작 아역배우들은 촬영이 재미있었고 이제 마치려니 슬퍼진다며 윤인호 감독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100만부 이상 팔린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스크린에 옮겨질지 이제 3월 말이면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황기성사단에서 28억원의 순제작비로 만들어지는 <아홉살 인생>은 윤인호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김제=사진·글 오계옥
△ <마요네즈> 이후 4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윤인호 감독은 이 영화가 <양철북> 같은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이미 인생을 다 알고있는 것처럼. (왼쪽 사진)
△ “여민아 이거 어떻노?” “지는 아무거나 좋습니더.” 마치 친모자지간처럼 자연스러운 정선경과 김석.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정선경은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역시 사투리가 힘들다고. (오른쪽 사진)
△ 실제로도 ‘월신상회’라는 신발가게인 이 촬영장소는 70년대풍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왼쪽 사진)
△ 대사가 제일 많은 가게주인(한명한)은 경상도 사투리가 안 돼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윤인호 감독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기도. (오른쪽 사진)
△ 서울에서 전학와 여민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쏘는 새침도도한 장우림 역의 이세영. <대장금>의 어린 금영이로 우리에게 이미 낯이 익다. (왼쪽 사진)
△ 아이구 추워라. 컷 사인이 나기만 하면 정선경과 김석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휴대용 스토브를 끌어안고 몸을 녹인다. 엄동설한에 여름장면 찍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다. (오른쪽 사진)